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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Dec 13. 2021

2015년 그 봄, 나를 깨운 말

                                                                                                                                                                                                                         

나는 실수가 많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는 사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수를 통해 조금씩, 혹은 급진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실수, 착각, 잘못 등은 감추면 나의 흠이 된다. 하지만 드러내면 어색했던 누군가에게 마음의 벽을 뭉개는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처음 시작으로 나의 뼈아픈 실수와 시행착오부터 꺼내려한다.


첫째 이안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나는 6개월 휴직을 했다. 학교에 들어서서 공부라는 긴 여정을 시작하는 이 시기가 생후 1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직업을 잠시 내려놓았다.

내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다. 많은 아이들을 보았고 많은 엄마들을 만났다. 내가 보고 들은 노하우를 살려 아이를 세상에서 제일 잘 키우고 싶었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휴직을 하면서 크게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3살 어린 동생 때문에 은근히 외로웠을 첫째와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 것, 나머지 하나는 아이의 학습습관을 처음부터 제대로 잡아주는 것.


첫 번째 목표는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학교 마치는 시간에 맞춰 현관에서 기다렸다가 반갑게 아이를 맞았다.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맛있게 먹고, 전부 어딜 갔는지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비비탄 줍기에 빠진 아이를 한참 동안 기다려 주기도 하고 저수지며 공원이며 산책도 다녔다. 참새처럼 종알종알 거리는 아이의 수다를 들어주는 일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나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의 학습습관을 잡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명색이 그래도 내가 선생인데 내 아이 하나 제대로 못 다루겠냐는 자만심이 가득했다. 폭풍 검색과 엄청난 고민 끝에 수학 문제집을 샀다. 일반적인 초1 문제집이 아니라 문제 푸는 유형을 익히고 따라 푸는 원리 이해 문제집이었다. 어떤 문제는 그림을 그려서 풀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풀기도 하고 또 어떤 문제는 표를 그려서 풀기도 하는, 그야말로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한 문제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문제집은 영재를 위한 문제집이었던 것 같다. 서너 줄이 넘는 긴 문제가 한 바닥에 2개씩 있고 전부 서술형이었다. 그래도 문제 푸는 예시가 옆에 있고 그것을 보고 숫자만 바꾸면 되었기 때문에 우리 아들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됐어, 풀지 마, 다 때려치워!"


시작한 지 며칠 안되어 집안을 울리는 고성과 함께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나는 문제집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아이는 울었고 나는 분노로 온 몸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아니, 이걸 왜 이해를 못 하냐고, 너 바보니? 바보야?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을까? 뭐가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이제 겨우 여덟 살 아이에게.


수학 외에 나의 두 번째 도전은 받아쓰기였다. 학기 초부터 담임선생님은 받아쓰기 급수표를 내어 주셨고 일주일에 2번씩 받아쓰기를 했다. 이안이의 담임 선생님은 예전 나의 동학년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의 아들은 어느 유명한 자사고에 입학해서 거기서도 탑을 찍고 있었다. 같이 근무할 때 나는 그분의 자녀 양육법을 묻고 또 물어가며 은근히 나의 롤모델로 여겨왔다. 그런 분에게 우리 아이를 맡겼으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안이는 받아쓰기를 잘해야 했다. 

나는 아이가 받아쓰기 100점 맞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빈틈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외우고 확인하고 외우고 확인하고를 저녁내 하다가 자는 동안 또 잊었을까 봐 아침 먹는 아이의 밥그릇 옆에 연습장을 또 들이밀었다. 


오해할까 봐 미리 이야기 하지만 나는 절대 극성 엄마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으로 내모는 부모들을 못마땅해했다. '아이의 창의성은 학원으로 밀어 넣는 순간 포기하는 거야'라고 믿었으며 사교육 없이 성공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덕분에 이안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학원차 대신 자유로운 영혼을 얻었다. 그래도 걱정이 없었던 이유는 유치원까지 나름 꽤 영특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글을 특별히 가르치지 않았는데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고 매일 나오는 유치원 숙제도 별 무리 없이 잘했다. 유치원 축제 때는 영어로 대표 인사도 했다. 초등학교 가서도 문제없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한 내 아이가 받아쓰기를 못했다! 그렇게 확인을 하고 또 확인을 하고 보냈는데도 100점 맞기가 그리 어려운지 연습 때는 틀리지도 않던 단어들을 정말 창의적이게도 틀려 왔다. 분노와 수치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니 정답이 공개된 시험도 못 친단 말이야?

나는 더욱 바짝 조여가며 받아쓰기 100점을 향해 달렸다. 당연히 아이는 점점 지쳐갔다. 낮에 즐겁게 놀아주던 엄마는 공부 시간만 되면 헐크로 변했다. 수학 이해 못 한다고 짜증내고 받아쓰기 틀린다고 한숨 쉬고 밥 먹을 때마저 사나운 눈빛을 쏘아대었다. 그러던 중, 뭐에 씌인 듯 맹렬히 달려가던 나를 순식간에 바꿔 놓은 일이 생겼다.


"엄마, 그냥 내가 알아서 공부해 보면 안 돼요?"


받아쓰기 연습으로 또다시 실랑이를 벌이던 중에 이안이가 툭 던진 말이었다. 순간 머리를 뭔가로 쾅 맞은 기분이었다. 마녀가 걸어놓은 나쁜 마법이 풀리는 주문을 들은 것 같았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날부터 나는 받아쓰기 지도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바닥에 패대기쳤던 수학 문제집도 버렸다. '당신 아들만큼 우리 아들도 공부 잘해요'를 보여 주고 싶었던 담임선생님에 대한 허영과 자존심도 내려놓았다. 아이의 한마디에 나의 교육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엄마가 손을 떼자 당연히 아이의 받아쓰기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이 혼자 공부한다는데 무에 그리 완벽할 수 있겠나 싶어 그대로 두었다. 평균 80점이던 점수는 70, 50, 60을 오르내리다 결국 30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미 각성한 나는 아이에게 비난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안이의 말이 인상적이다.


"받아쓰기 점수가 너무 내려간 것 같아요. 공부 좀 해야겠는데?"


그 후로도 이안이는 혼자서 받아쓰기를 연습해 갔다. 이후 점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100점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30점보다 더 내려간 것 같지도 않다. 점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아이가 혼자서 해 보겠다는 그 말 자체가 나에겐 100점보다 더 귀한 울림이었다.


얼마 후, 교육청에서는 1학년 받아쓰기를 사실상 금지시켰다. 이유는 나 같은 엄마가 전국에 수도 없이 많아서다. 제발 받아쓰기 점수로 아이들 좀 그만 괴롭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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