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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현 Aug 09. 2024

5교시 첫 번째, 유전과 비유전

그녀는 왜 수능을 선택했을까?

 복도 의자는 여전히 딱딱했다. 자신이 복제 인간임을 알아버린 소설의 주인공이 울부짖는 장면에서 책을 덮었다. 고개를 들고 벽에 머리를 기댔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의 병원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적다. 대부분은 나처럼 평범한 차림이거나 환자복을 입었다. 가끔 보이는 멀쑥한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제약사 또는 보험사 직원인가? 아니면 나, 저승사자를 볼 수 있게 된 걸까?


 보호자님, 검사 끝났거든요? 조금 어지러울 수 있으니까 진정되면 귀가하셔도 됩니다.

 그런 망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검사실 문이 열린다. 동생은 누워있다. 뇌파 검사 이후여서 머리카락이 이리 삐쭉, 저리 삐쭉, 산발이 되어있다. 동생의 외투를 챙겨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홉 살. 실내화 가방을 빙빙 돌리며 도착한 집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할머니! 엄마!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 등에 업힌 동생과 그 옆에 가제 손수건을 든 외할머니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외할아버지가 보였다. 다시 시작되었구나. 뒤늦게 나의 존재를 알아챈 어른들은 방문을 닫고 내보내려 했지만, 이미 동생의 상황을 알아버린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작은 몸이 부르르 떠는 모습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선 어른들은 더욱 처절해 보였다. 동생은 그 이후로도 자주 경기(驚氣)를 했다. 엄마를 따라 간 병원에서 작은 아이가 머리에 무엇인가를 꼽고 검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뒤척이다가 눈을 꼭 감더니 이내 동그랗게 뜬다. 가자. 장애를 얻을 수 있다는 의사의 판정과 다르게 동생은 평범한 아이로 자랐다. 아니, 오히려 비범했다. 무엇이든지 금방 흡수했고 잘 외웠다. 청음 감각이 발달해서 한 번 들은 음은 그대로 연주했다. 주위에 친구들도 많았고, 매일 꿈이 바뀌는 학생이 되었다. 물론 그는 이렇게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야 하고, 시간에 맞춰 약을 먹어야 했지만.


 그리고 그 검사실에 이제는 내가 누워있다. 긴장 푸시구요.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면 의지와 무관하게 손가락이 들리거나 팔이 꿈틀 움직인다. 목 뒤부터 시작해 어깨, 팔뚝, 팔꿈치, 팔등을 찔렀다. 완전 몬스터네요. 모니터를 바라보던 의사가 그랬다. 오른쪽은 이렇게 정상적인 파동인데 왼쪽은 보이시나요? 신경이 손상되었다는 뜻이거든요, 이게. 나는 모니터를 보는 대신 격양 되어서 말하는 의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검사는 굳이 안 해도 된다고 그랬잖아요. 이거 요골 신경 마비 맞다니까. 근위축증이 아니고. 우리 팔에 이 볼펜심보다 더 가는 요골신경이라는 게 있거든요? 지금 이게 망가졌다는 거야. 의사는 종이 위에 빨간 볼펜으로 가는 선을 그었다. 잘 숨기고 살아야죠. 오래되어서 그거밖에 방법이 없네, 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의사는 이렇게 처방을 내렸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왼쪽 손목이 아래로 꺾여 힘을 줄 수가 없거나 왼손이 마비가 되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들을 나름대로 잘 숨기며 살았다. 하지만 한 번 근육이 딱딱해지면 손가락들은 한 뭉치가 되어 말을 듣지 않았다. 혼자면 괜찮았다. 하지만 일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제시간에 끝내려 마음을 재촉할수록 손가락은 더 말을 듣지 않았다. 자주 다쳤고 몹시 피로했다. 회사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자꾸만 위축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언제까지 내가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이.


 역대 최대의 수능 N수생 비율. 의치한약수에 몰린 N수생들. 뉴스에서는 다시 수능을 보는 졸업생들의 비율을 그래프로 제시했다. 그 빨간 막대에 나도 포함되었다. 찔렸다.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닌데, 몰래 도망치다가 걸린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요즘 뭐 해? 퇴사했다며 재취업한 거야? 아, 나 수능 봤어. 수능? 왜? 약사 되고 싶어서. 아. 그 한마디의 ‘아’에도 구구절절 변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암 연구 센터가 들어서면서 병원이 증축을 했다. 하지만 신경과는 여전히 구건물의 가장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그 선생님 사라지셨네. 누나 검진했던 사람? 어, 나이가 많으셔서 퇴직하셨나? 너 담당 선생님은 누구야? 동생이 가리킨 담당의 소개 아래에는 ‘성인 희귀 유전 질환센터 연구’라고 적혀있었다. 동생의 병은 운동 신경 유전자의 변이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유전자 변이와 신경의 마비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하고 작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다시 대기실의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방송에서 동생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벌떡 일어나 가다가 멈칫한다. 일종의 경련 증세이다. 못 본 체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의 왼쪽 엄지손가락이 손바닥 밑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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