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봄이 지나고 사나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낮동안 태양이 우리를 집어삼킬 듯 노려 보다가도 밤이 되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리기도 했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과 세찬 비바람을 맨몸으로 이겨냈다. 밤새 쏟아진 폭우에 온몸을 동그랗게 말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도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면 밤동안 젖은 날개를 활짝 펴 깃털을 말렸다. 그는 여전히 뱅뱅 돌며 뛰어다녔고 나는 어느새 더 단단해진 날개를 펴고 커다란 날갯짓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나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그의 칭찬에 고무된 나는 매일 새로운 기술을 보여 주며 그의 부러움을 즐겼다. 한여름의 더위가 꺾이고 곳곳에 태양보다 붉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에 날아가 가장 먼저 눈을 맞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추운 건 딱 질색이라며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그럼 땀나도록 두 발로 산을 기어오르면 되지 않냐고 핀잔을 주었고 그는 못할 것 같냐고 허세를 부렸다.
어느새 나무를 떠난 잎들이 땅 위를 구르고 아침저녁으로 꽤 차가운 냉기가 스미기 시작했다. 게으른 피터는 우리에게 먹이 주는 것을 자주 잊었다. 나는 그러다 그가 우리를 아예 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올 때마다 날개를 작게 파닥이며 그를 반기는 척했다. 그렇게라도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지켜내야만 했다. 희망이라는 것은 그렇게 비굴함도 참아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오후부터 늦은 가을비가 내려 기온은 더 아래로 떨어졌다. 피터는 지난 사흘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희망은커녕 우리는 이제 생존 하나만을 위해 기약 없는 시간을 버텨내야만 했다. 밤이 되자 바닥까지 내려온 묵직한 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쩍이고 온 하늘이 터질 듯 천둥이 요란하게 치기 시작했다. 바람은 방향을 바꿔 가며 몰아쳤고 그 바람을 따라 빗줄기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사방 그 어디를 살펴봐도 우리의 작은 몸뚱이를 피할 곳은 없었다. 구석에 몸을 욱여넣고 날개로 몸을 감싸며 잠을 청해 보아도 나를 명중시킬 것 같은 섬뜩한 번개와 뒤이은 천둥소리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깼다. 빗소리 사이로 제이영감의 신음소리가 섞여 왔다. 그는 요즘 부쩍 기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점점 매서워지는 계절을 버티는 것이 나에게도 힘든 일인데 깃털이 다 빠지고 체온을 보호할 잔털이 자라지 않는 늙은 독수리에게 현실은 참으로 독하고 무정할 뿐이었다. 그는 오늘처럼 날씨가 궂은 밤이면 쇠약한 몸뚱이를 버티지 못하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영감님, 영감님. 괜찮아요? 대답 좀 해봐요.”
그는 대답 대신 발 한쪽을 들어 두어 번 까딱거렸다. 나는 어서 빨리 아침이 오기를 바라며 닿을 수 없는 그의 곁을 밤새 눈으로 지켰다. 처음으로 나는 세상을 뒤집을 듯한 폭풍이 지나가고 그가 다시 ‘오늘은 어디까지 날아오를 텐가?’라고 물어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요란하게 겨울을 당기던 하늘이 간밤에 부린 성질을 모른 척하며 뻔뻔하고 맑은 해를 다시 그 자리에 걸어둔 날, 그는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소리로 그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불길함을 감지한 나는 온몸으로 구조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제발 누구라도 우리를 좀 꺼내 주세요. 제이영감을 살려 주세요.’ 나는 날개깃이 떨어져 나가도록 철창문을 두드리고 피가 나도록 벽에 몸을 부딪쳐 소리를 냈다.
“영감님, 영감님! 내 목소리 들려요? 그럼 대답 좀 해봐요. 아니면 발이라도 움직이든지. 오늘 또 우리 저기, 저기 어디야 거기 오늘은 아프리카까지 날아가요. 네? 아니, 구름 위는 어때요? 구름 위로는 안 가봤잖아요? 무서우면 내 등에 업혀요. 네? 나 힘세잖아요. 영감님 때문에 날개가 강해졌잖아요. 아니, 꽃이 가득 피어 있는 풀밭을 같이 달려요. 달리기 보여 준다면서요….”
나는 온몸으로 울부짖었다. 비록 좁고 비루한 세상이라도 그가 없는 세상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꿈속에서 하늘을 날 때도 내 곁에 항상 그가 있었다. 희망을 억지로 쥐어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내 삶을 지지해 준 그였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이 문을 나가고 싶었다. 내 문을 열고 그의 문을 열어 그와 함께 우리가 늘 꿈꾸던 세상으로 달려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 같은 거 벌써 잊고 혼자서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 앞에 나타난 사람은 피터가 아니었다. 초록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우리 앞에 잔뜩 나타나서는 사진을 찍고 자기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나누었다. 그들은 제이영감의 문을 열었고 그중 흰색 가운을 입은 자가 와서 영감을 어디론가 안고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흰 가운 옆으로 제이 영감의 발이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가늘지만 단단한 그 발이 이제는 그만 달려도 된다는 듯 편안하게 늘어져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제이영감이 자신의 말처럼 진짜 주인에게로 돌아가 그의 품에 안겼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담아 그에게 “안녕, 나의 영감님.”이라고 외쳤다. 뒤이어 나는 내 낮은 하늘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철커덕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