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없는 계획 세우기

03. 프로계획러 - 이번에도 실패하란 법은 없다

by 느루양
[사는 재미 101]

03. 프로계획러 - 이번에도 실패하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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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 년이 그저 300일이었다면, 달도 없고 월도 없이 그저 연속된 숫자였으면 어땠을까?


달력의 달이 바뀌고, 요일이 바뀌는 게 그저 사람들이 인지하기 위해 설정해 놓은 것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새해를 시작으로, 연말, 월말은 마무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매월 30일쯤 강하게 뇌리를 치는 ‘벌써 한 달이 다 갔단 말이야?’라는 감각은 일상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꽤 효과적인 장치다. 어쨌든 그 순간 허리 한번 다시 곧추세우게 되니까.


오늘도 거짓말처럼 4월의 첫 날이 왔다. 나 같은 프로계획러에게 연초, 월초, 월말은 괜히 마음이 바빠지는 날이다. 계획을 점검하고, 새로운 계획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대목에서 나를 잘 아는 사람만이 코웃음을 치겠지. 한번 정해놓은 계획을 쭉 지키면 되는데, 왜 매월 계획을 다시 세우느냐고 말이다. 그야... 거의 대부분 잘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자면, 월초에는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계획인데, 신기하게도 월말에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계획이 된다. 매달 실패하고 매달 도전한다.


나는 계획을 잘 세우는 방법‘만큼은’ 알고 있다.


1) 실행 가능한 범위의 계획을 세운다
2) 구체적으로 행동을 쪼개서,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계획한다.
3) 실행한다.


나의 계획 생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잘 안다. 저 세 단계 중 앞 두 단계에 45%, 45%를 쓰고, 가장 중요한 3번 항목에 10% 정도의 에너지를 쓴다. (하, 때론,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 할 일을 마친 기분이 드는 게 다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세운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일상에서 벌어졌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떠올려보는 일이다. 내가 좀 더 좋은 체력을 갖는 것, 내가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어학 실력을 준비해놓는 것, 재미있는 취미 생활을 갖는 것 같은 일을 떠올리고 구체화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렇게 돈도 되지 않는 무용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점에서 ‘계획 세우기’야 말로 나의 진짜 취미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계획러가 되기 위해선 실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원칙이 있다. 계획을 아름답게 세웠으나, 실행하지 못했을 때, 자책을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애쓰지 않아도 다가왔다 지나가는 매월의 30일처럼 받아들이고, 새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계획을 짜는 순수한 즐거움이 죄책감에 훼손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계획을 짜고, 실패하고, 또 짜고 실패하다보면 그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은 계획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4월이 왔고, 이 달의 계획을 다시 세웠다. 2019년의 지지부진한 1분기를 넘어서, 조금 더 활력 있는 2분기를 보내볼 예정이다. 운동도 하고, 재미있는 공간을 찾아 외출도 더 많이 해볼 거다. 내가 이제까지 계획을 지키지 못했다고, 4월의 계획을 망치란 법이 없잖아? 다가오는 4월은 누구도 아무도 미리 겪어보지 않은 완전 새것의 시간인데. 전환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법이다. 어쩐지 이번 달엔 계획한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5월의 첫날에 ‘실행의 기쁨이란!’ 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게 계획이라면 나의 계획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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