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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Jan 20. 2019

결국 어떤 책이 남을까?

10년 전 책장을 정리하며  

 간만에 책장 정리를 했다. 말이 책장이지 책 창고에 가까운 이 책 더미들은 예전 채널예스 기자로 근무할 때, 인터뷰를 위해 사거나 받거나 얻은 책들이다. 그땐 책 욕심도 많아서 좋아하는 책은 소장용으로 한권씩 더 있었다. 한데 그때를 기점으로 원룸생활을 시작했고, 결혼까지 했으니, 이 책 더미는 쌓인 채로 10년을 엄마 집에 처박혀 있었던 책들이다. 


내 방을 비우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책을 처분하기로 했다. 사실 자주 보는 책이나 특별히 아끼는 책은 원룸 생활 할 때부터 함께 이동하고 있으니, 여기 있는 책은 전부 사라져도 크게 문제가 없을 터였다. 금방 훌훌 털어버리자 마음먹고 책을 꺼내 버릴 것인지, 남길 것인지 정하기 시작하는데...



  2019년도의 책장에 남길 수 없는 책들이 많았다. 2000년도 초반에 유행했던 이성 관계에 관한 책- 특히 사랑받는 법이라든가, 여자들은 이렇다더라 하는 책들, 그리고 직장 처세술, 심리책인양 포장된 역시 처세술 책은 그야말로 낡은 언어처럼 느껴졌다. (반면 죽음에 관한 이론, 철학서들은 시간이 흐르고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남겼다.) 또 당대에 나온 스마트기기 이론서들 – 스마트워크, 아이폰,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 카메라에 관한 책도 그간의 빠른 업데이트 때문에 완전히 낡은 책이 됐다. 2020년을 전망한 경제서적들과 정치 비평서들도 지금 시대와 비교해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남길 책은 아니었다. 


 물성을 가진 책은 평생 남을 콘텐츠라고 생각했는데, 버릴 책을 100권쯤 뽑아내고 있자 그게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연극 같은 무대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리지만, 책은 두고두고 남는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과연 무엇이 더 오래 남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늘 연극이 기록되지 않는, 순간에 벌어지는 예술이라는 것에 매료되면서도 그게 늘 아쉬웠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 서울 집에 있는 내 서재의 책 중에 평생 지니고 싶은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연극이야 시대와 상황을 반영해서 대사도 다시 쓰이고, 새로운 연출을 만나 새롭게 공연되지만, 한번 쓰인 책은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시간을 뛰어넘는 문장을 새기지 않고서야 매번 새것 같은 책이 되기는 어렵다. 나는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연극의 어떤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책 역시 어떤 순간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뿐이지 소장되는 물질로 의미 있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연극을 본 어떤 순간, 책을 읽은 어떤 순간들이 결국 두고두고 남을 뿐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읽히고 있는 책들은 얼마나 놀라운지!) 과연 이 문장은, 이 책은 10년 후에도 남을까? 앞으로 읽게 되는 책에는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지 않을까. 


  책의 목적이 영생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낡은 책이 되었다하더라도, 그 시대에 절묘하게 타올라 사람들을 깨우는 책도 있을 테다. 고로, 좋은 책은 소장할 것이 아니라 유통시켜야 한다. 책에서 얻을 것은 책과 교감하는 순간과 기억뿐이지, 책장에 꽂혀봤자 짐만 될 뿐이다.(우리집같이 작은 집에는 말이지, 흑) 앞으로는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책이 낡기 전에 바로 선물해야겠다. 나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언젠가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하자. 또 요즘엔 재미있는 책이 많으니 욕심을 버리자. (요즘엔 가급적 전자책을 이용하는 편이다. ) 1월 안에 남은 책까지 죄다 나누고 처분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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