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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현 Jul 26. 2024

4교시, 사랑한다 말해요

한국사의 장면들


 오타쿠.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오타쿠’라는 말은 특정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덕후’, ‘덕질’이라는 말로 파생되더니 ‘어떤 분야에 빠져들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변화되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엔 차마 고백하지 못했던 것을 얘기해 볼까? 난 엄청난 역사 덕후였다. 주변 친구들의 반응을 신경 쓰는 소심한 성격 탓에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지만, 시험지에 출제된 사진이 교과서 몇 쪽에 어느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외울 정도였으니 광기에 가까운 사랑이었던 듯하다.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서 누군가는 최초로 토기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기도 했다. 몇 줄로 압축된 그들의 인생이 문학 작품이 아닌 실제 이야기로 존재했다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 난 그 전율을 참으로 사랑했다.



1. 백제: 섬세함을 알다.


 삼국(고구려, 신라, 백제)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가장 먼저 쇠락의 길을 걸었던 나라.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으로,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겼다. 그런 이유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 일부에는 백제의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예전에 ‘미륵사지 석탑’(전북 익산 위치)을 가상으로 복원한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위용이 어마어마했다. 여러 번 수도를 옮기면서까지 백제를 지키고 부흥시키려던 마음이 돌 하나, 하나에 담겨있었다.

 칼도 글도 아닌 아름다움을 남겼다. 쓰러졌어도 사라지지는 않았던 그들의 염원이 아직도 이곳에 있다.



2. 발해: 기억하자, 해동성국.

 한반도의 역사에 반드시 존재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역사 왜곡을 하고 있지만, 발해는 기록에도 기재된 고구려의 후예이고 하나의 나라로 인정된 엄연한 국가였다. 당나라가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고 칭한 기록도 있으니 200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발해의 위엄을 망가뜨리려 하지 말기를.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는 슬퍼진다. 그러니 우리 늘 기억하자.



3. 대한민국: 우리의 힘으로

 앞서 언급한 이 사이트들 이용하는 사람들은 뒷문으로 나가주시면 됩니다.

 강의실은 들썩였다. 합동 강의실을 가득 채우고도 자리에 앉지 못해 복도와 강의실 뒤까지 학생들로 빽빽했다. 그날 누가 강의실을 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말을 던지고는 강의실을 가만히 응시하던 교수님의 매서운 눈과 단단한 턱은 기억난다.

 일본의 극우 세력과 심지어는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스스로 독립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다른 날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영상 하나를 보여주셨다.

 1945년 9월 2일, 연합국에 대한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하는 한 남성이 등장한다.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는 그는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이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독립운동가 ‘윤봉길’이 투척한 폭탄에 시게미쓰 마모루는 오른쪽 다리를 잃는다. 그의 의족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버젓이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침략을 환영한 적이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영토를 내어준 적이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독립의 의지를 보였고, 마침내 우리의 힘으로 광복을 맞이했다.



4. 외환위기: 반복되지 않으려면


 얼마 전 앨범을 정리하다 이 사진을 발견했다. 장난감들과 인형, 청소기 등등 그런 일상적인 장면에 놓인 텔레비전 속 세 글자 IMF. 가족 중 누군가 그날의 충격을 잊지 않기 위해 황급히 담았던 걸까. 아니면 다시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남겨둔 걸까.

 1997년도에 일어나 외환위기와 관련된 문제는 없었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그렇다 보니 너무나 많은 정치적 견해가 개입되어 있는 사건이기에 논란을 줄이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97년도에 발생한 경제 위기의 여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성이 입증되지 않은 부분을 문제로 출제하기에도 부담이 있을 듯하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아니다. 한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가 부실기업에 대해 눈감아 주지 않았더라면, 기업이 기업가의 윤리를 저버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어차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는 낙담이 아닌 ‘그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회가 되기를. 그것이 우리가 수능에서 한국사 영역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이미지 출처 _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참고 자료_ 박태균,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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