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게, 본질에 가깝게
서른다섯은 또렷한 숫자다. 서른하나, 둘, 셋, 억지로 넷까지만 해도 서른 초반이라는 묶음에 대충 얽어넣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서른다섯은 초반, 중반, 후반으로 둘러댈 수 없는 명명백백한 숫자처럼 느껴진다. 스물다섯이었을 때와 서른이었을 때와 또 다르다. 스물다섯, 서른이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딱 어른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 더 나이를 더할 일밖에 없으니 한참 후에 보면, 이때가 또 얼마나 어린 때였나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내가 겪어본 중에 가장 의젓한 시기에 올랐다.
물론 한 주 새에 한 살을 더 먹었다고 해서, 그때와 다른 사람이 되었을 리 없다. 나는 스물다섯, 서른, 그리고 작년의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벌써 서른다섯이 되었다. 이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가만히 실감해 보았다. 꼭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과연 자연스럽게 나이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살고 있나.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보내고 있나.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요 며칠 인터뷰집과 산문집을 읽으며 연말연초를 보냈다. 인터뷰집에 나온 어른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단순명료한 말이야말로 삶의 본질이 된다고 말했다. 성실함이라든가 긍정이라든가, 내려놓음 같은, 어쩌면 이 시대에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무게로 그 말의 진정성을 실었다. 또 각자의 경험으로 그 본질적인 단어를 자기들의 언어로 풀었다. “안병욱 선생과 내가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인격의 핵심은 성실이라는 겁니다.(...) 성실한 사람은 악마가 건드리지 못해요.”
다양한 삶의 배경과 삶의 이야기를 경험한 사람들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알고 발견하라.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라는 것인데, 어젯밤엔 그 말이 조금 더 깊숙이 내게 다가왔다. 20년이 넘게 이런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고도 나는 늘 습관적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상에 과연 이러한 문장과 말들이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머리로는 이미 이들의 말들로 한 편의 글을 써낼 만큼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나는 나에 대해서, 내 삶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핸들을 쥐고 있나?
내가 내 삶속에서 느끼는 진부함, 지리멸렬함은 뭔가 특별한 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아니라, 일상의 허무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머릿속으로 이미 알고 있는 건강한 삶- 관찰하고, 느끼고 생산하는 아름다운 삶과 너무나도 달리 소비로 점철된 내 관습적인 일상의 괴리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또 나는 과연 나를 중심으로 일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을까? 주변 사람들, SNS, 대중매체에 보이는 가치들에 내 삶을 평가하고 맞추고, 쓸데없는 의무 같은 걸 이고 있지는 않을까? 잘 모르면서 하고 있는 일들, 하는 말들은 없을까?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의 내 삶은 괴리가 있다는 걸 늘 인지해야 한다. 이런 나를, 내 삶을 점검해보는 걸로 2019년을 시작해봐야겠다.
나의 서른다섯은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누구처럼 되려고 애쓰지 말고, 누가 규정한 가치에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 일에 노력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나를 부단히 관찰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안정된 일상을 가꿔나갔으면 좋겠다. 정말 기쁜 일은 이벤트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단단한 하루하루가 주는 안정적인 생산력에서 준다는 걸 이제는 몸으로 알게 되었다. 일상, 루틴, 꾸준함 같은 말과는 거리가 먼 30년의 삶을 살았지만,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반복되고 누적된 일상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하루를 가볍게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싶다. 주어진 일들을 가볍게 도전하고, 가볍게 실행하고, 큰 고민이나 상념 같은 건 포기하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하는 경험을 늘이고 싶다. 그렇게 유연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올해는 일터와 생활터에서 정서적인 문제로 흔들리거나 마음 쓰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 늘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100이라는, 한정 자원이라는 걸 명심하고, 함부로 에너지를 쏟거나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일은 미루는 것보다 지쳤을 때 조금 더 애쓰는 게 나으니까(예를 들어 집안일), 내 에너지를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이길 바란다. 기존에 반복적인 동력을 줄여 이제껏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에 부어보고 싶다. 좀 더 멀리 산책을 나간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짧은 여행을 다니는 일 같은 데에 말이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쉽게 좌절하지 않고, 쉽게 낙심하지 않는 서른다섯이 되고 싶다. 나와 내 일상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 지금도 괜찮지만, 나 스스로에게 더 마음에 드는 내가 되고 싶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피곤’하고, ‘짜증’나고, ‘지루한’ 일상에서 나를 풀어주고 싶다. 잘 관리한 에너지와 시간을 주변 사람들에게 여유 있게 나눠주고 싶다.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고 싶다. 올해 시간이 지나고 문득 돌아봤을 때, 내 서른 다섯의 시간이 이렇게 채워져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