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 보내는 메일 3

3호 ; 北海道から送る心

by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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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너의 안부가 궁금한 날들이야.


나는 오늘 삿포로를 떠나. 아침에 추천받은 카페에 들러서 토스트와 커피를 마셨어. 카페에서 팝업 스토어를 하길래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는 후드가 달린 재킷도 샀어. 예쁘더라. 우리는 아침을 먹고 오타루로 향하는 기차를 타러 갔어. 네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타루를 오랫동안 동경해 왔어. <윤희에게>라는 영화를 너무 좋아한 탓이었지.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해. 너는 봤으려나. 안 봤다면 시간이 날 때 편안하게 보는 걸 추천할게. 마음이 정말 편안해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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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로 가는 기차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 나와 현진은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갔어. 창밖으로 오랫동안 바다가 이어지는데, 이 바다를 봤을 영화 속 윤희와 새봄의 마음을 상상하니 두근거리더라. 오타루는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어. 일본이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비가 절대 안 그칠 것 같이 내리다가도 갑자기 맑아지는 날들이 자주 반복되는 것 같아. 그래서 오타루에서 비가 내려도 그렇게 좌절하지 않았어. 금방 맑아질 날씨가 보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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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숙소에 짐을 맡기고 <윤희에게>에서 쥰의 고모 마사코가 운영하는 카페에 방문했어. 영화에서 나왔던 모습 그대로 있더라. 나와 현진은 마사코 고모가 항상 앉아서 SF소설을 읽던 자리에 앉았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히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차분해졌어. 과테말라 커피를 마셨는데,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로 맛있었지.


나는 윤희에게에 나오는 대사들, 장면들, 분위기들을 다 좋아해. 특히,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참을 수 없어질 때가."라는 대사야. 내가 윤희에게라는 영화를 만났을 때는 정말 참을 수 없을 때였어.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들이 거짓말 같았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무너졌지. 차라리 그때 잘 무너졌더라면 지금 괜찮았을 텐데 나는 그때 동생들에게 강한 언니, 누나가 되고 싶어서 애써 뭐든 괜찮은 척을 하느라 지금에서야 아픈 것 같아. 윤희와 쥰은 각자 참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벅찰 정도로 깊은 현실의 어두움. 그래서 윤희는 딸 새봄의 권유로 쥰이 있는 오타루로 떠나게 돼. 그리고 나도 윤희에게를 보면서 그들과 같은 마음이 들 때마다 오타루를 그렸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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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의 밤은 낭만적이었어. 사람도 적었고 몇몇 가게들과 우리뿐이었어. 빈티지 가게에서 만났던 사장님이 우리가 스시를 포장하러 간 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땐 마치 이 동네의 주민이 된 기분이었지. 상상해 봐, 하늘은 푸르스름해지고 가로등은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고 건물 사이로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 내가 생각하는 오타루가 바로 눈앞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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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벽에 일어나서 오타루를 산책했어.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컸는지 현진이 새벽부터 나를 깨우더라고. 나도 귀찮은 마음을 이겨내고 함께 새벽 산책에 나섰어. 아침 일찍 돌아보는 오타루는 더욱 좋았어. 기회가 된다면 너랑도 오고 싶더라. 한참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할아버지가 "おはよっす!"라고 말했어. 아침 인사 오하요고자이마스의 줄임말이지. 일본에서 처음 들어 보는 아침 인사에 나도 모르게 벅차올랐어. 얼른 편지에 적어 너한테 자랑해야겠다 싶었지. 만약 일본에 살게 된다면 나는 매일 아침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를 전할거야. "오하요고자이마스!" 너무 기분 좋은 인사야.


그리고 지나가던 길에는 창문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를 반겼어. 현진은 이런 아름다운 순간들을 잘 발견하는 것 같아. 나는 걷다가 힘들어지면 바닥밖에 보지 못하는데 현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행복과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이야. 덕분에 나까지도 작은 것들에 행복해져. 언젠가 네가 이 사람이 내 곁에 있음에 감사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나도 항상 감사해. 너에게도, 현진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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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지막으로 쥰의 고모가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었던 우체국 앞을 왔어. 영화와 똑같이 겨울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어. 그리고 그곳에서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지.


오타루는 나한테 그런 곳이었어. 어떤 장소에 있던 빛이 보이고 울컥해지는 곳. 마치 오랫동안 내가 돌아오지 못했던 내 마음처럼 아프고 따뜻했던 곳. 분명 나는 다시 이곳에 오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또다시 편지할게.


오타루에서 사랑과 안정을 전하며, 너의 친구 예진.


추신, 너에게도 네가 전혀 가본 적도 없지만 마치 집같은 곳이 있니. 오타루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