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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Oct 18. 2023

에필로그: 새들은 죽기 전 어디로 갈까

(마지막 회)

엄마의 투병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엄마가 요양원을 탈출했을 때다. 그동안 겪은 일만 해도 기가 막혔는데, 요양원 탈출은 그야말로 드라마 소재 감이었다. 스토리를 꾸며내지 않아도 그 자체로 한 편의 소설이 될 터였다.


'써보자. 엄마의 좌충우돌 투병기를.'


사실 엄마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내가 정말 쓰고자 한 건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이 늙고 병들면서 겪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더 나이를 먹었다면 주변에서 들어서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들을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터득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대체 이건 왜 이래?' 싶은 것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늙고 병드는 과정은 초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죽음은 생각보다 숭고하지 않다는 것을. 결국 인간은 스러져가는 서글픔을 기꺼이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엄마가 아프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이런 세상이 있었어?'라고 할 만큼 처음 맞닥뜨리는 일 투성이었다. 병원인 듯 병원 아닌 요양병원의 독특한 시스템, 환자를 골라 받는 대학병원 응급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초래하는 병원의 융통성 제로 코로나 방역 지침, 집안 뿌리를 뽑는 간병인 비용, 수술 공장으로 변해버린 대학병원의 시스템, 환자의 삶의 질을 외면하는 의사들, 극한의 고통에 내몰리는 치매 가족들,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오해받는 요양원의 현실...  


하지만 갖가지 시스템의 불합리를 메꿔준 건 사람이었다. 머리가 좋아서 서울대 의대를 사교육 없이 들어갔지만 첫사랑에 실패한... 친절한 요양병원 의사, 바쁜 중에도 엄마의 말동무를 해준 요양병원 영양사, 생업을 마다하고 엄마를 챙겨준 미주 이모, 처음에는 냉정했지만 나중엔 농담까지 주고받은 응급실 간호사, 반말은 했지만 수술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준 외과 의사, 엄마가 병원 화장실에서 바지를 올리지 못하자 도와준 다른 암 환자, 밤에 잠 못 자는 엄마를 위해 침대 옆 바닥에 자리를 깔고 함께 자준 요양원 직원, 반찬을 해서 엄마에게 날라준 새언니, 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정신 놓은 엄마와 애틋한 마음을 주고받은 엄마의 전 남편(=우리 아빠)...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사람이 죽음으로 가는 길에도 온 마을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이 기꺼이 나서서 엄마를 도왔다. 나 혼자 모든 짐을 어깨에 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나눠서 져주고 있었다. 덕분에, 엄마는 삶을 조금 더 부여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엄마랑 대화하다가 깜짝 놀랐다.


"나는 내가 죽는다는 생각은 1도 없었어."


"엄마... 엄마가 살 거라 생각한 사람은 1도 없었어."


그 지경이 됐는데도 살 거라 생각했다니. 이건 의지일까, 투지일까, 생명력일까, 아니면... 깡일까.


모두가 엄마의 죽음을 예견할 때, 오직 그녀 자신만이 삶을 향해 묵묵히 걸었다. 불안해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그 길밖에 없다는 듯 느리지만 끈질기게 나아갔다. 그녀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좋아지면서 많은 일들을 해냈다.


- 5월 달력을 뜯어서 6월을 만들더니, 이젠 10월까지 만들었다.


- 다신 못 나갈 거라 생각했던 모임에 참석해 회비 장부를 실물로 전달했다.


- 요양원에서 '살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던 오빠 친구 엄마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 차 문도 열지 못했는데, 이제 스스로 택시에 타서 혼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온다.


- 밥을 입에 넣어줘야 간신히 삼켰었는데, 이제 직접 밥을 안치고 간단한 밑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엄마는 자신이 믿는 대로 됐다. '나는 살 것이다', 했는데 정말 살아났다.


"엄마는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니야.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거 같다니까."


“난 장모님이 사실 줄 알았어.”


남편이 말했다


“어떻게?”


“장모님 요양원에서 응급실로 옮긴 날, 내가 손가락을 봤거든. 손가락이랑 손톱이 아주 건강하고 튼튼해 보였어. 곧 돌아가실 분의 손가락이 아니었어.“


남편이 손가락으로 사람의 생사를 판단하는 신통한 능력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로써 엄마가 살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2로 늘었다.



엄마는 몇 달에 걸친 기억이 거의 통째로 사라졌다. 요양병원은 아예 기억에 없고, G대학병원에서의 일들은 드문드문 기억할 뿐이다. 요양원 생활은 반 정도만 기억한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거친 언행도 기억 못하는 것 같은데, 엄마의 드높은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영원히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현재 엄마는 원하던 대로 일상을 살고 있다. 문득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사생활의 천재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삶은 일상이다>가 생각난다. 대단한 무언가가 삶을 이루는 건 아니다. 매일의 일상적인 일들이 내 시간을 채우고, 그게 모여 내 인생이 된다.


엄마가 겪은 일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놀라운 것이든, 그녀의 인생은 현재의 일상이 규정할 것이다. 암이 네 번이나 걸리고 요양원에서 탈출한 특별한 일은 이제 엄마 인생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오늘 어떤 산책을 하고, 어떤 점심을 먹고, 누구와 통화하느냐가 엄마의 인생을 채울 것이다. 그게 엄마의 삶의 본질이 될 것이다.


언젠가 엄마의 삶도 끝이 나겠지.

그때까지는 살 일이다.

사는 것처럼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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