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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행복독립

나 또한 내로남불

레야(초6)

by 최여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른 가을. 레야는 학교에서 하는 1박 2일 캠핑을 간다고 한다. 첫날은 해인사를 둘러보고 절에서 주는 점심까지 먹고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게 주 활동이고 다음 날은 대장경 테마파크에 들른다. 합천에 있다 보면 최소 1회 이상 아이들은 해인사와 대장경 테마파크를 간다. 학교에서 가면 설명도 해주고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장경판전도 열어 팔만대장경도 직접 볼 수 있게 해 준다. 나쁘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엄마, 해인사에 가면 십자가 목걸이 하고 갈 거예요."

지난여름 수련회 때 받은 나무로 된 십자가 목걸이다. 평소에 아무렇게나 두는 것 같던데 절에 간다니 걸고 가겠단다.

"아니,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방문지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선생님도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그냥 문화재로만 보고 와." 그랬는데 아침에 기어이 챙겨 갔고 선생님이 보내 준 사진에도 목걸이를 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작지도 않아서 눈에 확 띈다. 아이는 왜 굳이 목걸이를 매고 싶어 했을까? '지켜 달라는 마음이겠죠.' 교회를 다니는 어떤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그렇게 말을 한다. 지켜준다고? 목걸이가? 십자가가 무슨 부적이야? 아이의 마음은 알겠다. 자신은 기독교인데 불교의 상징인 절에 가려니 마음이 불편했겠지. 내 아이의 마음에 종교심이 자라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처음 종교를 가지게 된 대학 새내기 시절, 내 모든 삶의 의미와 가치가 한꺼번에 다 변했다. 나는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향해 '저는 이제 그리스도인이에요!'를 외치고 싶었었다. 대학노트 대신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다니고 십자가 모양의 액세서리를 사 모아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았다. 위아래로 모두 흰색으로 맞췄던 성가복을 입고 밖으로 잘 돌아다녔고 가슴팍에 'I love Jesus'라고 크게 적힌 티셔츠를 평상복으로 입고 다녔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치게 순수해서 유치 찬란하기 이를 데 없다. 뭐 그런 거야 순수한 열정으로 친다 해도 내 말과 행동들은 조금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고 그 마음을 거침없이 말로 표현했다. 과모임이나 동아리 회식 같은 데는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교회 행사에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오고 싶어서 주변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진리를 위해서는 무례함도, 독선적인 태도도, 세상의 모임 따위 집어치워도 되는 줄 알았다.

주변에서도 종종 여전히 그런 사람들을 본다. 종교를 무기로 쓰는 사람들, 자신의 종교심에 심취해 기본적인 예의와 상식을 무시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무엇을 해도 감사할 줄 모른다. 받을 때는 아무 말 없다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으면 거침없이 요구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웃에 학교나 직장동료는 포함되지 않는가 보다.(구체적인 사례는 피하겠다.) 이웃을 사랑하기는커녕 종교를 위해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다.

십자가 목걸이를 굳이 하고 가겠다는 레야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한다.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크리스천인 것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기특한가. 하지만 계속 그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누가 교회 오면서 목탁 가져 오면 얼마나 민폐인가. 십자가 목걸이는 그냥 나무 장식일 뿐이다. '네가 십자가를 걸고 가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너와 함께 계신다.'이 말을 해줄 걸 그랬다. 십자가는 마음에 새기고 그 의미는 삶으로 보여 주는 거라고도. 말을 하고 보니 또 부끄럽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누가 말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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