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고독씨와 꿈의 여왕(1)

John 4:13-14

by 최여름

고독씨는 친구가 싫었습니다. 그것만큼 성가신 게 없었죠. 허락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멀리서 이름을 크게 부르거나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자며 찾아오기도 했죠. 고독씨는 혼자인 것이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의자를 하나 더 놓거나 숟가락을 더 얹을 필요도 없었죠. 고독씨는 많은 순간 거미줄처럼 엮인 사람들 속에 있었어요. 모두들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고독씨가 말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말하라고 재촉했죠. 고독씨는 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고독씨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하나, 꿈속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틈만 나면 꿈속으로 빠져들었죠. 아주 일찍 잠들어 늦게까지 깨어나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너무 깊은 잠에 빠져들어 깨어나지 않자 꿈의 여왕이 그를 찾아왔어요.

"무슨 일이죠?"

꿈속을 혼자 거닐던 고독씨는 낯선 이가 꿈에까지 나타나자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어요.

"당신이 너무 오래 이곳에 있어서 제가 쉴 수가 없어요. 이제 그만 나가 주실 수 있나요?"

고독씨는 당황스러웠어요. 꿈에서 쫓겨나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누구신데 저한테 나가라 마라 하시는 거죠? 여긴 분명 제 꿈인데."

"전 꿈의 여왕이에요. 모든 사람의 꿈을 관리하죠. 때로 당신처럼 안 나가는 사람은 악몽을 불러서라도 나가게 해요.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되니까. 필요하시면 지금이라도 실력 좋은 애들로 불러오고요."

고독씨는 매우 언짢았지만 꿈에서 괴물들에게 쫓겨 다니기는 싫었어요. 일단 나갔다가 내일 다시 들어오기로 했죠. 그런데 꿈속에서 너무 멀리까지 산책을 나왔나 봐요.

"아, 매우 죄송하지만 나가는 문을 잊어버렸어요. 어디로 나가죠?"

"들어올 때 잘 기억하고 계셨어야죠. 당신의 문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럼 찾을 때까지 여기 머물게요."

꿈의 여왕은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어요. 사실 꿈의 여왕은 인내심이 그리 좋지 않아요.

"밖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 없어요?"

"글쎄요. 기다리면 나가야 하나요?"

밤의 여왕은 고독씨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차라리 같이 문을 찾는 것을 택했어요. 마음 같아선 발 빠르고 험악하게 생긴 사자들 몇 마리 풀어서 빨리 쫓아내고 싶었지만 출구를 모르니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이곳을 뱅뱅 뛰어다닐게 뻔했습니다. 그건 정말 머리가 지끈거릴 일이죠.

"왜 그렇게 나가기를 싫어해요?"

"..."

"친구가 없어요? 가족도?"

"..."

"제 말이 안 들리세요?"

갑자기 고독씨가 멈춰 서서 꿈의 여왕을 바라보았어요.

"왜 그렇게 나가기를 싫어하느냐고 묻지 않았어요?"

"그랬죠. 그런데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잖아요."

"질문을 했으면 답을 기다리는 게 맞지 않나? 내가 당신의 질문을 예상하고 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바로 답을 듣고 싶었으면 어제 미리 질문을 주든가, 아니면 기다리든가."

꿈의 여왕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고독씨가 밖으로 나가기 싫은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이리로 오세요."

"왜요?"

"여기가 나가는 문이니까요."

"거기는 제가 들어온 문이 아닌데요."

"여긴 누구나 나갈 수 있는 관리자용 문이에요. 제 손을 잡으세요."

고독씨가 마지못해 꿈의 여왕의 손을 잡자 둘은 함께 하늘로 붕 솟구쳐 올랐어요. 높은 아파트 꼭대기에 고독씨를 내려준 꿈의 여왕이 말했어요.

"뛰어내려요."

"네?"

"여긴 꿈 속이니까 걱정 말고 뛰어내려요."

"왜요?"

"돌아가야 하잖아요. 떨어지는 꿈을 꾸면 못 나가는 사람이 없어요. 너무 오래 여기 있으면 영영 못 나갈 수도 있어요. 어서요."

"..."

"하나, 둘, 셋 하면 뛰어요. 하나, 둘"

꿈의 여왕은 셋을 하기도 전에 고독씨를 힘껏 밀었어요.

"헉!"

고독씨는 몸이 지하로 꺼지는 듯한 아찔함을 느끼며 잠에서 깼어요. 시계를 보니 아침 6시였어요.

"별로 오래 잔 것도 아닌데 꿈 한 번 요상하네."

하지만 그때부터 꿈보다 더 요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고독씨가 깨어난 곳은 촐랑씨의 몸이었어요. 몸뿐만 아니라 촐랑대는 목소리도 해죽해죽 웃는 웃음도 촐랑씨와 똑같았어요.

"미치겠구먼. 이것도 꿈인 거지? 관리자용 출구 좋아하네. 순 엉터리 여왕이었군."

그렇게 고독씨는 촐랑씨로 하루를 살았어요. 촐랑씨는 하루 종일 사람들이 많은 곳만 찾아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말을 했어요. 고독씨는 속으로 제발 그만 좀 떠들라고 외쳤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말이 먼저 나왔어요. 그러나 다행히도 촐랑씨는 매우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촐랑씨가 가는 곳마다 웃음소리가 빵빵 터졌어요.

'이거 나쁘지 않은데?'

그때 저 멀리 진짜 고독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어요. 맑은 날에 혼자 비를 맞고 있는 것처럼 우중충한 표정이었죠.

'내가 저런 얼굴로 다녔었구나. 혹시 저 안에 촐랑이가 들어 있나? 짜식 많이 답답하겠구먼. 하루 종일 열 마디도 안 할 거다 아마. 찌질한 놈 같으니.'

고독씨는 이 생각이 자신의 것인지 촐랑씨의 것인지 헷갈렸어요.

'뭐 어때? 어차피 꿈인데. 그 여왕이라는 자를 만나면 내일은 제대로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이 놈은 하루 종일 실없는 소리만 해대서 내 귀가 다 아파.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기분은 좋았다. 하하.'

저녁이 되자 고독씨는 자신의 집, 아니 촐랑씨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하루 종일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모여들어 웃고 장난치던 장면들을 떠올렸어요.

'촐랑이 이 녀석, 가벼운 녀석인 줄만 알았더니 꽤 행복하게 살고 있었네. 돌아가면 나도 좀 배워야겠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피곤한 일만은 아니네.'

고독씨는 잠이 들면 꿈에서 제대로 자신을 찾아가리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어요. 그때 어디서 '땡그랑 땡그랑' 빈 깡통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고독씨는 잠들지 못하고 눈을 떴어요.

'무슨 소리야 이게? 내가 뭐 안 끈 거 있나?'

고독씨는 일어나 온 집을 살피며 소리가 날만한 곳을 찾았어요. 하지만 그런 소리가 날만한 곳은 없었어요. 그리고 다시 누웠을 때 '땡그랑 땡그랑' 소리가 다시 들렸어요. 고독씨는 이 소리가 다른 곳이 아닌 마음속에서 들리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사실 낮에도 얼핏 이 소리를 들은 것 같아요. 그땐 다른 소리들도 워낙 많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거예요. '땡그랑 땡그랑' 소리는 어느새 구슬프게 변했어요. 고독씨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어요.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었지만 이 녀석의 마음에서는 빈 깡통 소리만 났었구나.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도 마음이 이렇게 허전할 수 있다니.'

고독씨는 갑자기 촐랑씨가 너무 안쓰러웠어요. 다음에 만나면 따뜻한 국밥이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촐랑씨의 그 촐랑대는 말투도 어느 정도 참아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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