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이(고1), 레야(중1)
남편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네 가족이 함께 외식을 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넷 밖에 안 되는 가족이라도 미리 약속을 하지 않으면 같이 밥 먹기가 쉽지 않다. 그날은 주일 저녁이었고 낮에 교회에서 중고등부 체육대회가 있었기 때문에 얀이는 한창 체육대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 릴레이를 했는데요, 우리 팀에서 세 명이 나가서 그중 두 명이나 넘어졌어요."
"그래? 그럼 당연히 졌겠네?"
아들은 말하면서 능청스럽게 다리를 들어 보인다. 바지 무릎 부위에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 있다. 넘어진 두 명 중 한 명이 본인인 것이다. 아들 키우는 엄마들에게 바지 무릎 구멍은 흔한 일이다. 초등 때 한창 심할 때는 구멍이 두 개씩 뚫려도 그냥 다시 입고 다녔다. 하도 구멍을 많이 내서 구멍 없는 바지가 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구멍이 뚫리는 일도 줄어들고 구멍 뚫린 바지를 입고 가는 일도 없었다. 구멍 뚫린 바지는 그대로 퇴출이다. 애들 바지는 수선할 만큼 비싸지도 않고 수선해 봤자 표가 안 날 수 없어서이다. 아, 근데 이 바지...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거다. 버리기엔 조금 아깝... 화가 20 정도 났지만 일부러 50 정도 부풀려서 반응했다.
"야, 너는 키도 작으면서 왜 달리기는 하고 그래? 다리도 짧은 놈이. 다리가 짧으면 짧은 사람답게 가만히 있어야지 릴레이는 왜 나가고 그래?"
내 말을 듣는 아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차, 농담이 과했다. 나는 나름 웃기려고 한 건데 선을 넘어 버렸다. 키는 건들면 안 되는 거였다. 이 싸한 분위기 어쩔 거야... 수습, 수습을 해야 한다.
"야, 근데 이거 구멍 크기가... 넘어져서 뚫린 것 아닌데? 담뱃불 크기 아냐? 너 담배 피우고 구멍 낸 거 아니야?"
"아이, 엄마나 담배 끊으세요." 성공이다. 아이의 표정이 다시 풀렸다. 농담을 받아줬다. 우리는 만날 서로를 향해 담배 좀 끊으라고 한다. 학교에서 하도 흡연예방교육을 자주 받아서 담배얘기가 늘 자연스럽다. 사실이 아니기에 거침없고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어릴 때 심심하면 꺼내는 똥얘기와 비슷하다. 그날 나의 말실수는 그렇게 넘어갔고 바지는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아까비...
아들들이랑 티키타카가 잘 되어서 좋은데 가끔 부작용도 있다. 아침에 아이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큰애가 타자 마자 담배냄새난다며 인상을 찡그렸다. 누군가 담배를 핀 후 엘리베이터를 탄 모양이었다. 그냥 넘어갈 담배이슈가 아니다. 얀이가 레야를 보고 말했다.
"너 담배 끊으라고 했지?"
순간 나는 '사실 엄마가 핀 거야.'라고 말할 뻔했지만 참았다. 너무 많이 써먹어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 레야가 말했다.
"사실 나 음악시간에 '담배를 많이 펴서 리코더 못 불겠어요' 했다가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뭣이? 이 놈이 간땡이가 부었나? 그런 말을 선생님한테 했다고? 그런 농담은 우리끼리 하는 거지... 나도 교사지만 저런 말 잘못 걸리면 크게 혼날 수도 있다. 나는 두세 번쯤 계속 물었다.
"진짜? 너는 선생님한테 그런 말을...! 혼났어? 많이 혼났어?"
"아니 사실 혼난 건 아니고. 그냥. 나도 받아주는 선생님이니까 하는 거지."
사실 레야가 선생님께 이런 장난도 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낯가림 심하고 늘 방구석에 처박힌 극 I인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는 도대체 어떤 캐릭터로 살고 있는 건지 급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