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유진이의 빵집(2)

by 최여름

어느새 계절은 봄보다는 여름에 가까워져 있었다. 동네슈퍼를 나와 유진이의 빵집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 길을 경계로 왼쪽은 산과 밭이, 오른쪽은 온통 모내기가 시작된 논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 추수를 끝내지 못한 양파들은 통통한 줄기를 하늘로 뻗고 세상에 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차양이 넓은 모자에 수건까지 둘러 쓴 농부들은 저마다의 작물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유진의 가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낮은 산 아래 넓게 펼쳐진 농경지 사이에 혼자 덩그러니 지어진 집이 예전부터 그의 집이었다. 큰길로부터 그의 집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뽀얀 시멘트길이 깔끔하게 깔려 있었다. 그 길 양쪽으로는 전부 논이었는데 모내기가 끝났거나 혹은 준비하는 시기라 논에 댄 물들이 호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빵집이 있었다. 빨간 지붕과 새하얀 벽이 주변 논들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장난 아닌데?”

아주머니 말로는 시골집을 조금 개조했다기에 그 슈퍼만큼이나 작고 평범한 빵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얀 길과 그 끝에 자리한 빨간 지붕의 빵집은 상상 이상으로 아담하고 예뻤다. 이런 미장센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평가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런 감각이 있는 애였는지는 몰랐네.”

나는 아스팔트에서 시멘트 길로 들어서며 유진의 변한 모습을 상상했다. 나를 알아보기는 할까? 가만, 애들이 그를 놀릴 때 나도 같이 했던가? 아니었던가?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유치한 장난에 동참했을 리가 없다. 그 아이가 뭔가 말을 하면 할아버지와 살아서 어른 같은 소리만 한다고 친구들이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에 친구 따라 교회 갔을 때 조용하기만 하던 그 애가 앞에 나와서 시를 낭송해서 놀랐던 기억도 난다. 작고 조용했던 유진에 비해 그 시절 나는 전교 1등을 도맡아 하고 시골에서 보기 드물게 각종 도대회에서 글짓기와 미술상을 휩쓸던 아이였다. 수학경시대회도 자주 나갔고 교육청 영재반도 수료해 모두들 이곳 최초로 S대 진학생이 나오나 기대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물론 읍내를 나가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고 집에서는 나 때문에 동생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당시 나에게 세상은 쉬워 보였고 또래 친구들은 매우 유치했다. 가끔 학교 앞에서 중학생 오빠들이 내 이름을 부르거나 내게 말을 걸기도 했는데 그럴 때 나는 '중학생이면서 공부 안 해요?'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나는 그들 중 나만 먼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내 자존심을 무참히 꺾어 버린 아이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유진이었다. 6학년 때인가? 한 번도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지 않던 유진이가 처음으로 도대회에 나가 대상을 탔다. 그때 나는 겨우 차상이었나 으뜸이었나? 하여간 명확한 등수도 없고 이름도 이상한 상을 탔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1등을 못한 것보다 유진이한테 진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도내에서는 몰라도 우리 반 안에서는 내가 뭐든 1등이어야 했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 돌아버릴 것 같았다. 급기야 그 아이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등을 돌려 친구들에게 말했다.

“글짓기라는 게 말이야, 불쌍하게 쓸수록 유리한 거잖아.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려면 가족 얘기 만한 게 어딨겠어? 나는 부모님도 다 계시고 여러 모로 불리하지.”

거기까지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빵집까지는 고작 10여 미터 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 그 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내 학창 시절 통틀어 가장 치졸하고 유치했던 그 순간을 어떻게 잊어버리고 뻔뻔하게 그를 찾아갈 생각을 했을까? 나는 내심 유진이가 나를 보고 엄청 놀라고 반가워할 거라고 상상을 했었다. 그 시절 남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인기가 좀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이사를 했지만 그때도 몰래 나를 좋아했었다는 편지를 여러 통 받았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유진을 그 남학생들 사이에 끼워 놓고 혼자 좋아서 이 길을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들키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한 사람은 잊고 있어도 들은 사람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유진이었다면 두고두고 이를 갈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내 자존심에 그 자리에서 대판 싸움이 났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들었을 텐데, 못 들었을 리가 없을 텐데도 아무 내색도 안 하던 유진이가 더 약 올라 한동안 노려보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날 이후 나는 글짓기 대회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고 미술 대회만 빠짐없이 나갔다. 저 촌뜨기가 미술은 나를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미술이 내 진로가 되었었다. 맞다, 그랬었다. 아, 어쩜 좋아. 나의 흑역사에 그가 있었다. 도망 가자.

“해수야!”

돌아보지 않아도 그가 부른 것을 알았다. 목소리는 완전 달라졌지만 지금 여기서 내 이름 부를 사람 유진이 밖에 없지 않나? 망했다.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는데 얼굴만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해수 맞지? 왜 오다가 다시 가?”

유진은 내가 이 길에 들어설 때부터 나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가게 안 통창으로 길 위에 있는 사람이 훤히 다 보인다는 것을 잠시 후 빵집에 들어섰을 때 바로 알았다. 나는 그날 그 말이 기억나지 않았던 몇 분 전으로 나를 보내야 했다. 레드 썬, 레드 썬, 썬, 썬.

“안...녕? 유진아.”

나는 살짝 손을 흔들었고 돌아서는 나를 보고 급히 문 밖으로 나온 그가 활짝 웃었다. 그는 그대로이기도 하고 많이 변하기도 했다. 여전히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어릴 때의 그 모습이 어딘가 남은 채로 키만 자랐다. 목소리는 중저음으로 부드러웠고 머리는 짧고 단정했다. 무엇보다 하얀색 조리복을 입고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예전 그 외딴섬 같은 아이를 상상할 수 없게 했다. 내가 몸만 돌린 채 가만히 서 있자 그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오랜만이야. 우리 빵집 찾아온 거 맞지?”

여기 그의 빵집 밖에 없는데 아니라고 할 수가 있나. 아무렴 내가 모내기하러 왔을까 봐.

“빵집 예쁘다. 언제 차렸어?”

작년 겨울에 시작했다고 슈퍼 아주머니가 이미 말해 주었다. 나는 내 이성회로가 고장 난 것을 알았다. 6학년의 나를 데려와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런 말만 안 했어도 내가 이렇게 쩔쩔매지 않았을 거다.

“작년 11월에. 아직 자리 잡는 중이야. 혹시 그거 나 주려고 사 온 거야?”

그는 내가 어깨 빠지게 들고 온 주스 세트에 시선을 두었다. 이 세련되고 예쁜 빵집에 고작 들고 온 게 알록달록한 토마토맛, 오렌지맛, 알로에맛 주스들이라니….

“너 가게 열었다는데 이 시골에 마땅히 사 올 게 있어야지.”

그는 고맙다며 주스세트를 건네받았다. 묵직했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의 빵집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예뻤다. 올 화이트 인테리어에 짙은 고동색으로 서까래와 나무 기둥들만 포인트를 주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각종 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실내에 가득했다. 내가 걸어온 방향을 향해 난 통창으로 햇빛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는 길과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논의 물결이 눈을 시원하게 했다. 저 창으로 여기 오는 사람들이 다 보일 터였다. 가만, 내가 어떤 걸음으로 왔었지? 풍경에 한껏 취해서 기분 좋게 걸어오긴 했는데 막 스텝 밟고 그러진 않았겠지? 나는 여러 생각에 휩싸여 빨리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잘 지냈어?”

그는 나를 향해 다정하게 물었지만 나는 “응.” 간단하게만 대답했다. ‘나에게 그렇게 상처 주고도 너는 잘 지냈니?’로 들렸다.

“너는?”

나는 ‘너 혹시 그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니지?’라는 뜻으로 물었다.

“보다시피.”

‘보다시피?’ 보다시피 하나도 잊지 않고 똑똑하게 기억한다는 뜻인가?

“네가 빵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

‘네가 작가가 될 줄 알았어’라는 말로 들렸을까? 왜 모든 대화가 그날을 향해 가고 있는 거지?

“갑자기 빵 만드는 게 좋아졌어.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도 있고. 그래서 시작했어.”

“그렇구나. 나도 다음 주에 북카페 오픈해. 읍에.”

“그래? 재료 사러 가면서 준비하고 있는 건 봤어. 네가 하는 거였구나.”

“놀러 와.” (아니, 오지 마.)

“당연히 가야지. 뭐 필요한 건 없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너만 안 오면 돼.)

“글쎄, 나도 장사는 처음이라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주스세트만 아니면 돼.)

“그래? 그렇겠다. 오픈하는 날 가서 도와줄까?”

“괜찮아. 가족들이 와서 도와주기로 했어.”(가족들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알아도 안 올 거다.)

나는 가게 오픈 준비를 해야 한다며 서둘러 일어났다. 그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제야 숨을 한번 크게 내쉬며 가게를 제대로 다시 돌아보았다. 테이블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왜 지금까지 못 봤지? 테이블뿐 아니라 카운터에는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여러 명 트레이를 들고 줄을 서 있었고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앳된 남자 한 명이 계산을 하고 있었다. 뭐야, 빵집 장사 잘 되네. 이 시골에 빵집이 이렇게 잘 된다고? 다 어디서 나타난 사람들이야? 자세히 보니 옆 창으로 차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슈퍼 아주머니에게 이 장면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 근방 정보의 허브인 줄 알았더니 바로 옆 동네 소식에도 그렇게 깜깜한 곳이었다. 내가 다방 차린다는 소문은 벌써 다 퍼졌겠지. 나쁜 소문일수록 빨리 도는 법이다. 나는 유진이가 싸준 빵들을 들고 읍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뭔가 몽글몽글 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다. ‘짜식, 기특하네. 할아버지 밑에서 잘 자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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