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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Dec 14. 2021

아이를 데리고 매일 80km를 달립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집에서 40km 떨어진 합천의 작은 학교다. 면소재지에 있지만 문구점은커녕 식당도 하나 없는 시골에 자리 잡은 전교생 30명도 되지 않는 학교다.


2016년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는 이보다 더 적은 학생 수에 학년도 5개 밖에 없었다. 이 먼 시골 마을, 시골 학교에 우리 아이를 전학시켰다.


그 전 해인 2015년, 이안이는 학생 수가 천 명이 넘는 학교에 입학했다. 유난히 키가 작아 가방을 메면 가방이 더 커 보이는 이 어린 아이가 아침마다 개미떼처럼 줄지어 이동하는 학생들 사이에 묻혀 등교하는 것을 보면 아이의 인생 무게가 저 가방만큼이나 크고 무거워 보였다.

모든 엄마와 마찬가지로 나의 바람은 이 조그마한 아이가 혼자서 거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뿐이었다.


이안이의 반 학생 수는 정확히 30명이었다. 나도 그 전 해에 똑같이 1학년 30명을 가르쳤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이 교실에서 일어날지, 선생님이 이 아이들을 감당하기 얼마나 힘겨울지 잘 안다. 하지만 내가 학부모가 되고 나니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우리 집에서는 금쪽같은 아이지만 학교 가면 30명 중의 한 명일뿐이다. 유난히 말썽꾸러기이거나 더 심하여 골칫덩이로 여겨질 아이가 한 두명만 있어도 교사의 관심은 그 아이에게 상당 부분 쏠린다. 그러다 보니 다인수학급에서 교사에게 이름이 자주 불린다는 것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경우일 때가 많다. 너무 잘해서 이름이 불리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그저 선생님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아이만 아니길 바랐다.


학교의 가장 큰 화두를 물으면 고민 없이 '학교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1학년 담임을 해봤기 때문에 1학년 학부모들이 얼마나 학교폭력에 민감한지 잘 알고 있다. 연일 뉴스에서 심각한 학교폭력 사태를 다루고 있어서 부모들은 혹시 내 아이가 부당한 대우나 폭력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도 이해하는 것이 1학년임에도 이미 폭력성을 가진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와 또 별개로 아이들과의 사소한 다툼도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며 일을 키우는 부모들도 많다. 모두 다 잠정적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어 작은 문제는 크게 만들고 큰 문제는 감추려 드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다. 부연하자면, 아이들끼리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학교까지 찾아와 크게 일 키우는 부모, 아이의 폭력성이 너무 걱정되어 상담을 해보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이미 손을 놓았다는 식으로 대하는 부모들이 한 반에 섞여 있었다.


이안이는 폭력성이 있거나 힘이 센 아이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척 힘이 센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먼저 시비는 안 걸어도 시비를 걸어온 아이를 피하지도 않는다. 나는 학부모이면서 교사이기 때문에 학교폭력 문제에 휘말리면 곤란해 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떠나서 그런 문제로 다른 학부모와 만나는 것이 끔찍히 싫었다. 그래서 등교하는 아이를 붙들고 매일 같이 다짐을 받았다.


"학교에서 싸우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집에서 쫓겨나요."


밑도 끝도 없이 싸우면 쫓겨난다니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겠지만 단순하고 즉흥적인 아들을 키우다 보니 조곤조곤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머리에 확 박히는 그런 한 방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사용한 자구책이었다. 맞고 오면 마음이 아프지만 때리고 오면 머리가 아파진다. 나는 둘 다 너무 싫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한 학기가 채 지나기 전에 두어 번 쫓겨났다.


"엄마, 얼마 동안 나가 있어요?"


"십 분."


처음 싸우고 온 날, 상대방이 게임 규칙을 안 지켜서 화가 나 있었는데 시비도 먼저 걸어왔다고는 했지만 싸운 건 싸운 것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아이의 눈빛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문 밖으로 내보냈다. 이렇게 해서라도 제발 앞으로 남은 날들 동안 싸움을 피했으면 했다.


어느 날은 아이의 알림장에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기'가 적혀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1학년 담임을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말을 그냥 썼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누가 싸웠어?"


"네."


"누가?"


"제가요."


지나치게 순진하고 솔직한 아이는 또 쫓겨났다. 이쯤 되자 나는 이안이가 학교에서 결코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가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올 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같은 반 아이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나와 친한 사이여서 별생각 없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돌덩이를 얹었다.


"우리 딸 알림장에 사이좋게 지내기라는 말이 있어서 누가 싸웠냐고 물었더니 이안이가 싸웠대. 알고 있었어?"


순간 나는 알림장을 보고 그날 학교 일을 짐작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들의 기막힌 눈치를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이 엄마 말고도 몇 명의 엄마가 우리 아이 이름을 전해 들었을까. 

내가 1학년 담임할 때 어떤 엄마가 '내 아이에 대한 소문이 아파트 전체에 퍼져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을 통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해 들은 엄마들이 그것을 티타임의 간식거리로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우리 아이 이름을 '하이안'으로 지은 것을 후회했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억되고 싶진 않았다.


2학년이 되었을 때, 아이의 이름은 더 빛(?)을 발했다. 궁금하면 만져봐야 하고, 높은 곳은 올라가 봐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은 혼이 나더라도 해봐야 하는 아이는 좁은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이 '착한 아이'가 되는 학교에는 맞지 않았다. 공개수업이 있던 날 학교로 찾아갔던 남편은 그날 수업에서 우리 아이의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리는 광경을 보고 왔다. 안 그래도 얌전하지 못한 아이가 아빠가 오자 더 신이 나서 자꾸 들썩거렸던 모양이다. 얼마나 심했으면 수업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남편에게 이안이 이름을 너무 많이 불러서 미안하다고까지 했단다. 부모님이 안 오시는 줄 알았다나...


3월의 끝에 나는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이안이를 합천으로 전학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 학교에 더 있다가는 진짜 우리 아이가 문제아가 될 것 같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이안이는 결코 문제아이가 아니다. 더 이상 아이에게 맞지 않는 환경, 맞지 않는 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친구와 조금 싸웠다고 문 밖으로 내쫓아야만 하는 엄마가 되기도 싫었다.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아이를 내가 있는 학교로 전학시켰다. 걸어서 다니던 학교에서 왕복 80km가 넘는 등하굣길을 감내해야 하지만 더 이상 아이의 행복을 '처해진 상황'에 복불복으로 맡기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학교에서 이안이는 자기 빛깔을 찾았다.

이곳에서 아이는 산만한 아이가 아니라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끼가 넘치는 아이'가 되었다. 아무리 넘쳐흘러도 선생님들은 '이안스럽다'라는 말을 만들어 내며 웃고 품어주었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평가는 완전히 달랐다. 먼 통학거리에 아이는 매일 곯아떨어져도 '나는 참 잘했다, 참 잘했다'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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