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유진이의 빵집(1)

Matthew 23:12

by 최여름

내가 15년 만에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세월에 비해 변화가 너무 없는 마을의 모습이었다. 인근의 도시로 이어진 마을도로가 시멘트 대신 아스팔트로 바뀌고 마을 입구 사거리에 로터리가 생겼다는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놀이터 앞 느티나무도 그대로 있고 간이 버스 정류장의 위치도 그대로였다. 여러 집들이 최근에 공동구매라도 한 듯 비슷한 색으로 반짝거리는 지붕을 얹은 것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놀이터에 우주선 모양의 미끄럼틀과 등받이 그네가 생겼다는 것, 경로당이 2층 건물로 새로 지어졌다는 것 정도가 내가 찾아낸 변화의 끝이었다. 모든 것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0.8배 정도 작아져 있었고 여전히 느린 속도로 고요한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간혹 만나는 동네 어른들도 예전 인상 그대로 주름은 늘고 체구는 줄어들어 있었다. 그들은 길을 가다 나를 발견하면 그대로 멈춰서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나는 나를 알아보는 것인지, 모르는 낯선 이를 탐색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른 척 지나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가볍게 목례만 했다. 그러다 ‘감나무집 딸내미?’라고 알아보면 한번 더 소리 내어 인사하고 그냥 지나가면 나도 그냥 지나갔다. 익숙한 듯 불편하기 그지없는 귀향이었다. 나는 내가 놀던 놀이터와 골목 끝에 깊이 잠들어 폐허가 되어 버린 옛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중학생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도시로 이사를 갔다. 가족들은 그곳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나는 중학교까지만 가족과 함께 살다가 고등학교, 대학으로 진학할 때마다 조금씩 더 큰 도시로 옮겨 갔다. 미술과로 유명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꽤 큰 회사에서 홍보디자이너로 일을 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나의 이십 대였다. 하지만 서른을 한 해 앞두고 나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여기서 이십 분쯤 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읍내에 작은 가게를 얻어 북카페를 열었다. 정식 오픈을 앞두고 나는 문득 어릴 적 살던 고향집이 궁금해졌다. 부모님도 친척도 아무도 없는 곳이었지만 왠지 이곳에 와서 내가 이 지역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신고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많이 바뀌었을 거라 생각한 내 예상과 달리 골목 하나하나 다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편안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다. 도시와 시골, 같은 하늘 아래서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돌아온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시간여행자라도 되는 듯 마을을 돌다가 읍내로 돌아가기 위해 마을에서 유일한 작은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이곳에서 버스표를 함께 팔고 있었다. 슈퍼마켓은 예전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었고 주인아주머니는 같은 분이긴 하지만 모습이 많이 변해있었다. 그녀는 내 기억보다 두 배나 커진 체구를 감당하지 못해 2인용 소파에 걸터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채 계산도 하고 버스표도 끊어 주었다. 그녀는 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좋은 대학 갔다더니 인물이 훤해져서 돌아왔네. 취직도 좋은 데 했다면서? 너희 엄마가 가끔씩 와서 네 소식 알려 주고 갔다.”

여기까지 와서 기어이 자식 자랑을 늘어놓고 가는 엄마도 대단하다. 시골에서는 모두 도시로 가서 잘난 자식들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잘난 자식들은 얼마나 바쁜지 모두들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엄마가 늘 나에게 하는 말이다. 어쩌면 성공한 자식들은 모두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들이 끝까지 성공한 채로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마 엄마도 나의 취직 그 이후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과 6개월 만에 이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까지. 그 말을 할 수 없어 다시 이곳을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는 여전하시네요.”

내가 한 말에 내가 더 놀랐다. 아주머니는 누가 봐도 많이 변했다. 동네 어른들 다 예전보다 줄어들었어도 이 아주머니만은 예외였다. 내가 이런 입에 발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지만 수습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아이고야, 뭐가? 다 늙고 쭈글쭈글하지. 살도 많이 찌고.”

“아니에요. 여전히 예쁘세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나는 아주머니의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주입시켰다. 나의 빈 말은 참으로 효과적이었다. 아주머니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밝아졌다. 이쯤 되면 거짓은 진실보다 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직감적으로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입에 침 바른 것 더 밀고 가보자.

“저 이번에 아예 내려왔어요. 읍에 북카페 열었거든요. 아주머니도 한 번씩 놀러 오세요.”

처음부터 가게 홍보를 하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으나 마을의 사랑방과도 같은 이곳에 이야기를 흘려 두면 집집마다 전단지를 돌린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내 가게에 와서 매상을 올려 달라는 의도가 아니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내게 와서 물어보는 것보다는 아주머니를 통해 한번에 정보전달 하는 것이 덜 귀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북카페가 뭐야?”

“책도 팔고 커피도 파는 곳이에요.”

아주머니가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큰 회사 다니는 거 아니었어? 너희 엄마가 옛날에 와서 그렇게 말하고 갔는데?”

“다녔는데요, 저랑 안 맞아서 그만뒀어요.”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밝게 웃어 보였다.

“너네 엄마도 아셔? 네가 회사 그만두고 다방 차린 거?”

고향에 온 이후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다방이라니.

“북카페라니까요. 다방 하고는 달라요.”

“커피 판다며?”

더 이상 이야기 해봤자 다방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아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 사람들은 책은 고사하고 돈 아까워서 커피 마시러 오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내가 여기 올 일도 없을 텐데 책방지기로 알든 다방레지로 알든 무슨 상관이야. 엄마도 영원히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젊은 애들이 왜 다 고향으로 내려온데? 도시 살기가 그리 힘든가? 부모들이 애써서 도시 보내놨더니 다 다시 내려오고 있어.”

“네? 누가 또 왔어요?”

“저기 아랫마을 유진이. 너랑 한동갑 아니야? 걔도 작년에 내려와서 빵집인가 뭔가 차렸잖아. 이 시골에서 무슨 빵이 팔릴 거라고, 참.”

유진이? 유진이가 누구였더라? 나는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내 학창 시절 기억창고를 뒤적거렸다. 한 아이가 떠올랐다. 그 친구다. 남자아이인데 여자이름이라고 한동안 놀림받았던 그 유진이다. 작은 체격에 지나치게 말이 없고 시골아이 답지 않게 늘 혼자 앉아 책만 보던 아이다. 그렇다고 꽤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천방지축 철없던 우리와 다르게 외딴섬처럼 홀로 있는 것이 자연스럽던 그 아이. 짧게나마 나는 그 아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억이 꼬리를 물고 하나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과일주스 세트를 집어 들며 아주머니에게서 유진이에 대한 정보를 더 수집했다.

“그 어린 게 부모 다 잃고 할아버지랑 살았잖아. 커서도 어렵게 어렵게 공부해서 신학대학인가에 들어갔는데 그 해에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학교도 그만뒀다나 봐. 돈이 있어야 학교도 다니지. 이 일 저 일 하다가 제빵기술을 배웠대. 작년에 내려와서는 할아버지랑 살던 집에서 빵 팔고 있어. 금방 망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는가 봐.”

나는 읍으로 가려던 버스표를 취소하고 유진이가 있는 마을로 가는 표를 다시 끊어 달라고 했다. 읍으로 가는 버스가 이 마을 다음으로 경유하는 곳이라 버스 시간은 같았다.

“그냥 걸어가지 뭘 거기 가는데 버스를 타?”

소파에서 일어나지도 않는 아주머니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잔소리 같은 핀잔에 나는 버스를 포기하고 반반하게 닦인 도로를 따라 그가 있는 마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거운 주스세트는 사지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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