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스키캠프를 간다.
이안이는 2학년 때 전학 와서 처음 스키를 탔는데 같은 반 친구들은 이미 1학년 때 스키를 배워 이안이와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 이안이가 스키 신고 동생들에 끼여 걷는 연습하고 A자 자세를 배울 때 친구들은 이미 초급 슬로프에서 S자를 그리며 자력으로 활강했다. 대여한 스키복도 맞는 게 없어 허리 벨트 버클이 살을 누르고 안으로 물이 다 스며들었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쉬지 않고 연습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이안, 이레를 데리고 다시 그 스키장에 갔다. 이안이 실력을 보충하여 다음번에는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게 해 주고 싶었다. 이레도 입학하면 어차피 스키를 타야 할 테니 1박 2일 스키장에 숙소를 잡고 2대 1로 강사를 붙였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아무리 해주고 싶어도 절대 도와줄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아이가 멀리 눈밭에서 넘어지고 낑낑거려도 나는 한 발짝도 다가가 도와줄 수가 없다. 스키강사만 믿고 아래에서 그저 지켜볼 뿐이다. 점같이 보이는 조그만 아이가 눈 위로 위태위태하게 내려오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그저 내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진다. 초보들만 있는 코스에서 누군가가 아이와 부딪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나는 '조심해!'라는 말을 혼자서 삼킬 뿐이었다.
그래도 이안이는 스키를 한번 탔고 이레는 이안이 보다 어린 데다 처음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레가 더 걱정이 되었다. 밑에서 기초 연습을 하다가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에 오르면 강사는 한 명씩 번갈아 잡아주기 때문에 나머지 아이는 그 시간을 혼자서 버텨야 한다. 얼마나 무서울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리프트를 다시 탔다. 타들어가는 엄마 속과 반대로 재밌단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강사는 이레보다는 이안이에게 붙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운동이라면 지지 않을 것 같은 이안이가 의외로 스키 실력이 빨리 늘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안정감이 없고 계속 방향이 틀어졌다. 반대로 이레는 3살이나 어린데도 안정적으로 탔다. 원래도 비교를 잘 안 하는 이안이라 동생이 더 잘 타는데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은 계속 불편했다.
다음 해 겨울, 드디어 기다리던 스키캠프가 시작되었고 이안이는 보충의 결과로 친구들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슬로프를 타게 되었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스키어들이 줄지어 활강하면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고 손이 꽁꽁 어는 추위에도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된다.
스키장 아래에서 보면 아무리 내가 엄마라도 우리 아이를 찾을 수는 없다. 대여한 스키복이 비슷비슷하고 워낙에 멀기 때문이다. 그래도 활강하는 저 무리 속에 우리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뿌듯하다.
멀리서 아이들이 내려오다가 더러 넘어지기도 하고 혼자 처지기도 한다. 한 번은 어떤 아이가 넘어졌는데 금방 일어나더니 다시 대열에 합류했다. 멀리서 봐도 불안해 보이는 자세였다. 누굴까? 이안인가? 아닌가?
아이들이 다 내려왔을 때 그 아이가 이안이었다는 걸 들었다.
'아, 아직은 친구들보다는 조금 부족하구나.'
알 수 없는 씁쓸함을 혼자 삼키는데 이안이가 더없이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제가 우리 학교 애들 중에 넘어지면 제일 빨리 일어나요."
집에 와서 그 부분을 찍은 동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저 높은 곳에서 줄지어 가다가 혼자 넘어졌지만 한치의 망설임이나 절망 없이 벌떡 일어나 다시 대열 속으로 유유히 합류하는 아이. 그 아이는 못해서 넘어지는 아이가 아니라 넘어져도 잘 일어나는 아이다.
넘어진 것보다 일어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 아이는 한번 더 나를 깨운다. 남보다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어쩌면 남보다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을 감추며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을 보게 하고 과정이 결과인 것처럼 다른 사람과 비교하던 내 마음을 반성케 한다.
이안이는 넘어질 수는 있어도 주저앉는 아이가 아니다. 일등으로 결승선을 끊는 것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아이를 더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