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방랑자(2)

by 최여름

- 아름다운 숲과 남자


나그네는 아름다운 숲에 도착했다. 그가 태어나서 이제껏 본 적 없는 신비와 조화로움을 안고 있는 숲이었다. 숲의 입구에는 숲만큼이나 예쁜 집들이 띄엄띄엄 나무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숲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나그네가 한 걸음 들어서자 도토리를 잡고 달려오던 다람쥐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온 길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흰 벽돌에 빨간 지붕을 얹은 아담한 집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다 나그네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달려 나왔다. 그는 처음 본 이방인을 오래된 친구가 찾아온 것처럼 대하며 친절을 베풀었다. 그의 친절은 이 아름다운 숲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어서 이곳에 산다면 누구라도 이 남자처럼 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나그네는 생각했다. 남자는 나그네를 데리고 숲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숲 전체를 구경시켜 주었다. 맑은 시내와 사시사철 꽃이 피는 나무를 소개했다. 마치 그가 이 숲을 가꾼 것처럼 최선을 다해 숲을 소개했고 나그네가 점점 더 숲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정오가 되자 나그네는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며칠째 같은 빵을 먹었던 그는 이 친절한 남자의 집에 초대되어 특별한 식사를 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 남자는 그러고도 남을 정도의 헌신을 이미 이 나그네에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머릿속에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까 하는 고민으로 가득 찼다. 분명 이 친절한 남자는 괜찮다고 거절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받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부족함 없는 숲에 비해 자신이 가진 것은 초라하지만 그래도 가방을 뒤져 보면 뭔가 하나는 나올 것이다.

“벌써 점심때가 됐네. 시장하시죠?”

먼저 말을 해볼까 싶을 정도로 나그네의 허기가 끝까지 차오를 무렵 남자가 물었다.

“아, 네. 조금 배고프네요.”

“식사는 어디서 하실 예정이세요?”

예상치 못한 남자의 말이었다. 순식간에 나그네는 남자의 초대를 기대했던 자신이 무안해졌다. 이곳이 처음인 나그네에게 정해 둔 식사 자리가 있을 리가. 나그네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 네. 저는 가지고 다니는 빵이 있습니다. 아까 그 언덕에서 먹으면 좋을 것 같네요.”

나그네는 지나치게 밝은 톤으로 말하는 자신이 느껴졌다. 서운한 마음을 들켜서 초라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시군요. 역시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언제든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저 빨간 지붕 집에 사는 거 아시죠?”

남자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친절했다. 남자가 떠나고 난 후 나그네는 언덕에 올라 가방 속에 있던 빵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씁쓸한 기분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과한 친절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바란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감정의 정체는 다 풀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다 지나쳐 갈 뿐이지.’

처음으로 그는 여행자의 쓸쓸함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드러낼 수 없는 서운함만 남길뿐이었다. 빵은 여전히 퍽퍽해 맛이 없었고 숲도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언덕을 내려오던 나그네는 길 끝에서 그 남자가 다른 이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표정과 몸짓은 나그네와 이야기할 때와 같았다. 하지만 듣는 이의 표정은 무언가 불편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다음 손님은 남자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등에는 아주 무거운 짐이 들려 있었고 양손에도 보따리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 숲을 지나 다른 마을로 물건을 팔러 가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나그네에게 했듯 이 바쁜 행인에게도 숲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나그네는 그들 곁을 지나며 남자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여전히 친절한 얼굴로 나그네를 향해 환하게 웃더니 다시 하던 대화에 집중했다.

‘짐이나 좀 들어줄 것이지.’

나그네는 그의 친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했다. 바라지도 않은 친절로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쏟아 주다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 또 다른 타인에게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대하는 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동시에 고마움보다 적개심으로 가득 찬 자신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덜 친절했다면 덜 서운했을까. 그러다 갑자기, 정말 뜬금없는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빵이라도 같이 먹자고 할 걸 그랬나?’

어쩌면 남자는 이 숲에서 가장 외로운 사내였을지 모른다. 그의 외로움은 이 숲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어서 그는 친절로 자신을 감추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은 감추려 하는 자의 약점을 잡고서 자신은 비대하게, 타인은 축소하여 모두를 왜곡하여 보여 준다. 그래서 외로움을 감추려다 보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진다.

“이 좋은 숲에 사는 너도 외롭니?”

나그네는 어느새 옆으로 와 빤히 바라보고 있던 다람쥐에게 남은 빵 조각을 떼어 주며 말을 걸었다. 알아주길 바랐던 것은 나그네도 남자도 다를 것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나그네의 목소리에 놀란 다람쥐는 빵 조각을 들고 재빨리 달아났다.

나그네는 숲을 나가려던 걸음을 돌려 숲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숲을 반나절만 보고 나간다는 것이 왠지 아쉬웠다. 그는 계곡물이 흐르는 방향과 반대로 따라 걸으며 계곡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다시 돌아올 때 길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나에게 정해진 길이 있었던가. 다시 돌아 나온 들 그곳이 출발지도 목적지도 아닌데 왜 길을 잃을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는 걸까. 나그네는 오던 길을 기억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자 자유를 얻은 용기와 막막한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있었고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걸음씩 눈앞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목적지도 없고,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지도 않을 여행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그네는 자신을 방랑자라고 명명했다. 답을 찾는 것은 여행이지만 질문을 찾아 떠나는 것은 방랑이었다. 사는 동안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그는 그렇게 길을 떠났었고 여전히 홀로 그 길 위에 선 방랑자였다.

“오! 자유여, 두려움은 너에게로 이어진 길, 그 길을 걸어 내가 너를 만나러 간다!”

너무도 고요한 숲에서 나그네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큰 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에게 말을 걸면 또 다른 내가 대답을 하거나 혹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그네는 집을 떠난 후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방랑길을 함께 나선 오랜 친구가 거기에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방랑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