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 미니멀 라이프 실천기

by 여름해변


퇴사한지 반년이 훌쩍 넘었다.

퇴사직전 1년간의 수입지출을 정리해 보니, 월급의 95%를 저축했다. 월급의 5%만 썼다는 얘기다.

월급외 현금흐름으로 생활비의 95%를 충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회사 생활에 배짱이 생기기 시작했다.

맡은바 업무는 충실하고 열심히 했지만, 부당 불합리한건 참지않고 내지르기 시작했다.

마음은 편했으나 반골로 찍혔다. 그렇게 인원감축 1순위에 리스트가 올라가 있던차에, 여러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터지고 담당자들 마저 줄퇴사하는 바람에 회사는 아부하듯 나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내년에 호봉보다 더 올려줄테니 조금만 고생해 달라고 했지만, 엊그제까지 자를라고 벼르던 회사의 토사구팽식 인사정책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연봉 안올라도 좋으니 내가 할수 있을만큼만 일하고 싶다고 했다.

회사다니면서 눈치 안보고 그렇게 맘 편하게 다녔던건 처음이었다.


몇개월 지나지 않아서 상황이 급변했다. 내가 담당하고 있던 중국 지사의 기술개발이 의외로 빨리 진행된데다 프로젝트의 선택과 집중으로 몇개가 폐기되자, 회사는 또다시 날 내보낼 빌미를 찾기 시작 했다.

결정적으로, 실수 남발하는 부사장 휘하 부서에 부사장에게 맞다이로 업무개선 요청했다가 감히 부사장한테 돌직구 날렸다고 나가란다.

중소기업 부사장이래봤자, 그냥 늙다리 팀장 명함상 직급에 불과한데, 무슨 급이 안맞는다걸 트집잡아 집에 가라는건지, 집에 가라는 팀장도 명분이 서질 않는지 30분동안 그걸 빙빙 돌려서 구차하게 변명 했었다.

알고보면 나역시 회사 생활에 배수진을 친 상황이었기에 무조건 회사 비판만 하고싶진 않다.


그렇게 난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당)했다.

47세 남성, 독신, 술담배 커피 안함, 인간관계 좁음, 대출없음, 비싼취미 없음, 10년된 소형차 보유

상황이 당장 구직 해야 할만큼 절박하진 않았다. 일하기 싫다기 보단, 더이상 회사에서 나를 잊고 영혼 털려가며 일하고 싶진 않았다.

나의 생활에 최대한 집중 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평소 미니멀 라이프를 동경해 왔고 실천했었다.

천성적으로 큰것, 화려한것, 복잡한것을 좋아 하지 않았던듯 하다.

이사전 빈집의 텅빈 분위기 만큼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도 없었을만큼 비워진걸 좋아했다.

순수하고 깨끗한것, 간단하면서 간편한것을 추구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많이 덜어내고 버릴수 있을거 같아서 적극적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욕망을 억누르며 소비를 참았던건 아니다.

불필요하거나 대체 가능한것은 아끼면서도, 꼭 필요한건 과감하게 쓰지만 최대만족을 얻자는 주의였다.


세상 가장 재미없을 47세 독신 아재의 생활 방식 넋두리겠지만, 바라건데 이글을 통해 비슷한 삶을 지향하는 독자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라이킷 말고 댓글로 생각나눔 부탁드립니다.)


1. 주거 미니멀 (원룸 라이프)

지금껏 계속 원룸에만 살아왔다.

원룸이지만 방이 꽤 넓고 주방이 분리되어서 공간감이 쾌적하다.

주거비용에 월 수십만원씩 지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행히 매우 안전한 전세를 구했기에 주거로 인한 고정지출은 전기 가스 수도등 관리비 월 7~8만원정도가 전부이다.

재건축 계획중인 오래된 아파트가 하나있긴 하지만 내가 살지 않고 월세주니 오히려 주거로인한 수입이 있다.

혼자 원룸에 사는게 부족하지만 않다면, 굳이 큰 집에 살면서 기회비용을 포기 할 이유가 없다.


2. 공간 미니멀 (정리정돈)

인테리어가 아무리 멋져도 더럽거나 너저분 하면, 골조만있는 빈공간 보다 못하단 생각이 든다.

소심해서 과감하게 잘 버리진 못하지만, 적어도 당장 쓰지 않을 물건이면 눈앞에서 안보이게 수납해 놓는다.

그리고 최대한 위로 쌓아 올려 빈공간을 최대한 넓히고, 침대 밑을 활용한다.

그렇게 메아리 칠 정도로 비어있는 널찍한 빈공간감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의 호연지기까지 느껴질 정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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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떄 정리 해 놓으면 들어올때 늘 기분이 좋다

3. 위생 미니멀 (청소)

정리정돈과 청소 청결상태는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너저분하면 물건사이에 먼지가 쉽게끼일것이고 청소손도 그만큼 늘어난다.

청소 물티슈3장으로 냉장고위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부분을 닦는다.

바닥은 락스푼물을 펄프 밀대에 적셔 침대 밑까지 바닥의 90%이상을 손쉽게 닦을수 있다.

주로 침구와 옷같은 섬유재질에서 먼지가 많이난다. 돌침대를 쓰니, 먼지가 확실히 줄었고 간편하게 물티슈로 닦아 청소 할수 있다.

매주 일요일 저녁, 깨끗하게 정돈하고 청소를 마치면 그 다음 한주를 한갓진 마음으로 시작할수 있을거 같은 기분이 든다.


4. 위생 미니멀 (빨래)

비싼옷을 사지 않는다. 주로 폴햄이나 유니클로를 사 입는데 무조건 물빨래 가능하고 수축 안되는 옷만 산다.

이불빨래 할라고 샀던 세탁기의 용량이 넉넉해서 빨래를 모았다가 2주~4주에 한번 한다.

속옷과 면소재 옷은 60도이상 온수에 담가 20분 이상 불리고, 이후 운동복 같이 늘어나는 옷은 찬물을 섞어 미온수에 불렸다가 최종 세탁을 한다. 온수로 세탁하기에 묶은빨래라도 쉰내 쩐내 안나고 변색도 안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뽀송뽀송하고 세재향 은은하게 나는 옷을 게어서 옷장에 넣는것을 소확행의 예로 들기도 했다.

KakaoTalk_20250611_101725319_01.jpg 작지만 많은것을 할수 있는 주방


5. 먹기는 맥시멈 (요리)

최근3년사이, 외식물가가 폭등해서 국밥한그릇을 사먹으려 해도 3년전 가격을 생각하면 "그돈씨" 본전생각에 안사먹게 된다. 8천원했던 국밥을 11천원주곤 쉽게 못먹겠더라. 맛없고 식어빠진 비싼 배달음식은 어플 계정조차 없다.

비싼 외식 물가가 장을봐서 요리 해 먹는 습관을 들이게 했다. 요리라기보단 취사에 가깝다. 대신 식재료는 되도록 신선 식품 위주로 ,재료 아까지 않고 듬뿍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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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취사해 먹긴 귀찮으니, 국은 한솥 끓여 소분해서 냉장고에 보관해 먹고, 간단하게 구워먹거나 볶아 먹을수 있는 메뉴를 좋아한다. 다행이 입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여러번 먹어도 질려 하지 않아 복잡한 요리가 필요없이 간단히 대량으로 만들어 며칠을 먹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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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게 한그릇만으로도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만큼 재료를 많이 넣는다

밥은 햇반을 먹는다. 햇반 한공기 천원꼴, 하루 한두공기 1~2천원이면 밥짖는 밥통값, 수고, 시간, 전기료, 쌀값을 거의 상쇄하는거 같다. 그리고 햇반그릇을 깨끗이 씻어 재활용하면 식기로 쓰고 마지막엔 간단히 버릴수 있어 간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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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레시피 낫또 비빔밥 (낫또, 날계란, 부추, 현미밥, 간장, 들기름, 김)



설거지가 귀찮긴 하지만, 청소 빨래후의 느낌처럼 싱크대 까지 닦고 마무리하면 그 뽀득뽀득함이 만족스럽다.

외식값 올라서 고탄수화물 고지방 음식 적게 먹어 살도 빠지니 완전 럭키비키 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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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먹는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적어도 사먹는것 보단 풍성하고 건강하게 먹을수 있기에, 재료는 맥시멈을 지향한다.




6. 취미 미니멀

걷는걸 무척 좋아한다. 걸으면서 생각 할수있고 생각을 정리할수 있고 생각을 잊을수도 있다.

가끔은 내가 걷기 중독자가 아닐까 할 정도로 좋은 풍경이나 분위기를 만나면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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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최대 & 월최대 걸음수

오래전부터 등산에 진심이었고, 2년전 부턴 달리기에 빠졌다.

둘다 발로 하는 운동이기에 신발만 좀 괜찮은거 신으면 되지, 비싼 의류와 장비는 그냥 남들에게 보기이 위한 체면치례용인거 같다.

누구보다 지치지 않고 높히 오를수 있고 멀리 달릴수 있다는 자신감은 비싼 장비보다 빛나고

정상에서의 멋진 풍경은 롯데타워 전망대 보다 훨씬 더 비싼 감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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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행 미니멀

여행 할땐 서두르지 않는다. 급하면 일이지, 여행은 아닐테니까.

호숫가를 달릴땐 물멍, 등산할땐 산멍도 좋지만, 시내버스 타고 창밖 풍경보는 버스멍도 은근 중독성 있다. 특히 부산 갈때는 늘 무궁화호 완행을 타는데, 철컹거리는 철바퀴의 ASMR 감성과함께 역마다 정차하며 오르내리는 경기, 충청, 경상도 사람들을 구경하면 재밌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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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차는 수동변속기다. 자동변속기 보다 확실히 운전이 재미있고, 연비도 20km 가 넘는다.

구불구불 오르락 내리락 산길을 능숙한 기어변속과 핸들조작으로 운전하다가, 문득 경치좋은곳이 나오면 차세워두고 산책이나 등산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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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 공포증 걸릴거 같은 이코노미석을 몇시간씩 타고 가이드에 제촉당하여 일정소화 해야하는 해외여행보다 익숙하고도 느린 국내 여행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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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문화생활 미니멀

한달 폰, 인터넷, 넷플릭스 요금 다 합해서 3만원(카드할인) 조금 넘게 나온다.

알뜰폰인데, LTE 데이터 무제한(1080P 해상도)에 핫스팟 용량 제한 없이 폰 하나로 노트북 TV 다 접속할수 있다.

생각해보면 30년전 90년대 비디오 한편 대여료가 2000원이었던듯 하다. 그에비해 지금은 월3만원 조금 넘는 금액으로 세상 모든 컨텐츠와 정보를 즐길수 있다것은 거의 문화복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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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에 진득하게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아파서, 영화나 공연관람에 집중하지 못하기에 가는일은 거의없다.

주로 유튜브 케이팝 뮤비를 보거나, 넷플릭스 다큐를 즐겨보는편이다.

유일하게 보는 공연은 연말 송년음악회 배토벤 합창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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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닐땐 매일매일 영혼이 털리는듯한 치열함에 암걸릴거 같았는데, 막상 퇴사해서 그 세상을 탈출해 보니 요즘은 도태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사실 30대 초반부터 조기은퇴를 꿈꿨다. 3년전 코로나 유동성 거품시기 유행했던 파어이족 그런거....

계기는 "소확행에 찌든 삶살기" 01화부터 05화까지 연재 할만큼 구구절절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평생을 놀고먹기엔 모아놓은 자산도 부족하고, 가지고 있는 자산가치가 폭락할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월100정도 벌수 있는일이 뭐가 있을까 탐색중인데, 막상 생각보다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무슨일을 하던 두가지는 확실하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것.

저출산시대 국가 반역자인 독신에다 국가 경쟁력 저하하는 백수지만, 가장 중요한건 내 자신이기에 사회의 틀에 얽매이고 싶진 않다.

지금 평일 대낮에 동네 스타벅스에서 케익하나 시켜놓고 몇시간째 글쓰는게 여유롭기도 하면서 어색하기도 하다.

천천히 글을쓰며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정리하며, 미래를 탐색하며 40춘기의 방황을 가라 앉혀 보려 한다.

TMI 긴글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가 계시다면 감사드리고, 공감해 주신다면 뿌듯할것이고, 생각나눔을 해주신다면 반가움에 오늘 하루가 보람찰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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