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행복독립

진짜 힐링 포인트

얀이(중3)

by 최여름

혼자 동네 공원에 나왔다. 아들들은 이제 고작 공원 따위에 따라나설 나이가 아니다. 돗자리와 의자를 펴고 샌드위치와 김밥을 먹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정신없이 스쳐갔던 생각들이 뭉근히 흘러나와 말을 건다. 그 생각들을 주워 담고 정리하는 일이 유쾌하지 않을 때 대화를 끊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은 아무리 복잡하고 심각해도 결국 내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며 남 얘기를 즐긴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글로 보인다.

그때 아이를 동반한 한 가족이 넓디넓은 공원에서 하필 내 옆으로 와 자리를 편다. 그들은 내 마음의 안전거리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마치 일행인 듯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돗자리를 펴고 짐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들은 오직 놀이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펴고 아이들이 편하게 놀도록 하는 게 목적인 것 같았다. 무례하다. 낯선 타인과의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는 혼자인 나에게만 불편하지 온 가족이 총출동한 그들은 무리가 가진 우월감으로 나를 되려 밀어내고 싶을 것이다.

다시 책에 집중한다. 낮은 시선 아래로 검은 자전거가 바짝 다가온다. '또 누가 내 공간에 예의 없이 들어오는 거야!' 하는 순간 자전거가 멈춰 섰다. 쳐다보지 않을 수 없어 고개를 든 순간 묶여 있던 내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얀!"

가족 단체톡방에 좀 전에 올린 사진을 보고 얀이가 자전거를 타고 나를 찾아왔다. 너무 멋진 아들. 예상치 못한 방문에 심쿵쿵 했지 뭐야~ 아들의 방해는 언제나 반갑다.


20230606_151739.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들 걱정보다 앞선 동생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