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비상(1)

Isaiah 40:31

by 최여름

하늘이 점점 낮아졌다. 나는 이제 고개를 드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아침이 밝았지만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내 안의 어둠에 갇혀 있었다. 누군가 창살을 크게 흔들어 나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매일 아침 내게 식사를 주고 가는 피터였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물과 고깃덩이를 바라보았다. 오늘 내가 살아갈 힘이 이것들에게서 나오겠지.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고기를 씹고 물을 삼켰다. 먹었으니 이제 하루를 또 버텨내야 한다. 매일 밥을 주는 사람이 있음은 내가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남았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나는 너무 지쳤다. 이 좁은 공간에서 나는 그저 숨만 쉬는 이유 없는 존재일 뿐이다.

“날개를 펴! 퍼덕이라고!”

옆 우리에 사는 제이영감이다. 그는 다 늙어 빠진 독수리다. 내가 이곳에 온 날부터 그는 매일 아침 나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그리고는 자신의 날개를 쫙 펴서 따라 하라는 듯 보여 준다. 그의 날개는 깃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기름기라고는 전혀 없어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좁은 공간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제자리를 몇 번이고 뱅뱅 돈다. 그의 날개가 일으킨 먼지가 나에게까지 날아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일부러 더 크게 컥컥거린다.

“이봐. 우리가 사는 건 물과 고기 때문이 아니라고. 가슴을 펴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봐.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란 말이야.”

나는 그의 잔소리가 이어지는 게 싫어 그냥 그가 하라는 대로 크게 심호흡을 한다. 익숙한 일이다.

“잘하네. 그렇게 크게 숨을 쉬어. 내가 못 나가는 대신 이 신선한 공기가 여기까지 들어와 코끝에 기다리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지 않아?”

“네. 그런 것 같네요.”

거짓말이다. 도대체 영혼이 맑아진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 영혼은 언제나 깊은 어둠 속에 있다. 거기에는 빛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신선한 공기도 숨이 막혀 돌아 나올지 모른다.

“그래, 오늘은 어디까지 날아볼 텐가?”

나는 이 말에도 지쳤다. 그는 매일 아침 나에게 어디까지 날 것이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화를 내기도 했다.

“지금 제 꼴이 안 보이세요? 이 낮은 지붕이 제 하늘이라고요. 빌어먹을!”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자네 하늘은 저리도 높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가 있는 그곳은 진짜 하늘이 아니야. 잊었어? 새는 하늘을 날아야지.”

어느 날은 소리를 질렀고 어느 날은 밤새 울었다. 제이영감은 그럴 때는 또 좀 조용했다. 그 영감의 듣기 싫은 입을 막는 방법은 내가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그는 또 어김없이 오늘은 어디까지 날 것인지 물었다. 정말 지칠 줄 모르는 오지랖이다. 나는 이제 거의 체념 상태가 되어 그의 훈장질에 놀아나 주고 있다.

“오늘은 어릴 때 자주 가던 절벽 끝까지 가보죠 뭐. 거기 예쁜 꽃 하나가 있는데 아직도 피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호오, 좋은 생각이야.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까지는 못 가니까 꽃이 여전히 피어 있으면 한 송이만 꺾어 주게나.”

“그런 식으로 또 내빼시는 거예요? 고소공포증 있는 새가 어디 있습니까? 채식주의 사자 뭐 그런 거예요? 그리고 꽃도 그 험한 데서 살아보겠다고 바위 뚫고 애써 피었는데 그걸 꺾어와요? 순 이기주의시네.”

“아, 그런가? 난 꽃이 한 번이라도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할 줄 알았지.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예쁘게 피었어도 서글플 것 아닌가? 나는 백 번이라도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있거든.”

“그냥 고소공포증 이기고 저랑 같이 보러 가세요. 가서 얘기해 주면 되잖아요.”

“역시 자네는 나와 달라. 마음이 어쩜 저리 착해? 꽃 하나도 꺾을 줄 모르는 순둥이야.”

그와의 대화 마지막은 항상 나에 대한 치사로 끝이 났다. 놀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는 모호하지만 듣기 싫진 않았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그와의 유치한 말장난에 나는 태평양 바다도 건너고 남극의 펭귄도 만나 보았다. 어느 날은 꿈에서 바다 끝 높은 벼랑 위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고 있는 내 모습을 보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공간을 자유롭게 가르며 날고 있었고 바다 저 끝에서는 강렬한 태양이 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내 발아래 있었고 나는 바람을 타며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켰다. 꿈속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다음 날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아서 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분명히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 테지.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내 옆에 그의 둥지도 같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고소공포증 있는 늙은이에게 할 짓이냐며 버럭버럭 화를 내겠지. 그럼 난 깔깔 웃으며 놀려 줄테다. 당신도 당해 보라지. 하지만 그런 꿈을 꾸고 난 다음 날은 여지없이 저릿한 슬픔을 꿈값으로 치러야 했다.

그는 그날도 나에게 물었다.

“그래, 젊은 친구. 오늘은 어디까지 날아오를 텐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꿈같은 꿈이 남기고 간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와의 실없는 농담도 오늘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영감님, 저는 영원히 날 수 없을 거예요.”

하늘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어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아니 내 마음에는 이미 장마가 시작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람의 온도가 달라질 때마다 나는 마음의 몸살을 앓았다. 며칠 전부터 바람은 속에 온기를 품고 다시 봄이 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다른 새들도 날지 않아서 괜찮아.”

“그 말이 아니잖아요.”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잔소리꾼 제이영감을 미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가 이런 침묵의 시간을 다룰 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때로 침묵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것을 아는 현명한 자였다.

“낮은 하늘을 산다고 너무 일찍 자네의 날개를 접어 버리지는 말게. 계속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신이 자네에게 그렇게 멋진 날개를 주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이곳에 있어도, 밖에 있어도 자네는 멋진 독수리야. 좁은 곳에 갇혀 있다고 독수리가 뱁새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일세. 하지만 자네의 멋진 날개를 너무 오래 접고 있으면 기회가 와도 다시 날아갈 수가 없어.”

나는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참으며 물었다.

“그러는 영감님은요? 날개 꼴이 그게 뭡니까? 깃털이 다 빠져 가지고.”

“나야 이제 새로 나는 깃털이 없으니까 할 수 없는 거지. 자네도 내 나이 되어 보라고. 빛나는 깃털이 영원히 내 것일 것 같은가?”

“깃털이 아름다우면 뭐 합니까? 날지도 못하는 거. 여기서 아무리 파닥거리면 뭐 하냐고요,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세상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모르잖아요. 저 문이 닫혀 있는 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문을 여는 건 자네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우리의 주인만이 할 수 있지. 우리는 그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우리의 일을 할 뿐이야.”

“피터가 우리를 풀어줄 거였으면 처음부터 여기에 가두었을까요?”

“피터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야. 그는 사냥꾼일 뿐이지.”

“그럼 우리의 주인이 누구라는 말이에요?”

“그야 자네에게 생명을 준 분이 자네 주인이겠지.”

“하지만 지금 우리 생명줄을 쥐고 있는 건 피터잖아요. 빌어먹을! 말 그대로 우리는 지금 그에게 빌어먹고 있다고요. 어떻게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 수가 있는 거냐고요?”

“이렇게라도 살아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살아 있기만 하면 다예요? 누가 주인이든 절 이 세상에 내보냈으면 제대로 살게 해 줘야죠.”

“삶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지. 희망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괜히 헛된 희망 품게 하지 마세요, 영감님. 그게 더 나쁜 거라는 거 알고나 계세요?”

내 목소리는 마음과 다르게 격앙되어 흘러나왔다. 나는 그의 진심을 알고 있었고 그의 말이 사실이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절망이라는 양날의 검을 동시에 쥐는 것이다. 그 날카로운 칼날에 베여 본 사람은 남이 버린 칼로도 자신에게 생채기를 낸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희망이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어리석음의 결과로 더 큰 절망을 치르게 된다. 나는 이곳에 온 이후로 수없이 희망이 절망으로 교차되는 순간을 맞았다. 어린 날개가 자라 세상 속으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던 내게 이 좁은 세상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먼저 알게 했다. 한동안 나는 내 힘으로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날개를 펴서 하늘로 날아오르다 천장에 부딪혀 바닥으로 처박히기도 하고 두꺼운 창살을 향해 돌진하다가 뼈가 부러져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나를 가로막는 벽을 향해 수없이 달려들었고 세상과 연결된 문을 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하지만 세상의 문은 조금도 그 틈을 주지 않았다. 희망은 나에게 고통일 뿐이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음에도 내가 버린 희망을 끝까지 주워 내 손에 쥐어 주려 애쓰고 있었다. 그가 고마웠지만 고맙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 고집스러운 영감은 내가 자신의 막내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끝까지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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