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행복독립

미래는 장밋빛인데 현실은 S라인

레야(초6)

by 최여름

레야가 허리, 목,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조퇴를 내고 병원에 다녀왔다. 본인 예상대로 목부터 허리까지 S자로 휘었다. 무슨 보일러도 아니고. 원인은 당연히 잘못된 자세로 컴퓨터를 많이 해서일 것이다. 게임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작곡한다고 컴퓨터 앞에 3시간~5시간씩 앉아 있었다. 많은 날은 8시간도. 어젯밤은 12시 반까지 악보를 그리다가 잤다고 한다. 그리고는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한참 불붙어 있는 아이에게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고 마음만 아프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생각을 좀 하게 됐어요."

며칠 전 레야가 차 안에서 자다 깨서 말했다.

"어떤 사람?"

"음.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사람들 있잖아요. 모든 걸 포기하고 공부만 하는 사람. 엄마가 플랜 짜주는 사람 막 데려오고."

"아.."

"나는 내 삶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얘기 듣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누가 들으면 본인이 공부만 하면서 그렇게 살았던 것 같지만 아이가 너무 진지해서 농담이나 핀잔을 줄 수가 없었다.

"공부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공부만 하는 게 나쁜 거지. 너는 하고 싶은 걸 따라가. 아직 어리잖아. 해야 하는 일도 중요한데 일단은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하지 마. 해야 하는 일만 잔뜩 해야 하는 날도 올 거야. 그래도 지금은 하고 싶은 일 먼저 해 봐."

나의 말은 진심이다. 그래서 그날 밤도 레야는 오자 마자 게임을 시작했다. 아이가 유튜브나 게임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것 딱 그거 하나 걱정된다. 내가 아이의 생활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생이 힘든가? 원래 인생은 힘들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하는 사람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세상을 바꿨다. 재능이 없으면 재능을 넘어설 순 없으나 재능을 따라잡을 순 있을 것이다. 현실은 너를 버리지 않았다.


레야가 얼마 전 자신의 컴퓨터에 적어 놓은 글이다. 샤워하면서 든 생각이라고. 이런 아이가 쉽게 자신을 놓아 버리겠는가?

우리 집 식구들은 전부 직관형들이다. 가치, 의미, 본질을 중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현실에 발 붙인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가끔 깊은 대화도 하고 우리와 관련 없는 문제들로 언쟁을 하기도 한다. 각자의 기준이 명확해서 '묻. 따. 말'이 통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인생 계획은 자기 스스로 세우고 싶어 한다. 또 무엇이든 스스로 납득이 되기 전에는 행동수정을 하지 않는다.

다음 주에 도수치료 예약을 잡았다. 게임을 줄여라, 작곡도 좋지만 쉬엄쉬엄 해라 이런 말들은 넣어 두기로 한다. 누구보다 자기 몸 아끼는 아이니 조금은 신경 쓰겠지. 나는 그저 열심히 조퇴내고 또 병원 다니면 된다. 아들이 원래 힘든 인생 극복해서 불가능을 가능케 해 보겠다는데 엄마가 돼서 이 정도쯤이야.



KakaoTalk_20250402_152508315.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무리 해도 비는 정이 들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