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이 지구과학을 만났을 때
지구과학은 위험했다. 어떤 개념이나 문장들에 꽂히는 순간, 머릿속에는 '낭만적이야'라는 이름의 한 세포가 다른 뇌세포들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상상의 이야기를 가둬둘 수 없었다. 지질학자, 기상학자, 천체학자들은 이렇게 시적인 것들은 연구한단 말이야?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답할 지도. 무엇이든 얕게 알 때가 아름다운 법이죠!
지구에는 지구 스스로 만들 수 없는 원소들이 존재한다. 그 원소는 우주에서 왔다. 별들도 점점 나이가 들면 왜성이 되거나 초신성 폭발을 한다. 그렇게 폭발의 잔해들이 떠돌다 다른 별이 탄생한다. 그 수많은 별 중 태양이 있었다. 태양 주위를 돌던, 광물과 얼음 알갱이가 모인 세 번째 암석이 지구였다. 그러니 지구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몸에는 우주의 원소들이 있는 것이다. 아주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를 기억하는 존재들도 모두 사라진 어느 때가 되면, 우리는 어떤 별의 일부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우주로 가기 전, 이 지구에서 멋지게 살아봐야겠다. 언젠가 만날 그 별에게 든든한 원소가 되고 싶거든.
발 한 폭도 들어가지 않는 위태로운 계단을 올라가 장독대 위에 비닐을 덮는다. 주저앉듯이 계단을 내려오는 외할머니를 마당에서 올려다보며 불안해진 난 괜히 마당을 빙빙 돌았다. 어느새 내려와 보라색 고무신을 툭툭 벗고 평상으로 올라가는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그땐 '무엇이든 비닐로 덮으면 비가 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린이가 된 어느 날에는 그녀가 밤하늘을 한참 보더니 '비가 오겠네-'하는 것을 들었다. 나도 올려다봤는데 그런 글자는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아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팔을 가리키며 보여준 것은 달이었다. 물에 번진듯한 달이 보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과학자들은 암석 덩어리인 달에게 '사랑'이라고도 했다가 '님'이라고도 했다가 '마음'이라고도 칭하는 문과생들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분명 '달무리'는 그녀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임이 틀림없다. 그래야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테니.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인가요?
우주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는데.
그 누구도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도 아니랍니다.
우리는 하나의 개체일 뿐이랍니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어디든 아주 멀리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너의 곁으로 내가 갈게. 항성과 행성, 행성과 위성이 거대한 왈츠를 추고 있다. 손을 마주 잡고 가까이 왔다가 멀어졌다가 딴따따- 딴따따-. 이런 상상이 너의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되니, 그러다가도 내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