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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려니 Nov 08. 2023

어느 날의 숲은 메이비



반짝이고 알록달록한 게 없어도 좋아 딥블루만 있다면 차갑게 연마한 딥블루만 있다면 전진하는 용암을 이길 수 있어 그을린 기억을 잠재울 수 있어 못 박힌 영혼이라도 소생시키는 꿈


사랑해 사랑해 하고 숲은 외쳤다 옆구리에 사는 물두꺼비를 사랑해 사랑해 메아리가 왔다


어제는 당신이 밭을 매다 던진 낫을 황폐한 숲으로 받아냈지 반년에 걸친 가뭄, 딥블루는 말라가고 그만한 물두꺼비 없는 옆구리 어딨다고 한평생 농사만 지어온 당신의 낫은 협곡에 틔운 싹마저 베어버렸다 전소되는 것만은 막기 위해 사랑해 사랑해 입으로 소리쳐도 사랑은 감별사처럼 끄떡도 안 해 숲이 타도록 딥블루는 일렁이질 않아 메아리의 탯줄은 신과 연결돼 있다는 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걸 맨발로 오두막을 뛰쳐나가 검은 겨울 숲을 내달렸다 시퍼런 바다가 나올 때까지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냐 숲의 본거지는 가슴에 있고 언젠간 메마른 딥블루도 차오를 거야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거대하게 몰아치는 바다 앞 파란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그을린 숲 미지의 가슴 절망 끝에 딥블루...... 연마의 턴은 계속되고 어느 날의 숲은 메이비, 사랑하는 사랑하는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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