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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Dec 18. 2021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조심스럽던 어느 더운 날,

학교 급수대에서 물 먹는 것조차 불안해서 아이들에게 물통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챙겨라, 챙겨라 해도 결국 내 손으로 물 받아서 가방 옆구리에 꽂아 주어야 하는 이안이와 달리 이레는 어떻게 하면 더 시원하게 물을 챙겨갈까 고민이다. 그래서 전날 밤에 직접 냉동실에 얼음을 얼렸다가 아침에 그 얼음 몇 조각을 넣어 아이스워터를 만들어 간다. 얼음 넣은 물병에 정수기 물을 받고 있던 이레가 말했다.


"얼음이 춤을 추는 것 같아요."


정말 그랬다. 얼음만 있던 물병에 물이 들어가니 얼음이 둥실 떠오르면서 빙그르르 도는 것처럼 움직였다. 아이의 그 표현이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춤추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오후의 교실에서 바쁜 일을 밀어 두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작은 바람에 운동장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춤을 추는구나.

너른 잔디밭을 보았다. 바람이 불면 풀들도 춤을 추겠구나.

눈을 감았더니 얼마 전 벚꽃 질 때 도로에 누워 있던 벚꽃잎들이 차가 지나가자 일제히 하늘로 떠오르던 것이 생각났다. 흰나비의 날갯짓처럼 높이 떠오른 꽃잎들이 한참을 더 나풀거리다가 내려앉고 또 차가 지나가면 다시 날아오르는 것이 꽃들의 군무를 보는 듯했다.


모든 것이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한 많은 순간에도!

춤을 추지 않는 것은 체육관, 그리고 급식소 같은 건물들, 무겁고 살아 있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춤을 춘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이 생각났다. 바닷가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던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 늙은 영감이 내 손을 잡고 '그 미친 세계'로 나를 끌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는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을. 그리고 그도 알았을 것이다. 나도 춤을 추고 싶었던 것을.





얼음 넣고

물 넣으면

얼음이 춤을 춘다


생일 축하

노래하면

촛불이 춤을 춘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벚꽃잎이 춤을 춘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들도 춤을 춘다


춤추지 않는 것 빼곤

모두 다

춤을 춘다





그의 마법이 통했을까. 어느 날,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주책맞은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옆반 선생님이 내 일을 맡아주겠다고 했을 때, 내가 바라던 성과가 났을 때, 심지어 간식으로 사놓은 새로운 비스킷이 내 입맛에 딱 맞았을 때도 나는 사람들 앞에서 댄스 타임을 가졌다. 춤이라기보다는 '앗싸~ 딩가딩가~' 정도의 짧은 몸짓에 가까웠지만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할 때의 자유로움에 나는 맛을 들여버렸다. 부끄러움은 그대들의 몫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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