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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Jan 06. 2022

가을산

같은 시간에 늘 같은 곳을 지나다 보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출퇴근길에서 가장 많이 변하는 것은 자연이다. 집을 나와 10여분 도심을 벗어나면 나머지 30분 동안은 시골 들판을 달리게 된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 계절이 한시도 쉬지 않고 변해가는 것을 나는 매일 아이와 함께 본다.


꽃피는 봄도 아름답지만 계절의 절정은 역시 가을이다. 가을꽃은 봄꽃만큼이나 화려하지만 봄에 느낄 수 없는 짙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 가을꽃보다 더 화려하고 짙은 것은 역시 단풍이다. 점점 더 붉게 타들어가는 단풍 때문에 가을산은 죽어가는 산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품은 것 같다.


계절이 바뀌면 해가 넘어가는 시간도 달라진다. 감히 쳐다볼 수 없게 환하던 태양도 늦은 가을로 넘어갈수록 빨갛고 둥근 실루엣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나와 눈을 마주친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해가 붉게 단풍든 산 뒤로 막 넘어가는 게 보였다. 마치 가을산이 해를 잡아당겨 삼키려는 것 같았다. 저 해가 산 뒤로 빨려 들어가고 나면 내일 또 아무것도 모르는 새 해가 다시 떠오르겠지?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내 남은 동심의 세계로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운전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는 없다. 상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출퇴근 길을 사랑한다.



가을산


나는 저 산이

왜 붉어졌는지 알지


어제 집에 오는 길에

대장간에서 막 나온 듯

동그랗고 빠알간 해를

저 산이 꿀꺽 삼켜 버리는 것을 나는 봤어


그 앞날도

그 앞날도

훤하던 해가 어딜 갔나 했더니


하나씩

하나씩

산의 꾐에 넘어가

산 어딘가에 갇혀 있었구나


시치미를 뚝 떼도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르는 걸

숨길 수는 없지


오늘도 순진한 해가

세상모르고 밝게 떠올랐다가

점점 산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지


내일 산이 더 빨갛게 타겠구나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같은 '곳'을 봐도 같은 '것'을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의 변화나 꽃, 단풍의 색깔 같은 것은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일부러 말로 표현한다.


"저기 단풍 색깔 좀 봐. 산이 불에 타는 것 같아."

"저기 거미줄에 이슬 맺힌 거 봐. 보석처럼 너무 신기하다."


어린이집 다닐 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기 꽃 좀 보세요. 아름답다."


자동차, 공룡에나 관심 있지 꽃에는 관심 없던 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아름답다'는 말은 엊그제 내가 했던 말 그대로였다.

그때 조금 알았다. 마법사가 메마른 땅 위에 마법 지팡이 한 번씩 톡톡 칠 때마다 꽃이 피어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만화 장면처럼 우리 아들들도 꽃이고 나무고 하나씩 건드려 주어야 그들 눈에 흑백에서 칼라로 살아난다는 것을.


이제는 이레가 먼저 '하늘 좀 보세요. 구름이 예술이에요!'라고 한다.

퇴근길, 이레가 '이건 못 참지' 하며 찍은 하늘. 이보다 더 멋있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아이가 자고 있어서 사진이 없다.


아침 출근길에 이레가 찍어서 담임 선생님께 보낸 사진. 나는 아무것도 없는 하늘이 좋은데 운전하느라 촬영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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