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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Oct 17. 2023

그날 밤, 그녀의 사정

(21)

엄마가 있는 시설은 ‘노인요양 공동생활 가정’이었다. 치매나 노인성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은 일반 노인요양원과 같지만, 최대 인원이 9명으로 제한되어 있고 일반 가정집에서 생활한다는 점이 달랐다.


내가 그나마 맘 편히 엄마를 이곳에 보낸 이유도 병원이라면 치를 떠는 엄마가 가정집이니 적응을 잘 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개인실을 쓰고, 공동 거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매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외롭지 않으면서도 대형 요양원보다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돌 지난 우리 아기는 가정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카페에 아기의 생활 사진을 업로드 해준다. 아기가 오늘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친구가 생일을 맞아 파티를 했는지, 산책을 다니며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기를 보면 '잘 지내고 있구나' 안심하게 된다. 두 돌도 안 된 아기를 시설에 맡겼다는 미안함도 덜해진다. 


요양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생활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받아보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생일날 거하게 차린 상을 받은 엄마가 고깔모자를 쓰고 웃는 모습, 옆에서 박수를 쳐주는 할머니들, 고스톱을 치는 엄마, 체조를 하는 엄마, 정원에서 꽃을 만지는 엄마... 이런 사진들을 보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그러나 알고 있다. 어린이집과 요양원 모두 좋은 순간만을 골라 보호자에게 보여준다는 것을. 사진 속 엄마는 웃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요양원을 싫어했다.


"내가 미쳤지. 여길 내 발로 다시 들어오다니."


"엄마 거기 영원히 있는 거 아니잖아. 두 달 있다가 나오기로 했잖아."


"답답해 미치겠어. 죽을 것 같다니까."


엄마는 병원에서도 똑같이 말했다. '답답해 미치겠다, 죽을 것 같다.' 아픈 엄마는 어디에 있어야 만족할까.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엄마 집? 골치가 지끈 아파왔다.


"누가 나를 계속 감시해. 어제는 내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이 사람 누구냐고 물어봤어.”


"엄마, 착각이야. 요양원에서 누가 엄마만 전담 마크하면서 감시해. 가뜩이나 직원도 별로 없는데. 핸드폰 전화번호부 뒤진 건 왜 그랬는지 내가 한번 물어볼게."


"됐어. 있잖아, 어제도 누구 한 명 잡혀왔어. 밤에 안 자고 거실에서 난리 치다가 갑자기 조용해진 거 보면, 기절시켜서 어디 가둔 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치매 증상에 망상과 의심이 있기 때문에, 엄마가 이런 말을 하면 나는 굉장히 예민해졌다. 난 여전히 엄마가 치매인지 아닌지 확신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엄마가 완전히 치매라고 결론 내리면 마음을 아예 접을 텐데, 마음 한구석엔 어쩜 치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치매는 비가역적이고 섬망은 가역적이다. 어느 순간 돌아올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기에, 나는 원장에게 전화해 긴지 아닌지 물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엄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니까.


"안녕하세요 원장님, 오미실 어르신 딸입니다."


"아휴 전화 잘했어요. 진짜 내가 못 살겠어."


"네? 왜요?"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 어젯밤에 벽에 똥칠한 거 알아요?"


"네?? 저희 엄마가요 벽에 똥칠을요?"


"엄마가 아직 설사가 안 멈춰서 기저귀 하고 있거든? 근데 설사를 하셨나 봐. 말하면 우리가 알아서 깨끗하게 엉덩이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줘요. 그런데 자기가 직접 갈아입겠다고 기저귀를 벗다가 손에 다 묻었나 봐. 거기서 멈추면 되는데 여기저기 짚고 다녀서 온 방이 다 똥이야. 우리 그거 청소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요? 이불에도 묻혀서 세탁하느라 선생님들이 잠을 못 잤어."


"아 엄마가 왜 그러시지... 죄송합니다. 엄마가 아마 누가 똥기저귀 갈아주는 게 창피해서 그랬을 거예요. 창피함을 느끼는 걸 보면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슬쩍 운을 띄우고, 아까 엄마가 전화로 말한 일의 진위를 파악하면 되겠다 싶었다.


"따님은 아직도 모르네. 내가 말했잖아. 엄마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치매라니까. 엄마는 이제 세상에 없어. 창피한 걸 아는 사람이 저 지경을 만들어놔? 벽에 똥칠하는 치매 노인 얘기 들어봤잖아. 아무튼, 엄마는 우리가 잘 돌보고 있으니 걱정 말고 아기나 잘 키워요."


원장은 내 시도를 칼같이 차단했다. '엄마는 치매다, 엄마는 세상에 없다, 이미 끝났다.‘ 매번 듣는 말이지만 매번 찌릿하게 가슴을 찔렀다.


가만 보면, 원장의 말투가 예전보다 더 퉁명스러워진 것 같았다. 엄마를 보러 가거나 외출시키려고 전화하면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기가 죽어서 말을 더듬게 됐다. 돈 내고 정당하게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좀 더 당당하면 좋으련만, 어린이집도 그렇고 이런 돌봄 시설을 대할 땐 조심스럽다. 혹시 보호자가 밉보이면 시설 이용자가 티 안 나게 차별받거나 홀대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요양원에 계약서 쓰러 갔을 때는 내 맘을 이해해주고 엄마를 잘 보살피겠다 약속했으면서, 이젠 골칫덩이 치매 노인 취급을 하고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선 달리 방법이 없는 내가 을이다. 요양원은 을처럼 다가와 이젠 갑처럼 굴고 있었다.


물론 요양원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많았다. 도움이 절실할 때 자격도 안 되는 엄마를 받아주고, 24시간을 잠 안 자고 끝없이 말하는 엄마를 보살피고, 엄마를 부축해서 화장실에 다니고, 입맛 없는 엄마를 위해 특별 전복죽과 비빔국수를 해주고, 밥을 억지로 떠 먹여서 기운 차리게 해주었다. 엄마가 이만큼이라도 나아진 건 요양원 덕이 컸다. 자식도 못하는 일을 기꺼이 해준 고마운 분들이기에, 조금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도 좋게 좋게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의 원장은 성격이 좀 셌다.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 있는 여장부고, 나쁘게 말하면 기분파 독재자 같았다. 조금이라도 빈정이 상하면 신경질 내며 '우리도 이제 한계니까 퇴소하든지 알아서 하라'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면회 때 어르신들 드실 간식을 챙겨가면 연신 고마워하고 우리 아기를 너무나 예뻐해줬다. 이렇듯 기분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이기에, 직원들은 물론이고 할머니들까지 늘 원장의 심기를 살피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은 우리 엄마랑 완전 상극이다. 엄마는 내성적이고 얌전한 소녀 같지만, 고집 세고 반항기 있는 진보주의자기도 해서 평소 이런 사람을 극혐했다. 분명 원장과 엄마는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했을 테다. 휴... 두 달만 버티면 되는데 왜 이리 쉽지가 않은지.


이런저런 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정신이 아주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제 핸드폰을 어느 정도 작동할 수 있게 되었고, 카톡 쓸 때 맞춤법도 제법 맞게 썼다. 이대로 쭉 좋아지면 좋으련만.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간, 엄마에게 아기 사진을 보냈다. 긴긴 요양원의 밤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류미야, 아침 일찍부터 왜 카톡 했어?"


"아, 엄마... 지금 밤이야."


"아 밤이구나. 자다 깨서 아침인 줄 알았어."


"엄마 오늘 어떻게 지냈어?"


"별로지 뭐. 근데 류미야... 나 내보내줘. 사람들이 변한 거 같애. 원장도 예전이랑 달라. 나한테 엄청 강압적이야. 나를 막 누르려는 거 같애.”


보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억압적인 거 질색하고 자아가 강한 엄마는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원장이 그런 엄마를 길들이려 작정하고 나서는 장면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몸 회복하는 데만 신경 써. 걷기 운동도 하고. 돈 주고 서비스 이용하는 거니까 주눅 들 필요 없어."


그때, 누가 크게 신경질 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왜 이 밤중에 방에 불을 켜고 있어! 내가 못살아!"


우리 엄마한테 하는 말인가?


"아... 미안해요. 자다가 깨서 아침인 줄 알았어요. 우리 딸이 카톡을 보내서 그거 확인하려고 불 켰어요. 끄면 되잖아요."


엄마한테 하는 말이 맞았다.


"미실 언니, 딸이야?”


원장인 것 같았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누그러졌다.


"네, 딸이에요."


"아휴 딸이 고생이지. 미실 언니가 잘해야 돼. 밥 잘 먹고 얼른 건강해져야지."


원장이 마치 나 들으라고 크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 안 그래도 우리 딸이 걷기 운동 열심히 해서 빨리 나으라고 했어요."


이 말에 원장이 또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지금 죽다 살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걷기 운동이야! 사람들이 정신이 있어 없어! 무슨 기운도 없는 사람한테 걷기 연습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


왜 저렇게 사람에게 면박을 주지? 못할 말도 아니지 않은가. 나도 슬슬 화가 났다. 이걸 참아야 해, 한 번은 따져야 해?


"네에,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류미야, 이만 끊자."


엄마는 원장의 타박을 듣고도 그냥 굽혀줬다. 자존심 강한 오미실 여사가 가만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나는 알았다. 엄마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고, 화가 났다. 엄마는 아파서 케어를 받고 있을 뿐이지,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자식 듣는 데서도 저렇게 타박하는데, 평소에는 얼마나 심할까? 아무래도 단기간이라도 엄마가 있을 다른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찾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류미야, 나 정말 못 참겠어. 나 집에 혼자 있어도 살 수 있어. 응? 그러니까 내보내줘. 나 여기 더는 못 있어. 이제 한계야. 지금 와. 나 집에 데려다줘."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엄마를 데리고 나와야 하나? 두 달이 아니라 딱 한 달만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엄마를 보살필 만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데. 하지만 원장이 엄마를 어떻게 대하는지 직접 들었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나라도 저렇게 개무시당하면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알았어. 근데 지금은 밤이라 못 가고, 내일 아침에 갈게. 가서 얘기해."


"너 안 올 거잖아. 지금 와. 지금."


"내일 아침에 간다니까. 약속할게. 내일 만나서 거기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안 돼. 지금 와 지금!"


"내일 간다니까 엄마! 왜 이래 또! 하루만 버텨 하루만. 응?"


엄마는 한참을 뜸 들이더니 대답했다.


"그래... 일단 끊자."


나는 전화를 끊고 곧장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엄마를 조만간 요양원에서 빼내야겠다고. 오빠는 찬성했다. 돌아보면, 오빠는 늘 내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적극적으로 알아서 뭔가를 하지는 않지만, 내가 하자는 일에 딱히 토를 단 적이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밤 12시까지 하는 홈플러스에 갔다. 먹을 것과 각종 생활용품을 닥치는 대로 바구니에 넣고, 특대형 기저귀, 요실금 팬티, 방수 패드도 여러 개 샀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일단 엄마를 빼내자. 엄마가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다 가게 해주자. 집에 가는 게 소원이라는데 어쩌겠어. 게다가 엄마의 정신이 꽤 많이 돌아온 걸 느끼고 있지 않은가.


아침 일찍 요양원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짐을 차에다 넣고 집에 올라왔다. 내일 엄마의 소원이 성취되는구나. 뒤는 하늘에 맡길 셈이었다. 누가 뭐래도 엄마는 자신의 명만큼 살다 돌아가실 것이다. 안 그래도 이미 여러 번 죽었다 살아난 엄마 아닌가.


새벽 2시가 넘어 알람을 맞추려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미주 이모였다.


"이모?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류미야... 너네 엄마 요양원 탈출했다. 지금 할머니 댁에 와 있어. 맨발로."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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