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면서 아빠의 음악공작소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예전에 아빠는 주로 베O벤, 모O르트(고객 명단은 개인정보라 밝히기가 어려운 점 이해해 주길 바란다) 같은 고전주의 음악가를 주로 관리했다. 우리가 영감을 주기로 주목한 대상을 ‘루키’라고 하는데 루키들이 성공을 이룰수록 공작소의 명예도 높아진다. 아빠는 클래식 공작으로 꽤 유명세를 탔으나 이제 클래식보다는 대중음악이나 OST 혹은 가끔 동요도 담당한다. 아빠가 종목을 바꾼 이유는 음악이 예전처럼 귀족이나 소수의 천재들만의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까지 널리 퍼지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 클래식보다는 대중적인 음악 영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면서 공작소가 매우 바빠졌다. 아빠는 특히 골방에서 홀로 음악의 꿈을 키우는 방구석 음악인들을 돕고 싶어 했고 그 덕분에 나는 그들의 레퍼토리인 사랑, 이별, 그리움과 관련된 장면이나 소리, 감정을 주로 채집하러 다닌다. 가끔 동요 작업을 위해 방귀소리, 풀벌레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채집할 때도 있다. 난 꽤 유능한 베이비공작임을 자타가 인정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이별 장면을 쫓아다니거나 방귀소리를 채집하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아직은 훨씬 더 좋다. 그래서 여전히 베이비가 붙은 건지도 모르지만.
음악이 다양해지면서 이곳의 음악공작소들도 매우 다양해졌다. 공작소마다 수련하는 베이비공작들도 많아지고 장르에 따라 그들의 개성도 매우 강했다. 최근에 생겨난 랩음악공작소 베이비들은 항상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흘러내릴 것 같은 바지를 입고서 구시렁구시렁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다닌다. 어디 묶여 있다 나왔는지 커다란 체인을 목에 감고서 밑도 끝도 없이 스웩을 날리고 다닌다. 그들 중 허리를 똑바로 펴고 다니는 애들은 아무도 없다. 그들을 만나면 나도 똑같은 포즈로 한쪽 팔을 흔들며 이야기를 한다. 정말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그들보다 더 신기한 친구는 락과 메탈음악을 하는 베이비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길게 기르고 총 천연색으로 염색하고 다닌다. 신이 나면 긴 머리를 뱅뱅 돌리기도 하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하늘을 찌를듯한 고음을 발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야만 영감이 잘 만들어진다고 하니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음악이 있고 다양한 공작소가 생겨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클래식음악 베이비공작들은 그들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닌다. 그 베이비들은 쌍둥이 자매인데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세상의 모든 우아함을 가져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식하고 다닌다. 그들은 쌍둥이 아니라고 할까 봐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행동을 하고 말도 도돌이표처럼 한쪽이 말하고 나면 다른 한쪽이 똑같이 따라 했다. 나는 그 쌍둥이들과 직접 말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가끔 랩 하는 베이비공작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본 적은 있다. 그들은 이상하게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헤이 요, 왓썹”
보통은 이런 식으로 랩베이비가 먼저 말을 건다. 말을 거는 건지 시비를 거는 건지는 애매하다.
“좀 비켜줄래?”
“좀 비켜줄래?”
“와우, 둘이 똑같이 생겼에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데칼코마니마니. 우리 마니마니 친하게 지내요요요!”
“똑같지 않아.”
“그래 똑같지 않아.”
“나도 똑같은 것들이 있쥐. 내 초롱초롱 두 눈도 트윈스, 코가 막혀 기가 막혀 콧구멍도 트윈스, 매력 탱탱 엉덩이 두 짝도 트윈스, 모두가 트윈스 하지만 난 싱글 외로운 싱글, 싱글싱글 웃지만 서글픈 싱글. 헤이 요 베이비 쇼 미더 머니, 쇼 미 유어 하트”
랩베이비가 혼자 신이 나서 쌍둥이를 빙빙 돌며 랩을 하다가 마지막에 손하트를 날리는 동안 클래식베이비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꺼져!”
이번에는 쌍둥이들이 똑같이 외쳤다. 랩베이비는 놀라는 척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여전히 이상한 백스텝으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고 필과 나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에 경련이 날 뻔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쌍둥이들이 우리만 보면 입을 삐죽거리며 노려보고 마치 거지 깽깽이 보듯 한 게. 매우 억울했지만 우리도 그때 일이 자꾸 생각나 그들의 눈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자신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랩이나 헤비메탈, 클래식이 다 같이 음악으로 묶인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클래식베이비공작들은 그들의 분위기에 맞게 주로 숲 속에서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나 해 질 녘 동물들의 서글픈 울음소리 같은 것을 채집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아침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담기도 했다. 세상에서 제일 고상하고 한가해 보이는 베이비들 같지만 가끔은 노을 지는 소리나 무지개가 떴다 사라지는 소리를 채집하느라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하는 것을 볼 때도 있다. 사계를 담는다고 천둥 번개 치는 여름 밤에 밖에 서 있거나 추운 겨울 눈밭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래도 방귀소리나 이상한 잠꼬대를 채집하러 다니는 나보다는 좀 더 있어 보인다. 나는 클래식베이비들한테 방귀소리를 부탁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며 큭큭 웃었다. 벌레 씹는 표정은? 악어 고기는? 내가 이런 상상하고 있는 것을 그 애들이 안다면 아마도 벌레 보듯 경멸하는 표정 하나는 제대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아함이 몸에 밴 클래식베이비공작들과는 전혀 다른 우리들의 대장 린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그들과 아주 잘 지냈다. 아니 어느 날부터 린이 그들을 따라다녔다는 게 정확할 지 모른다. 린의 말로는 클래식 음악과 미술은 통하는 데가 있다고 하는데 같이 일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들과 같이 있을 때의 린은 우리와 함께 있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일단 말꼬리처럼 높게 묶어 다니던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다. 그리고 쌍둥이들과 비슷한 원피스를 입고 그들처럼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닌다. 얼굴은 하얗게 화장하고 볼에는 볼터치도 한다. 옆사람을 사정없이 두들겨 가며 깔깔깔 웃어대던 애가 입을 가리고 호호거린다. 무엇보다 어이가 없는 건 그럴 땐 우리를 보고도 아는 척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을 내리깔고 한번 흘낏 쳐다보고는 쌍둥이들과 끝도 없이 수다를 떤다. 키도 작은 애가 익숙하지도 않은 힐을 신고 긴 머리를 두 손으로 번갈아 넘겨 가며 턱을 쳐들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재수가 왕 없다. 나는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린이 우리를 버리고 쌍둥이들과 더 친한 것이 속 시원하면서도 조금은 기분이 나빴다. 린이 없는 삼총사는, 아니 우리 둘은 그냥 그렇다. 재미는 있는데 막 그렇게 재미가 없다. 같이 있으면 괴롭고 없으면 허전해지는 그런 이상한 애가 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