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은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뒤 바로 인턴이 되었고, 예정대로 건축사무소에 들어갔다. 반면 나의 수험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그는 매일 바빴다. 통화는 짧아졌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면서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인사도 없이 끊어버리고 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만두려고.”
“뭐를.”
“이런 세상을 원하지 않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 같아.”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다른 손은 담요를 움켜쥐었다. 예년보다 따뜻하다는 방송과 달리 식당은 여전히 추웠다. 누구는 이 모양으로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니. 톡 쏘려다가 참았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
반찬 그릇에 담긴 깍두기는 고춧가루가 말라 있었다. 철통 안에 담긴 반찬들은 모두 이렇게 마르고 비틀려 있었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
너는 인생이 쉽지. 나는 드디어 화풀이 대상을 찾았다. 남들이 아등바등 가지려는 걸 가지고 있으니 버리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가 보다. 세상을 너무 모른다. 실패한 적이 없는 네가 뭘 알겠니. 비참한 기분을 네가 알기나 하니. 네 인생 진짜 부럽다, 야.
“네가 나를 이해할 줄 알았어.”
“너나 나를 좀 이해해 봐. 전화해서 자유? 꿈? 웃기고 있네.”
뚝, 뚜뚜-
주원은 한참 말이 없다가 전화를 끊었다. 우리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야 비로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주말에 그는 학원 앞으로 찾아왔다. 우리의 만남이 특색 없는 카페였듯이 헤어지는 곳도 특별할 것 없었다. 주원은 커피잔을 앞에 두고 준비한 문장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이 테이블은 얼마나 많은 연인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헤아렸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무겁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다가오면 그 일은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 육체는 이곳에, 영혼은 저 멀리.
“재희야.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주원은 행복을 빌면서 이별을 통보했다. 몇 달 뒤가 시험인 것을 알면서도 헤어지자고 말하는 게 행복이니. 사랑이 미움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니.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당연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이 정리된 사람처럼 편안해 보였다.
카페를 나와 학원까지 남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는 사이도 아닌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잘 들어가.”
그가 5월의 햇빛 속, 수많은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주원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다림질 선이 펴지지도 않았고 보푸라기도 하나 없었다. 그를 보내고, 학원 건물의 정문 유리에는 짧아지고 주글주글해진 회색 체육복을 입은 내가 보였다. 나는 오로지 그런 것만 보였다.
시험은 볼품없이 망쳤고, 그다음 해에는 안 되는 것을 직감했고 그만두었다. 모두가 말렸다. 4년을 했는데 한 번만 더 해보라고 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지방에 있는 대학병원에 이력서를 넣었다. 시험과 면접을 보았고 약제과에 배치가 되었다.
카디건과 체육복의 이미지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물건을 샀다. 자취방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찼다. 잠이 들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고,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곁을 내주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 심장이 막 뛰기 시작하면 방바닥에 가슴을 대고 누워있었어. 여름날 오후, 커튼도 달지 않은 창문 아래에서 주원의 말을 떠올리며 바닥에 누웠다. ‘베를린’은 이제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온몸이 바닥에 밀착되자 눈물이 나왔다. 상처를 받아도 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뭘까. 그가 있던 곳에서 나도 삶을 버리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