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이(고1), 레야(중1)
2024년 크리스마스 전야 행사를 보러 교회에 갔다. 사전 연습이 있어 아이들을 행사 한 시간 전에 태워다 주고 총 세 시간을 기다려서야 아이들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두 시간 반짜리 행사에서 우리 아들들이 속한 중고등부 발표는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기다리는 게 힘들어 집에 가서 실시간 영상으로 볼까도 했지만 아이들이 이번 행사를 준비하던 과정을 생각하면 이깟 추위쯤이야, 이깟 심심함 쯤이야...
얀이와 레야는 이번 공연에 찐으로 진심이었다. 얀이는 연극과 합창 연습 뿐만 아니라 중고등부 올나이트 프로그램을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몸으로 말해요' 비슷한 것을 준비했는데 대략적인 소요시간을 알아야 한다며 나를 대상으로 게임을 시연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동물 맞히기는 쉬웠는데 감정 맞히기는 어려워 잘 못 맞혔더니 답답하다며 성질을 내서 나는 적당히 커닝을 하며 예능 PD 등살에 괴롭힘 당하는 스테프 체험을 했다. 본인 표정이 똑같은 것은 모르고...
레야는 합창의 피아노 반주를 연습해 갔다. 원래 청년부에서 지원 나와서 노래도 가르쳐 주고 반주도 해 주었는데 목사님이 레야가 공연 때까지 연습을 해오면 반주를 시켜 주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혼자 주야장천 연습을 했다. 야망 있는 녀석 같으니.
모든 부서에서 각자 준비한 공연들이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중고등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중고등부가 예전의 중고등부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중고등부 공연은 모두들 어디서 끌려온 것처럼 불퉁한 얼굴에 사춘기 특유의 검은 구름이 내려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성탄전야 행사의 마지막 순서라는 것에서부터 어느 정도 뭐가 있겠구나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 한 방이 있었다. 연극은 너무 재미있고 진지했으며 중간에 댄서들은 어쩜 그렇게 춤을 잘 추는지. 모두들 있는 끼, 없는 끼를 다 표출하는 것 같았다. 하나 같이 표정이 밝고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역시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 될 만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은 '교회가 너~무 재밌다'였다. 얀이는 연극에서 목자 역을 맡았는데 얼마나 역할에 몰두했는지 고증을 살리느라 안경까지 벗고 연기를 했다. 눈이 나빠 뵈는 게 없었을 텐데 용기도 가상했다. 연극 마지막에 합창이 있었는데 그때도 혼자 제일 신났더구만. 리듬을 막 타고.
레야는 기어이 반주를 따냈다.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페이지 넘겨주던 선생님이 일찍 페이지를 넘겼는데도 실수 없이 했다는 후문.
전체 행사를 마치고 중고등부는 올나이트 행사에 들어갔다. 맛있는 거 잔뜩 시켜서 먹고 선물교환식도 하고 얀이가 준비해 간 게임을 포함한 여러 게임도 하고 그렇게 밤새 놀고 즐기며 성탄을 맞는 것이다. 얀이는 친구들과 교회에서 자고 온다 했지만 예민한 레야는 제발 자고 오면 안 되겠냐는 우리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밤 12시에 아빠를 호출해서 기어이 집으로 왔다. 정말 지칠 줄 모르는 젊음들이다. 나도 저렇게 교회가 즐겁고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새벽송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우리의 어릴 적 추억과 비슷한 크리스마스 경험들을 하고 있어서 너무 좋다.
추억이 가득 쌓인 행복한 크리스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