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다. 아빠가 뭘 또 만드신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고양이보다 조용히 문을 빠져나간다.
‘뎅그렁’
‘젠장, 저 종 내가 진짜 떼어버리고 만다!’
“준아”
역시 아빠가 나를 부른다.
“왜요?”
나는 알면서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몰라요, 모른다고요. 그만 좀 시키라고요.
“하품 소리 3개만 담아 줄래?”
“아, 진짜. 오늘 저 바쁘단 말이에요. 하암, 하암, 하아아아품. 됐죠?”
“네 소리는 안돼. 우리 소리는 안 담긴다고.”
아빠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신다. 저 표정만으로 나는 또다시 꼬리를 내리고 만다. 참 모르겠다. 아빠의 저 표정엔 마법이라도 걸려 있나 보다.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는.
“알았어요. 하품 소리만 담아 오면 되죠? 더 이상은 시키지 마요.”
이번에 아빠는 자장가라도 만드시나 보다. 뭐, 사실 하품소리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과제이긴 하다. 지난번에는 재미있는 동요를 만든다고 방귀소리를 담아가기도 했다. 소리가 재미있을수록 노래가 잘 만들어진다고 아빠가 마음에 들어 할 때까지 몇 번이나 방귀소리를 채집했다. 그뿐인가, 또 그 앞에는 무서운 영화에 들어갈 음악을 만든다고 악몽 꾸는 사람의 잠꼬대를 담아가기도 했다. 그때 난 내 단짝 필이를 조르고 졸라 겨우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 일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겹다. 나는 필이를 침대에 눕혀 놓고 밤새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필이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도통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를 읽던 내가 오들오들 떨며 한동안 화장실도 못 갔다. 다행히 필이는 그날 밤 내가 들려준 이야기보다 훨씬 무서운 것을 꿈에서 보았고 최상급 품질의 잠꼬대를 했다. 채집 항아리를 열어 놓고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내가 필이의 잠꼬대 소리에 그보다 더 크게 소리 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절로 진저리가 쳐지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아빠는 음악 만드는 일을 한다. 정확히는 음악을 만들어 인간 세상 누군가의 머릿속에 영감으로 넣어 주는 일을 한다. 보통 그 사람이 자는 동안 꿈에서 선율을 들려주는데 예민한 사람은 일어나자마자 기억해서 곡을 쓰기도 하고 조금 둔한 사람은 길을 가다가 혹은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떠올리기도 한다. 아빠는 그 사람이 곡을 완성할 때까지 한 번에 쏟아붓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영감을 흘려 넣어준다. 세상의 대부분 음악은 우리 같이 영감을 만들어 내는 존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곳을 영감공작소라고 부르고 아빠처럼 음악을 만드는 사람을 음악공작이라고 부른다. 요정이나 천사 같이 듣기 좋은 명칭도 있는데 왜 우리를 공작소니 공작단이라고 부르는지 참 이해가 안 간다. 심지어 공작이 되기 전 우리 같이 채집과 수련을 하는 이들은 베이비공작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다 자랐는데 베이비라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저 먼 마을에 이름을 지어 주는 공작소가 있다고 하는데 이 이름이 최선이었는지 만나면 꼭 한번 묻고 싶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영감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넣어 주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감이 어디서 온 줄도 모른 채 그저 ‘유레카’만 외친다. 그 모든 것들에 나의 이 힘들고 지겨운 수고가 있는 줄 꿈에도 모르고 자신이 잘나서 곡을 쓰는 줄 안다. 아니, 머리에 벼락 맞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그런 기가 막힌 멜로디가 어디서 나오겠냐고, 생각을 좀 해보시라고요.
나는 채집 항아리를 들고 털레털레 집 밖으로 나왔다. 뭐, 하품소리쯤이야 하루 만에도 다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하나는 필이한테서 받을 것이다. 그 녀석은 ‘책 읽자’ 한 마디에도 하품부터 할 거다. 아 참, 지난번처럼 무서운 이야기는 안 되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랫마을 할머니를 찾아가 볼까? 그 할머니는 매일 집 앞 테라스 흔들의자에 앉아 고양이를 안고 잠을 잔다. 할머니가 흔들의자에 앉기를 기다리면 분명 잠들기 전 하품을 하실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음, 린에게 부탁해 볼까? 하품 정도는 괜찮겠지? 아니면 지난번처럼 무서운 얼굴로 화부터 내려나? 내가 린의 반응을 걱정하는 이유는 휴, 린은 정말 무엇이든 제멋대로여서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여자애이기 때문이다. 그 애는 필이와 나를 마치 하인처럼 부리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 번을 하지 않는다. 그래놓고는 뭐든 필요할 때 우리부터 찾는다. 린의 집은 그림공작소이고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을 한다. 린도 나처럼 베이비공작으로 풍경이나 표정, 특별한 장면들을 채집하러 나올 때가 많다. 나는 조그마한 항아리에 소리나 감정 등을 채집하지만 린은 둘둘 말린 두루마리를 펼쳐 원하는 것을 담는다. 훌륭한 공작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채집과정을 반드시 많이 거쳐가야 하는데 사실 린의 채집과제도 나처럼 어려울 때가 많다.
“이번엔 뭔데?”
린이 울상을 지으며 불쌍한 고양이 눈으로 바라볼 때는 한 가지 이유 밖에 없다.
“아니야. 혼자서 할 수 있어.”
또 그런다. 그냥 말을 해. 안 들어주면 결국 삐칠 거면서 늘 처음엔 이런 식이다. 결국 우리가 애원하듯이 과제를 알아내고 해결방법까지 찾게 만든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은 자동 생략인가.
“환희와 절망이 교차된 표정.”
“그게 뭔데?”
필이가 되묻는다.
“그게 다야.”
그럼 이제 내가 문제를 풀 차례다. 필이는 못하는 일이 없지만 못하는 생각은 많다. 종종 이렇게 난이도가 높은 과제들은 이곳에서 다 찾을 수 없어 우리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 원하는 것들을 담아 온다. 우리의 세계는 시공간이 열려 있어 가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필요한 장면들을 얻어올 때도 있다. 이번에 우리는 2년 전 열린 올림픽 현장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생애 마지막 역도 경기에 출전한 한 선수가 있었다. 그가 세계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순간 병석에 누운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려다 부고 문자를 보게 된다. 환희로 빛나던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깊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이 너무도 짧아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아, 정말 이런 기가 막힌 상황포착은 우리 같은 베테랑 베이비들 아니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장담한다. 이번에도 린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대단한 자존심을 가진 아이다. 다시는 부탁 들어주나 봐라 다짐을 하고 또 하지만 일단 성공하고 나면 내 일처럼 너무 기쁘다. 얄미운 린이 그걸 알고 나를 부려 먹는 게 분명하다. 아무튼 어려운 과제 외 보통의 사소한 것들은 이곳에서 우리끼리 먼저 해결한다. 나는 린을 위해 벌레 씹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진짜 벌레였다. 가짜는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 갈증을 표현하기 위해 사흘간 물을 먹지 않고 소금으로만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우웩. 지금 생각해도 현기증이 난다. 차라리 사막을 사흘 동안 걷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헌신에 비해 린은 매우 까다롭게 내 부탁을 고른다. 문제의 그 방귀소리를 부탁했다가 100미터는 족히 도망쳐야 했다. 나는 벌레도 먹어줬는데 매일 뀌는 방귀 하나 도와주지 못하다니, 필이와 나는 ‘기집애, 기집애’ 하면서 한참 투덜거렸다. 우리에 비해 필이는 좀 더 쉬운 일을 한다. 필이는 요리공작소의 베이비공작이다. 그곳에서는 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의 요리를 담당하는데 요즘에는 한식과 결합하여 퓨전요리를 자주 한다. 필이는 요리 연구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채집해 가는 일을 한다. 덕분에 우리는 필이를 돕는다는 이유로 세계 각지를 다니며 여행했다. 원양어선에 얹혀 타기도 하고 깊은 바다에 잠수해 해산물이나 물고기들을 채집해 오기도 했다. 필이는 재료가 신선한지 확인한다며 꼭 그 자리에서 먹어보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채소는 눈으로만 확인하고 과일은 오는 길에 반이 사라지고 없다. 필이가 가지고 간 재료로 요리공작인 필의 부모님은 이리저리 섞어 맛과 향을 낸다. 필의 과제는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가끔 상어알이나 악어고기를 구해가야 할 때면 조금 오래 걸리기도 한다. 사실 어렵다고 해도 바다 깊이 잠수하거나 늪에서 악어 한 마리 밧줄로 묶어 오는 일은 우리에게 신나는 모험일 뿐이다. 그럴 때 린은 오지 말라 해도 굳이 따라와서는 ‘악, 악’ 소리만 지른다. 아무리 말려도 어느새 우리 옆에 바짝 붙어서는 내 팔을 꽉 잡고 있다. 평소 우리한테 하는 걸 봐서는 한 손으로 악어도 잡을 것 같은데 어울리지 않게 약한 척을 하며 내 뒤에 숨는다. 정말 정말 이상한 애다. 그에 비해 필은 정말 좋은 친구다. 녀석은 마음도 넓고 말도 많지 않은데 항상 헤헤 웃으며 부탁한 것을 다 들어준다. 그렇게 우리 셋은 늘 함께 다녔다. 린의 기분 맞추기가 조금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필이 하고 둘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덜 심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