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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Oct 18. 2023

새는 자유를 향해 낙하한다

(22)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내가 못살아 진짜!!!!"


그 시간까지 게임을 하던 남편이 깜짝 놀라 쳐다봤다. 난 아랑곳 않고 통화를 이어갔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고? 돌겠다 진짜. 아니, 할머니 댁까지 어떻게 갔대? 오밤중이라 택시도 안 다닐 텐데."


미주 이모가 말했다.


“한참 걷다 보니까 검은 차가 있더래. 차 문 두드리고 10만 원 줄 테니까 읍으로 가자고 했더니 군말 없이 태워주더래.“


“간도 크다. 택시도 아닌 일반 차를 잡아서 타고 왔다고? 환장하겠네."


"내 말이. 근데 지금 할머니가 걱정이야."


"할머니는 왜?"


"너네 엄마 지금 많이 말랐잖아. 할머니가 충격받으셨어. 엄마 붙잡고 왜 이렇게 됐냐고 계속 우시는 거야. 할머니 겨우 달래서 안방에 모시고 들어와서 눕혀드렸어. 너네 엄마는 지금 소파에 누워서 티비 본다."


하아 엄마... 그거 몇 시간을 못 기다려서…


"요양원도 발칵 뒤집혔어. 엄마 없어진 거 알고 그 동네를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찾았대. 내가 요양원에 전화했더니 직원이 너무 놀래서 숨을 못 쉬어. 근데 너네 엄마 저 몸으로 어떻게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걸어왔는지 모르겠다."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네. 하여튼 보통 사람은 아니야… 아 모르겠다. 이모 얼른 자. 내가 내일 아침 일찍 할머니 댁으로 갈게."


"알았어. 내일 와 그럼."


남편은 내 통화 소리를 듣고 상황을 전부 파악한 상태였다.


"장모님 괜찮으시대?"


"응. 지금 소파에 누워서 티비 보고 있대."


"다행이네."


탈출할 줄이야. 치매 카페에서 가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탈출했다는 글을 보긴 했지만, 그게 내 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맨날 뛰어내린다고 협박하더니 진짜로 저질렀네. 무엇을 상상하건 매번 엄마는 그 이상이었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어떻게 머리를 짜내든, 늘 최악의 방향으로 전개되어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미칠 것 같았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싶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가슴 한켠이 조금은 후련하기도 했다. 묘하게 시원한 기분. 어이없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저 여인을 어찌하리까. 저 사고뭉치 아줌마(였지만 이제 노인네가 되어버린)를 어찌할까요. 그래, 졌다 졌어. 이제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 훨훨 날아가. 엄마의 인생은 엄마가 결정해. 나는 이제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할게.


어쩌면 내가 엄마의 딸이고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긴 했어도, 엄마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건 월권이었을지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주인이 되어 살고자 했을 것이다. 아주 짧을지언정.


다음날 아침 8시, A시의 외할머니댁에 도착했다. 그러나 엄마는 거기 없었다.


"류미야, 너네 엄마 대박이야. 아침에 할머니랑 셋이 공원에 산책 나갔거든? 그런데 할머니 뭐 좀 봐드리고 고개를 돌렸더니 너네 엄마가 없는 거야. 전화도 안 받아. 내가 놀래서 할머니 벤치에 앉혀놓고 여기저기 뛰어다녔거든? 다 봐도 없어. 근데 나중에 전화가 왔어. 본인 집에 가셨댄다."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엄마? 어디야 지금."


"나 지금 집이지. 침대에 누워 있어."


작지만 밝은 목소리였다.


"엄마 왜 거기로 갔어?"


"여기가 내 집이니까 와야지. 어젯밤에도 여기로 올까 하다가 혹시 요양원에서 잡으러 올까 봐 할머니 댁으로 간 거야."


용의주도하기까지.


"혹시 아침에 미주 이모가 요양원에 신고해서 나 데려갈까 봐 집으로 왔어. 이제 아무도 문 안 열어줄 거야."


"집까지 걸어갔어? 1킬로미터를?"


"응. 걸을 만하던데? 나 이제 다 나았어. 컨디션도 아주 좋아."


"...그래 엄마. 내가 금방 갈게. 꼼짝 말고 침대에 누워 있어."


"알겠어. 류미야 조심해서 와."


전화를 끊고 미주 이모에게 말했다.


"이모, 나 엄마한테 가볼게."


"그래 류미야, 고생해라."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미주 이모는 눈이 퀭했다. 엄마의 삶의 의지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침해하고 있었다.



엄마 집, 부엌 식탁에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았다. 엄마는 통화할 때와 달리 몹시 지쳐 보였다. 하지만 눈빛은 반짝반짝했다. 화가 치밀었다.


"엄마, 내가 오늘 아침에 온다고 말했잖아. 고작 몇 시간만 참으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탈출하면 어떡해. 얼마나 위험한 짓인 줄 알아?"


"너 맨날 오겠다고 하면서 안 왔잖아. 그러니까 나도 방법이 없었어."


"그래도 나를 믿었어야지. 내가 엄마 안 꺼내주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라니까. 휴... 차는 어떻게 얻어 탄 거야?"


"그게... 가만 보니까 일부러 노린 거 같애. 그 근처에 요양원이랑 요양병원이 있거든? 정신병원도 있어. 나처럼 밤에 탈출하는 사람이 가끔 있으니까 태우고 가려고 잠복한 거 아닌가 싶어."


"엄마, 말이 돼 그게?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면서 밤을 샌다고?"


"응. 내가 10만 원 줄 테니까 읍으로 가자고 했더니,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태워줬어. 노렸다니까.“


한숨이 나왔다. 인신매매면 어떡하려고 아무 차나 덥석 타냐. 진짜 위험할 뻔했네. 지금 여기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엄마 죽을 뻔한 거 알아?"


"죽어도 할 수 없어."


"지금 나랑 오빠랑 이모들이랑 다 엄마 살리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데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


"그럼 어떡해. 내가 거기서 숨 넘어가게 생겼는데."


"숨 안 넘어가."


"넘어가."


확 짜증이 났다.


"아유 진짜!!! 내가 엄마 때문에 제 명에 못 살아. 왜 이런 짓을 해. 내가 지금껏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끌고 왔는 줄 알아? 나 엄마 나와서 있을 곳 찾아보고 있었어. 요양등급도 받아야 하는데, 요양원에서 받아야 훨씬 쉽게 나와. 일주일만 기다리면 심사 가능 기간이라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런 짓을 하냐구. 왜 그거 하나 못 기다려. 요양원 탈출이라니, 뉴스에 나올 일이야. 집에 오기도 전에 죽으면 어쩔 뻔했어 어?? 대체 자식들 생각은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정말!"


화가 나서 씩씩댔다. 내가 얼마나 신경 쓰면서 꾸역꾸역 이 모든 걸 만들고 있었는데, 그걸 한 번에 와장창 깨버리냐. 하룻밤도 못 견디고!


엄마는 차분했다.


"너 왜 이렇게 짜증을 내니? 어차피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지금부터 어떻게 해나가는지가 중요하지.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잘해봐야 하지 않겠어? 일단 일주일만 있어보자.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그 생각이 뭔데 대체?"


"미주 이모랑 같은 교회 다니는 성가대 친구분 있잖아. 그분이 낮에 오셔서 음식이랑 집안일 해줄 수 있다고 했어."


"그건 그분이 한다고 쳐도, 요양보호사도 아닌데 엄마 기저귀는 어떻게 바꿔줘?"


"나 기저귀 안 차도 돼. 화장실 갈 수 있어. 혹시 모르니까 요실금 팬티만 있으면 돼."


"요양원에서 한 말이랑 다른데?"


"설사 이제 멈춰서 괜찮아. 화장실 가서 용변도 혼자 봤어. 누가 부축해주긴 했지만, 어쨌든 혼자 했어."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분이 예전에 와서 집안일 도와주셨는데, 잘하더라고. 사람을 믿어야 해. 믿고 맡겨야 더 잘해."


그렇게 나도 좀 믿어주지 엄마.


"정신도 많이 돌아왔어. 전화기도 쓸 수 있고, 기억만 좀 깜빡깜빡하는 거 빼고는 괜찮아. 나... 몸도 많이 나아졌어. 오죽하면 그 거리를 걸어왔겠니."


그건 그렇다. 엄마는 마른 낙엽처럼 말라 있긴 했지만,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나 있잖아... 지금 행복해. 나 바라는 거 많이 없어. 그냥 일상을 살고 싶어. 남은 삶을 진짜 사는 것처럼 살다가 가고 싶어.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어. 행복센터에 가서 바리스타 수업, 영어회화, 라인댄스… 이런 거 배우고 책 읽고 뜨개질하면서.”


엄마는 약간 울먹이더니, 잠시 말을 멈췄다.


"나 요양원에서 참으려고 노력 많이 했어. 근데 정말로 1분 1초도 더 못 있을 것 같았어. 엄마는 널 이해해. 나도 같은 상황이면 너처럼 했을 거야. 앞으로 류미 너 걱정 안 시키는 선에서 잘할게. 이제 엄마는 오빠한테 넘기고, 넌 엄마 그만 걱정하고 신경 쓰지 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 나날이 생각났다. 아기, 남편, 시부모님, 이모들, 간병인들, 요양원 직원들, 오빠와 새언니의 입장까지 생각하며 모두를 최대한 다치지 않게, 민폐 끼치지 않게, 그러면서도 엄마가 최대한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내게 하려 발버둥 친 시간들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기를 쓰고 노력해도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바라보며 느낀 무력감도 떠올랐다.


엄마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류미야, 이제 괜찮아. 엄마 날마다 좋아지고 있어. 그리고... 사는 날까지 사는 거지 뭐. 엄마는 지금 죽어도 좋아. 말했잖아, 뇌수술하기 전에. 죽는 거 하나도 안 무섭다고. 나 그냥 일상을 살래. 너는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좀 쉬어."


눈을 감았다. 엄마를 이대로 둬도 될까? 엄마를 살리러 더 뛰어다니지 않아도 될까? 이제 나도 지쳐 있었다. 태생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내게 이 모든 일들은 거대한 시련이었다. 어쩌면 내 과도한 불안 때문에 엄마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도록 했나 싶었다.


“근데 류미야…”


“응.”


“나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거 맨날 상상했거든? 근데 용기가 안 나더라. 맨날 벼르기만 하고 실행을 못했어. 근데 어제는 막 용기가 나는 거야.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애. 그래서 눈 꼭 감고 뛰어내렸어. 나 잘했지?”


엄마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마 소심한 그녀 인생에 난생처음 해본 일탈일테다. 원래 얌전한 애들이 대형사고 친다.


“잘하긴 뭘 잘해! 요양원에 가서 엄마 짐 찾아올게. 좀 자고 있어."


나는 차에 시동을 걸고 요양원으로 출발했다.


요양원 갈 때마다 느낀 거지만, 길이 참 아름다웠다. 도로 옆에 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어서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처음 요양원에 갈 때는 나뭇잎이 연두색이었는데, 이제 완연히 진한 초록으로 변해 있었다. '요양원 가는 길만 아니면 완벽한 드라이브 코스일 텐데'하며 늘 생각했는데, 오늘 비로소 완벽한 길이 되어 있었다.


요양원에 도착하니 원장이 미리 싸둔 엄마의 짐을 건네주었다. 캐리어에 미처 담지 못한 라디오와 고양이 수면등은 종이 가방에 담겨 있었다. 엄마는 요양원에서도 집에서 하던 것처럼 매일 밤 작은 불을 켜놓고 라디오를 들었다고 했다.


"혹시 남아 있는 물건 있는지 방에 가볼래요?"


원장은 왜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괄괄하던 여장부 같던 모습도 전혀 없었다. 자기가 너무 강하게 나가서 이런 일까지 벌어졌다고 생각해서일까?


엄마의 방은 비어 있었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고, 선반 위를 살펴보고, 옷장도 열어보았다. 깨끗했다. 침대 옆 창문을 열어보았다. 이곳에서 엄마가 뛰어내렸구나. 1층이긴 했지만 제법 높이가 있었다. 여길 뛰어내려 탈출할 생각을 하다니, 참 대단한 어르신이야.


창문 너머로 보이는 들판에는 새하얀 들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고요히 부는 바람에 꽃들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엄마가 이곳을 보고 '여기 너~무 예뻐'라고 말했구나. 꼭 꿈에 들어온 것처럼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매일 밖을 내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땐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겠지만, 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도 여전히 아름다웠을까?


더없이 예쁜 풍경이 지옥으로 변했을 때 엄마가 느꼈을 기분을, 나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짐을 뒷좌석에 가득 싣고 엄마 집으로 출발했다. 오늘 저녁엔 아주 맛있는 음식을 한 상 차려줘야지,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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