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비상(2)

by 최여름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오르는 한낮이 되면 그는 날개를 활짝 펴서 햇빛 아래 깃털을 말렸다. 앙상한 날개 사이를 부리로 가지런히 빗기도 했다. 나도 그를 따라 날개를 길게 펴 보았다. 겨울이 지나고 한층 인자해진 봄햇볕이 깃털 사이사이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져 주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영감님은 어디까지 날아가고 싶으세요?”

“나? 나야 고소공포증 때문에 높이는 못 날아.”

“뭐예요 그게. 저 보고는 만날 못한다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시고서는. 영감님도 못한다는 소리 금지예요. 아시겠어요?”

“하하. 그런가? 대신 나는 매일 달리기를 연습하지. 일평생 실컷 날아다녔으니 이제 땅 위를 빠르게 달려 보면 어떨까 싶어서.”

“뛰신다고요? 독수리가 뱁새가 되기로 작정하신 거예요? 독수리는 독수리라면서요? 뭐가 말이 하나도 안 맞아.”

“내가 언제 나를 포기한다고 그랬나? 이제는 안 해본 것을 해 보고 싶다는 거지. 그동안은 멀리서만 세상을 봤으니 이제 가까이에서 세상을 보고 싶은 걸세. 꽃도 보고 무당벌레도 보고 줄 지어 가는 개미도 구경하고. 높이만 날다가 놓친 게 얼마나 많겠어?”

“거 참, 역시 신박하십니다.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몸은 늙지만 용기는 더 생겨 나기도 하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재미없지 않나? 날 수 없으면 달리기라도 해야지. 이제 달리기는 내가 자네보다 훨씬 더 빠를걸?”

“매일 그렇게 먼지 풀풀 나게 뛰어다니신 이유가 그거였어요? 암튼 특이한 양반이셔.”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좁은 우리 안을 재빠르게 뛰어다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려도 몇 걸음 못 가 몇 번이고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자네 그거 아나?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게 뭔지?”

“수수께끼예요?”

“아니야, 수수께끼가 무슨 힘이 있어?”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참, 하여튼 안 맞기는.”

그는 멈춰 서서 가뿐 숨을 몰아쉬며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하, 농담이야.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시간이야.”

“시간이요? 사나운 태풍도 아니고 불타는 태양도 아니고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라고요?”

“자네는 아직 어려서 시간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졌는지 잘 모를 거야.”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졌는데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게 하는 게 시간이야. 그뿐인가? 크고 단단한 바위도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하고 사람들이 손으로 지은 모든 것들도 시간 앞에서는 다 사라지게 되어 있지.”

“그건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거잖아요?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우리 인생도 꽤 긴 시간이야. 시간의 힘을 아는 자는 그 시간의 힘에 올라타지.”

“시간의 힘에 올라탄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처음엔 아주 작은 시도라도 시간의 힘에 올라타면 폭풍 같은 결과를 불러오기도 해. 난 여기 온 이후로 매일 달리기를 했어. 달리기를 시간의 힘에 올려 보기로 한 거지. 처음에는 몇 걸음 안 가서 지쳐 버렸어. 우리가 날기만 했지 달릴 일이 없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학교 운동장 세 바퀴는 거뜬히 돌지.”

“말도 안 돼. 그 짧은 다리로요? 영감님, 아무리 시간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도 있는 법이에요.”

“아니, 내가 거짓말하는 것 봤나?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나가서 꼭 보여 주지.”

“영감님이 운동장 세 바퀴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면 저는 높이 날아올라 태양도 만지고 돌아올 걸요? 저도 보여 드릴 수 있어요.”

“자넨 안될걸. 그렇게 꽁꽁 접힌 날개로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와, 영감님. 결국 이거네. 또 나보고 날개 펴고 나는 연습하라고.”

“알았으면 해 볼 텐가?”

“네, 네. 그렇게 소원이시라면. 저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이 좁은 곳이라도 열심히 날아보죠, 뭐. 대신 잔소리 좀 줄여 주시고요.”

“자네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내가 입을 꽁꽁 묶어 버리지.”

“네, 제발요. 하하”

그날 나는 날개를 다시 펴서 낮은 하늘을 날았고 그는 여전히 짧은 다리로 먼지를 날리며 좁은 공간을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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