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치앙마이에서 만난 언니에게

이 정도 인연이면 다시 만날 때도 되지 않았나요?

by 소희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언니. 잘 지내시나요?


대관절 이렇게 편지부터 쓰는 이유는 방금 막 다 읽은 책 때문이에요. 여행지에서 알게 된, 마주친, 떠오른 여러 사람에게 쓴 편지를 엮어낸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김민철 저)」라는 책인데요, 읽는 동안 나는 누구에게 편지를 쓸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내내 언니만 생각나긴 했어요. 우리의 만남은 너무 드라마틱했잖아요.


언니를 처음 만난 곳은 치앙마이에서 밴을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3시간이나 더 들어가야 나오는 빠이Pai라는 소도시였어요. 태국 북부 외곽도시인 빠이 중에서도 여행자들이 몰린 워킹스트리트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언니를 처음 만났죠.


저는 친구랑 2인실에서 묵었는데, 언니는 가장 좋은 방에서 혼자 묵었어요. 그것부터 너무 멋있었죠. 숙소에서 오고 가며 짧은 대화를 할 때마다 언니에게서는 이유 모를 여유가 느껴졌어요. 아마 나이의 앞자리가 나보다 한자리가 많고, 10년 차 직장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몰라요. 그때 저는 이제 막 인턴십을 끝나고 태국에서 한달살기를 하던 대학생이었으니까요.


저와 제 친구, 그리고 언니밖에 없는 숙소에서 우리는 종종 긴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언니는 캄보디아였나 미얀마였나, 태국 북부 지방과 강 하나를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 태국으로 건너왔다고 했죠. 그 전엔 온갖 동남아 도시를 다 돌아봤다고요. 무려 리턴 티켓 없이! 그때부터 저는 언니를 점점 동경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언니는 한술 더 떴죠. 10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사를 하고 떠나온 여행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리턴 티켓도 없고, 앞으로 어디를 갈지도 모르고, 사실 여태까지 거쳐온 도시 중 계획을 하고 향했던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고요. 달리 말하면, 정말 발길 닿는 대로 동남아 곳곳을 여행 중이라고요.


그때부터 저는 언니에게 ‘미래의 내 모습’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아드렸어요. 물론 속마음으로만요. 4일에서 5일 남짓 머물다가 언니는 치앙마이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어요. 저도 일주일 뒤 치앙마이로 간다고 기뻐서 말했지만, 언니는 또 저에겐 없는 어른의 미소를 머금고 얘기했어요. “우리가 운명이라면 치앙마이에서 또 만나겠죠.”


그렇게 언니는 영화 대사 같은 말을 남기고 그 어떤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미련 없이 빠이를 떠났어요. 내심 서운했지만 그 말을 다이어리에 꾹꾹 눌러 적으며, 비록 치앙마이에서 만나지 못할지라도 정말 영화 같은 만남이었다고 추억했죠.


그리고 저도 치앙마이로 돌아가 2주를 더 보냈어요. 떠나기 일주일 전쯤, 여행자라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도이수텝으로 갔어요. 치앙마이 대학교 앞에 마치 셔틀 정류장처럼 여행자 여럿이 모여 썽태우 값을 흥정해서 타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친구와 그 앞에서 열심히 우리 몫의 썽태우를 기다렸죠. 여행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 순번이 뒤로 밀리느라 예상보다 몇십 분은 늦어졌지만, 썽태우에 오르니 이국적인 치앙마이의 바람이 살갗을 간지럽혀 금세 또 마음이 붕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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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이수텝에 올랐더니 언니가 있었어요. 우리는 놀란 얼굴로 서로를 마주했죠. 실제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만 거듭 반복하면서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도이수텝을 가운데에 두고, 반가운 인사를 나눴어요. 마치 어릴 적 친구와 10년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잖아요. 물론 언니도 제 얼굴이 기억나겠죠? 그런 드라마틱한 만남은 삶에서 몇 번 있을까 말까 하니까요.


어떻게 그 수많은 날짜와 수많은 시간 중, 딱 그 날짜, 그 시간에 서로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도이수텝을 올랐을 땐 이미 노을이 질랑 말랑 하는, 폐장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시간이었잖아요. 진심 어린 소원을 빌기 딱 좋은 아침도, 여행자들이 몰리는 한낮도 아닌 그 애매한 시간. 어떻게 딱 그 시간에, 그 넓은 치앙마이에서 서로를 딱 마주칠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저와 제 친구는 썽태우를 기다리다 지쳐서 도이수텝 일정을 다음 날로 미룰까 진지하게 고민했거든요. 만약 그때, 치앙마이 대학교 앞에서 썽태우를 기다리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면? 아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우버 택시를 타서 한 시간은 단축해 먼저 도이수텝에 올랐다면? 아주 조금만 어긋났어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언니는 흔쾌히 우리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어요. 몇 번이고 정중히 사양했지만, “이 정도면 인연”이라는, 제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사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한달살이 내내 셀 수 없이 많이 갔던 쏨땀 맛집을 추천했고, 거기서 언니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음식을 사줬어요. 지갑 사정을 계산해보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주문하는 언니의 모습이 저에겐 ‘어른’ 그 자체로 보였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그렇게 큰 호의를 베푼 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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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호의를 베풀고 싶어 하는 아주 어린 아이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열 살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다시 서울에 가서 만나리라는 보장도 없는 사이고요. 그런 우리에게 몇 접시나 되는 고기를 흔쾌히 사주고, 쏨땀은 무려 들어가는 종류와 조리법을 다르게 해서 세 개나 주문했죠.


그렇게 풍족한 식사를 멋지게 선사하고는 언니는 또 빠이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련 없이 떠났어요. 그때처럼, “이 정도 운명이면 진짜로 서울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신비로운 말만 남긴 채로.


그로부터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울에서 언니를 만나지는 못했어요. 이제 운명에 맡기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것 같아요. 그때 대접해주신 풍족한 식사에 꼭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식사보다도 그때 베풀어주셨던 따뜻한 마음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은 게 크고요. 혹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제 인스타그램 @greenerybreeze으로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꼭이요! 치앙마이에서 먹었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겠지만, 그때처럼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까이양과 쏨땀 한 상을 대접할게요.


|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 김민철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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