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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과겨울 Jul 11. 2019

시간을 놓는데 필요한 시간.

영화 <고스트 스토리(A Ghost Story)>



고스트 스토리(A Ghost Story)
감독: 데이빗 로워리
주연: 루니 마라, 케이시 애플렉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해도 한번 일어난 일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적당히 이해하고 수긍하게 한다. 그러나 이해하지 않고는 도무지 흘려보낼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충분히 납득될 때까지 지나간 시간을 붙들고 있다 보면 어떤 이유나 설명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놓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불현듯 ‘갇혔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있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시시각각으로 근사하게 반짝이는 공원의 호수를 보면서도 매일같이 갇혀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에서 위안을 얻던 중 호수 바로 옆에 작은 놀이터 크기의 동물 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공원 옆엔 동물원이 있었고 거기엔 열 마리 정도의 원숭이 무리가 모여 있었다. 그 공간의 수십 배 이상 되는 풍경 안에서도 지겨움에 몸서리치던 나는 그때 평생 생각해본 적 없던 원숭이의 마음을 헤아렸다.(그날부터 더 확고히 갇힌 동물을 관람하는 데 돈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우습게도 얼마간은 동물원에서도 일해야 했다.)

갇힌다는 건 물리적인 형태나 크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떨칠 수 없는 기억이 걸음마다 달라붙어 끝에서 시작으로 이어지면 어느 순간 어디에 있어도 기억에 갇히게 된다. 영화 <고스트 스토리>는 1.33:1의 정사각에 가까운 화면 속에 기억과 시간에 갇힌 ‘고스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고 없는 이별은 두 사람을 각각 남은 사람인 동시에 떠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먼저 사고로 죽은 C(케이시 애플렉)는 ‘고스트’가 되어 두 사람이 함께 하던 공간에 남았고, 연인을 잃고 혼자 남은 M(루니 마라)은 ‘고스트’가 있는 집을 떠났다.

-난 누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누구요?
-기억이 안 나요.
한 시간 반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날씨와 계절이 바뀔 뿐만 아니라 수십 년에서 어쩌면 수백 년에 이르는 긴 시간이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시간은 무척이나 정적이다. 영안실에 누워있던 C가 ‘고스트’로 일어나기까지, M이 부엌에 주저앉아서 말 그대로 우걱우걱 파이를 먹고 토하기까지, 그 옆에서 가만히 응시하듯 담아낸 화면은 제 의지로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사진처럼 보인다. 시간의 더딘 흐름은 모든 것이 바삐 움직이는 풍경 속에서 나만 도려낸 것 같은 기다림의 시간을, 목적도 대상도 희미해질 때에 그럼에도 이어가는 기다림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한다.

M이 헤드폰을 끼고 C가 작곡한 음악을 들을 때 Daniel Hart의 <I Get Overwhelmed>이 흐른다. 과거와 현재의 장면이 뒤섞이고 바닥에 누워서 뻗은 M의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한 곳에 ‘고스트’가 된 C가 서있다. 음악은 인파 속에서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고, 고립 속에서 체온을 느끼게 한다. 아무것도 닿지 않더라도 그 순간에 M은 C를 느꼈을 것이다.

‘죽음’과 ‘기억’이라는 키워드(더하자면 ‘음악’까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영화 <코코(Coco)>가 떠오른다. 그러나 <코코>의 유령들은 남은 사람들의 기억에 의해 존재의 유무가 결정되는 반면 <고스트 스토리>는 유령이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의지는 오직 특정 대상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차가운 계열의 어둠, 낮은 채도의 색채가 분위기를 한층 더 우울하게 가라앉히지만 그럼에도 여운의 끝에 오묘한 따뜻함이 남는 이유다. 슬픔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그러다가도 한순간 몰려오는 슬픔에 주저앉기도 하지만 어쨌든 M은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침대에 쓰러져 우는 M을 지켜보던 ‘고스트’는 조심스레 등을 어루만지는데,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의 위로는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를 떠올리게 했다. 천사 다니엘(브루노 간츠)은 고통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그 곁에 다가가 긍정의 말을 불어넣는다. 쏟아지는 슬픔을 피할 생각도 못하고 온몸으로 무력하게 맞는 와중에도 어딘가에는 우산을 건네려 애쓰는 손이 있다.

처음에 느낀 감상은 지루함과 약간의 슬픔이었다. 세상에 대해서든, 연인에 대해서든, 자신에 대해서든, 준비 없는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담은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한 페이지도 되지 않는 작은 쪽지를 꺼내려 문틈의 페인트를 긁고 또 긁으며 무수한 시간을 지나는 ‘고스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을 때, 다시 본 영화는 처음보다 훨씬 많이 슬펐다. ‘고스트’가 차마 꺼내지도 못하고 사라지지도 않는 어떤 감정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쪽지의 내용을 확인하고 기다림이 멈추는 순간, 감정의 유효기간은 날짜가 아니라 사건으로 만들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다른 친구는 어떻게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공간에 머무르려 하는 ‘고스트’의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아주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고스트’의 존재에서 각자가 필요한 위로를 읽었다.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올 영화를 그때마다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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