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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행복독립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다 듣기 좋은 멜로디다

레야(중1)

by 최여름

"왜 사니?"

밴드 수업을 받으러 가는 차 안에서 레야가 밑도 끝도 없이 툭 던진 말. '엄마는 왜 살아요?'도 아니고 어디서 반말 찍찍? 사실은 안다. 아무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인걸. 레야는 이렇게 가끔 쓰잘데기 없는 아무 말로 나에게 귀여운 시비를 건다. 질문을 했으면 답을 해주는 게 인지상정.

"너 때문에 살지~" 1초도 고민 없이 대답했다. 십 수년을 레야와 함께 살았는데 이 정도는 매우 익숙하게 받아칠 수 있다. 오늘은 추가 서비스까지 제공해 볼까?

"난 사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아. 너보다 좀 더 일찍."

뜬금없는 아부성 발언 같지만 사실은 요 근래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지 않았을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렇다고 아들에 올인하는 엄마로 오해받는 것은 싫다. 나는 나만의 생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암튼 농담 같은 질문에 진지한 대답, 그 대답을 들은 아들의 반응은...

"그럼 저 용돈이나 좀 더 올려 주세요!"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는 레야다. 감동? 그런 게 뭐야?

"에이, 그건 또 다른 얘기지."

이참에 나는 내 마음을 아들에게 다 표현하기로 한다.

"나는 요즘 너를 키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냥 같이 사는, 인간 대 인간으로 같이 생활하는 그런 느낌이야."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육아라는 개념은 우리 사이에 어색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나는 아이들의 보조자요, 조력자일 뿐 이제 그들은 스스로 잘 자라 가고 있다. 아주 가끔은 점점 그 위치도 바뀌고 있다는 생각조차 든다.

"에이, 저 좀 더 키워 주세요, 엄마. 혹시 양육비 이런 거 안 내려고 그런 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웃으면서 대화는 끝났다. 반백 년 가까이 살아도 내가 왜 사는지 정확한 답은 못 찾았지만 너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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