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루양 Jul 10. 2021

일이 마음만으로 되지 않거든요

[상반기 결산] 결국 자기 연구 해야지

  6월 말, 상반기가 끝남과 동시에 내 상황과 환경도 꽤 많은 변화가 생겼다. 2021년의 2막이라고 할 수 있는 7월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상반기를 돌아본다. 3개월 전, 나에게 처음으로 연구원의 세계에 발 딛게 했던 종로 기록 수집 프로젝트도 상반기를 끝으로 정리됐다.


학교 아닌 곳에서 각자의 연구물을 쥐고 씨름하는 진짜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기쁨이 있었고, 70년대 수기로 작성한 민간 문서들을 직접 손으로 정리하고 스캔하며 기록이란 무엇인가, 이론 너머의 고민을 해보기도 한 시간이었다. 나는 3개월 동안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나.


@pixabay 이 못지 않은 문서더미들 속에서 보낸 3개월



1. 기록이 너무 많고, 동시에 너무 없었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종로의 특정된 지역의 기록물을 수집하는 일이었다. 재개발을 앞둔 지역이라 기록화가 시급하게 필요했다. 이 일대는 이미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무수한 자료들이 있지만, 동시에 기록화 주제와 목적에 부합하는 기록은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기록에 관해서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고, 그 관점에 따라 수집되거나 정리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연구원 선생님은 일단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자고 했다. ‘일단’하는 작업은 목적도 범위도 불분명해서 나는 어려움을 느꼈다.     

 

그보다는 우리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니만큼,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지금은 없지만 찾을 수(도) 있는 자료’를 수집하는 데 더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활사 자료는 인터넷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있을 테니 인터넷 수집과 현장 기록 수집을 동시에 해나가야 보완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순서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인터넷 수집을 다 하고 현장 기록 수집을 해야지,라고 그는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여하튼 일하는 3개월 동안 내 수집은 인터넷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에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떠나고 있는 동안에도.      


2. 모든 기록이 수집되어야 할까?     


이를테면 종로, 예를 들어 익선동이라고 치자. 익선동의 지역 기록화를 한다고 했을 때, 모든 기록을 수집해야 할까? ‘모든’은 어디까지일까? 기록 연구사와 마주친 모든 것? 익선동 혹은 종로라는 키워드가 담겨있는 모든 것? 검색해서 나오는 모든 것? ‘모든’ 기록의 수집은 불가능하다. 기록화에도 목적이 필요하고 관점이 필요하다. 기록화의 목적이 지역 문화의 보존인가?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연구하고자 하는 것인가? 지역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위한 것인가?      


이에 따라 수집은 방향이 바뀔 수밖에 없다. 더더 구체화해야 그때야 비로소 우리가 수집할 수 있는 ‘모든’의 범위가 나온다. 또 그렇게 모인 기록들은 그 목록만으로도 이 수집 작업에 대해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익선동의 건물, 혹은 역사 혹은 커뮤니티 등 특정 주제의 기록들이 모이고, 여러 개의 아카이브가 공존할 때, 그때야 비로소 그 지역을 기록으로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익선동을 주제로 한 망라적인 수집은 네이버나 구글 검색 결과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3.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     


연구원 선생님과 나는 일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음을 여러 번 느꼈다. 사실 일하는 방식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말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내 말은 선생님에게 너무 직설적이었고, 선생님의 말은 내게 너무 두루뭉술했다. 이건 당연한 일이지. 다른 경험을 했고, 평생 다른 방식으로 살다가 만난 셈이니까. 문제는 우리 둘 다 10년은 자기 방식대로 일해 온 사람들이라 아무리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한다고 해도 개인의 고유한 방식이 변화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모든 일을 목적과 마감하에서 처리하는 나는 기록 하나를 보더라도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음 업무를 위해 이 업무는 언제까지 처리하지?’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연구원 선생님은 ‘이 기록이 어떻게 쓰일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가능한 한 많이, 최대한 방대하게’라는 수집 원칙을 고수했다. 나는 마음으로는 그 선생님의 태도를 이해하고 존중하나 일이 진도가 나가지 않고 쌓이는 게 없으니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pixabay



4.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찾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나 좋은 사람이지, 자기 장점을 누르고 단점을 고쳐가면서 일할 때는 힘든 사람이 된다. 나의 강점이 장점일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일을 구할 때 이러한 점도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일한 연구원 선생님은 작업에 있어서는 마찰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생활의 측면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깊고, 똑같은 걸 들여다보더라도 훨씬 꼼꼼하게 점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또 도움을 구할 일이 있으면, 정확히 무엇을 요구할지 모르더라도(이 점도 나와 다른 점이다!) 일단 만나서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도 인상적인 태도였다. 이러한 태도는 본인이 누가 도움을 청하든 기꺼이 나서는 사람이기 때문에 도움을 구할 때도 당당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5. 결국 자기작업 해야지    


누군가를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게 되는 일도 결국은 내 안에 잣대가 너무 분명해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런 유형의 사람이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질색하지 않던가. 좋게 말해서 잣대지 결국 누군가의 일면만 보고 떠올리는 편견이고 오류일 뿐이다. 나 역시 일은 ‘이렇게 저렇게’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저렇게’해서 지금껏 먹고 산 것도 사실이고요.


하반기에는 조금 더 유연한 관점을 가지고 일하고 싶다. 나보다 조금 느리거나, 불명확한 일에 있어서도 조급해하지 않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사람과도 의연하게 일하고 싶은...  이 마음은 일할 때는 몸만, 머리만 쓰고 싶지, 일하는 데 마음은 쓰고 싶지 않다는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의욕 있고 스마트한 동료와 일하는 건 정말 행운이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결국 자기 작업 해야 하지 않을까. 아르바이트로, 외주로 일하는 데에는 결국 이런 ‘다른 사람과 일하는 한계’에 부딪히고 극복하지 못할 일(넌 사장이고 난 알바니까)이 생기는 게 비일비재할테니.


하반기에는 모쪼록 내 작업 하고 내 연구를 해보자. 다른 사람하고 일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나’를 데리고 일해보자... 내가 뭐 안하고 싶어서 내 작업 안했냐. 마음 같지 않아서 못했지. 그래, 내 작업도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거, 다시 한번 되새기며 그래도 다짐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하반기에는 내가 마음만으로 안되는 일, 그거 한 번 해보자고! 한번 외쳐보고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구의 첫 발, 초심자의 행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