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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자꾸 구겨진 내가 튀어나온다

미운 사람 하나 생기면 내 마음 지옥된다

by 느루양


내가 주재한 회의였다. 내가 몇 달동안 디벨롭 시킨 기획 건에 타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회의를 통해 여론을 확인해보고, 그 반응을 토대로 아이템을 어떤 방식으로 디벨롭해나갈지, 방향을 정하는데 참고하려고 했다.


이 아이디어가 별로야,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떤 의견이 나와도 기꺼이 수용하고자 했다. 그것도 일종의 사용자 반응이고, 네거티브한 반응이 많으면 이를 수용해서 기획을 수정하면 된다. 이성적인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진심이었다.


AI가 그려낸, 근사한 회의 풍경.


오래 준비한 발표인 만큼, 발표는 계획대로 마쳤다.


몇 명이 자기 의견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누군가는 좋다고 했고, 누군가는 이 기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 이유를 말해줬다. 괜찮았다. 누군가는 내가 가리킨 달이 아니라 내 손가락을 지적했다. 그래, 언제나 그런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려니 했다. 이성적인 나는 그들의 말 속에서 내가 참고할 만한 내용을 캐치하는 데 골몰해 있었다.


한 사람이 내 발표자료에 없는 부분을 지적했다. ‘그 부분이 준비되지 않아서 판단하기 어렵다’는 거다. 내 생각에 '그 부분'은 이 아이템에서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냥 넘어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내 발상을 지적했다. 애초에 '왜 이렇게 생각을 했느냐'는 거다. 그리고 '왜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의문'이라며 자기가 전 직장에서 진행했던 다른 사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지난 달에 입사한, 2년차 직원이었다.


“그렇게 잘 아시면, 직접 해보시든가요.”


안타깝게도, 나는 발끈해버렸다.





‘안돼! 여기서 감정을 드러내면 지는 거야!’라고 매끈한 얼굴의 내가 저지할 새도 없이, 구겨진 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가 회사에선 절대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감추고 감춰둔 그 얼굴이.


이 아이템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했지, 3개월 동안 이것만 생각한 나를 평가해달라고 한 건 아니라고.


솔직히… 이런 마음도 있었다.


고작 2년 회사 생활이 전부인 줄 아는 네가 감히?


그 순간, 그 자리에는 선후배 동료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고,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여유롭게 웃어 넘기며 ‘다들 고견을 주어 감사하다’고 웃음짓는 프로페셔널한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도 누구에게 어떤 조언이나 비판을 들은 것보다, 내 스스로 구겨진 얼굴이 떠오르고 내가 내뱉은 말만이 메아리쳤다.


왜그랬을까,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게...

왜그랬을까, 진짜 선배답게 응수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의 태도가 무례했다'고 외치는 심연의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냥 마음만 괴로웠다.



그러나 실제 그날의 풍경은 이런... (출처: 좋좋소)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뭐 때문에 마음이 괴로운 거지?


그 무례한 대답을 들은 것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내뱉은 그 말, 그런 감정적인 말을 내뱉은 나 때문에 속상했다.


그게 왜 화가 나지?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이상적인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숨겨주고 싶은 구겨진 얼굴을 남들 앞에서 보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친구도 미워졌다.


와, 이렇게 지옥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거구나.


계속 ‘속상해’ ‘열받네’ ‘그러지 말걸’ ‘왜그랬지?’ ‘속상해’ ‘걔만 아니었으면’ ... 이 루트를 생각없이 걷다보면, 어느 순간 눈 떴을 때 지옥불에 있을 게 자명했다. 내 속이 지옥불이 될 것이었다.


답은 간단했다.


내가 내 생각만큼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10년차답게 프로페셔널하게 행동하고 싶지만, 안제나 여유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지만, 내 안에 구겨진 얼굴도 있고, 놀라는 얼굴도 있고 화내는 얼굴도 있고, 질투하는 얼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럴거야'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이 많이 다르구나, 이번 미팅에서는 그걸 배운 걸로 넘어가자. 그걸 인지하고 인정해야, 내가 원하는 쪽으로 길을 돌릴 수 있다.


실제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외부의 탓만 하면, 까딱하면 지옥불로 간다. 누구 미운 사람 생기면 내 마음이 지옥된다. 사회 생활, 해볼만큼 해보면서 그 정도는 분명히 안다.


그래, 부족한 거 인정하자.

인정했으면 그 다음엔 내 편이 되어주자. 왜 나까지 나를 탓해. 내가 속상해서 그랬다는데.


나야... 잘했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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