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닮은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나를 나답게 존재하게 하는 장소와 사람들

by 느루양
[사는 재미 101]

02. 결이 닮은 사람 -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그게 무엇이든 비슷비슷해보여도 어쩐지 내 마음을 묘하게 자극하는 대상이 있기 마련. 자극이 오면, 들여다본다.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몇 번의 대화만으로도 호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그 사람들이 놀라울만큼 특이한 모습이라거나 대단한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주로 호감과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은 호의나 환대의 표정, 열려있는 마음, 선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건 몇 마디의 대화 - 그러니까 대화할 때의 눈빛이나 나의 말을 듣는 표정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며칠 전 저녁, 건물에서 공용으로 쓰는 정수기 앞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


"이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인가요?"


얼굴만 알고 있던 분이라, 가볍게 통성명을 나눴다. 마침 같은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 그날따라 그 사람을 관심있게 보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들었는데 어쩐지 더 많이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결이 맞는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살면서 결이 맞는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바로 알은 체를 해야 한다.


"언제 괜찮으시면 점심 식사 하실래요?" 물론 거절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호기심을 일으키는 타인을 우연히 만나는 일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 당황스러움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알아본 사람 중에 이런 급작스런 제안을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에게 호감을 느꼈으니, 그도 내 마음을 조금은 느꼈겠지! 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갑자기 인생의 친구가 되고 그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나와 비슷한 사람일 거라고 억측한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궁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 만남이 지속되든 아니든, 내 일상에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즐거움이다.


이번에 새로 사귄 친구는 대화를 할 때 어찌나 눈을 반짝거리면서 경청하는지, 짧은 시간이라도 내 인생을 털어놓고 싶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점심시간에 만나 우리는 종횡무진 주제를 넘나들며 대화에 몰입했는데, 역시나 내 직감대로 나와 너무나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친구였다. 쿵, 짝, 쿵, 짝 서로의 이야기에 탄성을 뱉고, 박수를 쳐가면서 수다를 떨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의 대화와 리액션이 꽤나 리듬감이 있었던 것 같다.


가장 나 답게 존재할 수 있는 관계


이 친구와도 '결이 맞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끼는 대상, 이상하게 연결되고 싶은 존재는 소중하다. 결이 맞는 사람과의 대화는, 대화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세밀하게 느끼게 한다. 이날 우리는 좋은 관계와 좋은 환경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결이 같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게 최선의 환경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때로 우리는 닮은 사람에게 친숙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장소, 어느 역할을 맡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여진다. 회사에서, 집에서, 친구들끼리, 선후배사이, 교회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우리는 대게 조금씩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어디서나 일치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너무 부럽다!) 어떤 조직에서 대단히 외향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다른 조직에 있을 때는 입을 다물고 조용해진다. 몽상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도, 온통 몽상가들이 있는 조직에서는 현실주의자적인 면모를 발휘하며, 허무맹랑한 말들을 재단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여러가지 기질 중에 내가 가장 편안해 하는 내 모습이 있고, 어쩐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결국 좋은 환경이란 나를 가장 나답게 표출하고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다. 내가 나답게 굴 수 있는 관계가 좋은 관계다.


이런 말을 뱉고 내 상황을 돌아본다. 나는 내 조직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일하고 있나? 내가 몸담고 있는 여러 인간관계 중에서, 회사에서의 나는 가장 작은 존재같이 느껴진다. 평소에 나는 말도 많고 흥도 많고 장난도 많지만, 회사에서는 꾹꾹 누르고 참고 점잖게 있으니까. 이건 회사라는 사회적 조직이나 공간의 문제일까? 나 자신의 성정을 그대로 발휘하며 일할 수 있는 조직이 따로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또 막상 글을 쓰다보니, 내가 '나와 닮은 사람'을 발견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타인에게 가장 크게 열려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가 누구라도 내가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 사람 말을 경청하면, 우리는 이전과는 또 다른 관계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당장 회사에서 이렇게 나를 열어 보일 수 있을까? (대체 그건 왜 어려운 걸까?)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 나에게 더 좋은 환경, 나에게 더 좋은 일터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이런 재미, 앞으로도 후두둑 내 마음을 두드리는 사람을 놓치지 않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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