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오르는 한낮이 되면 그는 날개를 활짝 펴서 햇빛 아래 깃털을 말렸다. 앙상한 날개 사이를 부리로 가지런히 빗기도 했다. 나도 그를 따라 날개를 길게 펴 보았다. 겨울이 지나고 한층 인자해진 봄햇볕이 깃털 사이사이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져 주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영감님은 어디까지 날아가고 싶으세요?”
“나? 나야 고소공포증 때문에 높이는 못 날아.”
“뭐예요 그게. 저 보고는 만날 못한다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시고서는. 영감님도 못한다는 소리 금지예요. 아시겠어요?”
“하하. 그런가? 대신 나는 매일 달리기를 연습하지. 일평생 실컷 날아다녔으니 이제 땅 위를 빠르게 달려 보면 어떨까 싶어서.”
“뛰신다고요? 독수리가 뱁새가 되기로 작정하신 거예요? 독수리는 독수리라면서요? 뭐가 말이 하나도 안 맞아.”
“내가 언제 나를 포기한다고 그랬나? 이제는 안 해본 것을 해 보고 싶다는 거지. 그동안은 멀리서만 세상을 봤으니 이제 가까이에서 세상을 보고 싶은 걸세. 꽃도 보고 무당벌레도 보고 줄 지어 가는 개미도 구경하고. 높이만 날다가 놓친 게 얼마나 많겠어?”
“거 참, 역시 신박하십니다.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몸은 늙지만 용기는 더 생겨 나기도 하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재미없지 않나? 날 수 없으면 달리기라도 해야지. 이제 달리기는 내가 자네보다 훨씬 더 빠를걸?”
“매일 그렇게 먼지 풀풀 나게 뛰어다니신 이유가 그거였어요? 암튼 특이한 양반이셔.”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좁은 우리 안을 재빠르게 뛰어다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려도 몇 걸음 못 가 몇 번이고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자네 그거 아나?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게 뭔지?”
“수수께끼예요?”
“아니야, 수수께끼가 무슨 힘이 있어?”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참, 하여튼 안 맞기는.”
그는 멈춰 서서 가뿐 숨을 몰아쉬며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하, 농담이야.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시간이야.”
“시간이요? 사나운 태풍도 아니고 불타는 태양도 아니고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라고요?”
“자네는 아직 어려서 시간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졌는지 잘 모를 거야.”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졌는데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게 하는 게 시간이야. 그뿐인가? 크고 단단한 바위도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하고 사람들이 손으로 지은 모든 것들도 시간 앞에서는 다 사라지게 되어 있지.”
“그건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거잖아요?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우리 인생도 꽤 긴 시간이야. 시간의 힘을 아는 자는 그 시간의 힘에 올라타지.”
“시간의 힘에 올라탄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처음엔 아주 작은 시도라도 시간의 힘에 올라타면 폭풍 같은 결과를 불러오기도 해. 난 여기 온 이후로 매일 달리기를 했어. 달리기를 시간의 힘에 올려 보기로 한 거지. 처음에는 몇 걸음 안 가서 지쳐 버렸어. 우리가 날기만 했지 달릴 일이 없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학교 운동장 세 바퀴는 거뜬히 돌지.”
“말도 안 돼. 그 짧은 다리로요? 영감님, 아무리 시간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도 있는 법이에요.”
“아니, 내가 거짓말하는 것 봤나?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나가서 꼭 보여 주지.”
“영감님이 운동장 세 바퀴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면 저는 높이 날아올라 태양도 만지고 돌아올 걸요? 저도 보여 드릴 수 있어요.”
“자넨 안될걸. 그렇게 꽁꽁 접힌 날개로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와, 영감님. 결국 이거네. 또 나보고 날개 펴고 나는 연습하라고.”
“알았으면 해 볼 텐가?”
“네, 네. 그렇게 소원이시라면. 저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이 좁은 곳이라도 열심히 날아보죠, 뭐. 대신 잔소리 좀 줄여 주시고요.”
“자네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내가 입을 꽁꽁 묶어 버리지.”
“네, 제발요. 하하”
그날 나는 날개를 다시 펴서 낮은 하늘을 날았고 그는 여전히 짧은 다리로 먼지를 날리며 좁은 공간을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