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 산 책을 기억하나요?
14살, 처음으로 산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해피해피 스마일’이었다. 엄밀히 표현하면, 내 돈 주고 산 첫 책은 아니고, 내 의지로 골라 엄마의 돈으로 산 첫 책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만 오천 원쯤 했다. 중학생 권장 도서 대부분이 만원도 안 했던 것에 비교하면 꽤 비싼 책이었다. 심지어 제본 방식도 독특해서,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하드커버 책자인데다 매우 얇았다. 표지엔 귀여운 손그림이 그려져 있어 얼핏 보면 유치한 동화책 같아 보이기도 했다.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골라오라던 엄마의 말에 냉큼 그 책을 집어 들었는데 1초도 안 되는 사이 스쳐 지나가는 엄마의 표정을 읽었다. 어린 아이일수록 기민하고 눈치가 재다. 그땐 막연히 느꼈지만 크고 나서 직접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내 몫의 지출을 하나하나 파악하는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저울 위에 해피해피 스마일과 만 오천 원어치의 다른 소비를 놓고 잠시 고민했던 것 같다. 저녁 식사를 위해 장을 본다든지, 옷을 사입는다든지 하는,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것. 단순히 ‘뭐 골라도 이런 책을 골라?’ 하는 마음에서 나온 표정일 수도 있겠지만, 뭐, 어릴 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다시 보니… 충분히 엄마가 당황스러워할 법한 표지이긴 하다.
여하튼,
엄마는 스쳐 지나간 표정을 금세 거두고 아무 말없이 내가 고른 책을 카운터에 올려 두었다. 그 뒤로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야.”라는 말을 꼭 했다. “그 책 읽어 봤니? 지난 주에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라는 말을 할 땐 조금 우쭐하기도 했다.
엄마가 나에게 사준 건 책 한권이 아니라 어떤 경험이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고 말하는 경험, 원하는 책을 직접 사 읽었다고 말하는 경험,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는 경험. ‘중학생이라면 꼭 읽어야할 도서 100선’, ‘문학동네 청소년 베스트’ 같은 책이 타의로 꽂혀 있는 친구들의 책장과 다르게, 나는 원하는 책을 취향껏 선택할 줄 안다는 청소년기의 우월감까지. 엄마가 알면 등짝 맞을 소리지만 사실 이 책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의 경험만큼은 내 마음 속에 깊이 남아있다. 덕분에 아직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주저없이 나의 책장에 들여놓는 어른이 되었다.
비단 책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비의 문턱 앞에서 먹고 사는 문제와 저울질하게 되는 순간마다 이때를 떠올린다.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상상해볼 수 없는 감각이 있다. 어떤 소비는 가격표로 책정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