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영감공작소 3

by 최여름

아빠가 이번에는 이별하는 연인들의 슬픔을 담아 오라고 하셨다. 그거야 식은 죽 먹기다. 세상에 내려가면 이별하는 사람 천지다. 아빠는 특별히 후회와 슬픔이 섞인 이별을 찾아와 달라고 했다. 후회와 슬픔이라... 나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을 지켜봐 왔는데 후회와 슬픔 없는 이별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거기에 미움과 분노가 섞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게 어렵다. 미우니까 이별을 하지 밉지도 않은데 왜 헤어져? 바람이라도 피웠나? 아니지, 그런 이별은 질이 나쁘다. 분노, 미움, 원망 등등 잡다한 것들이 많이 섞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생겼으면 밉지 않아도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

린이 말했다.

“그럼 슬픔도 없지.”

“아니면 서로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가 한쪽에 다른 연인이 생기면?”

가끔 린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쌍둥이들과 다니기 시작한 후로 뭔가가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오랫동안 친구와 연인 그 중간쯤으로 지내다가 여자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긴 케이스를 찾았다. 역시 친구인 줄 알았던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고 깊은 후회와 함께 그녀를 놓아주었다. 정말 바보 같은 남자였다. 누가 봐도 여자를 좋아하는데 자신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결국 다른 이에게 보내주고 말았다. 그래놓고 울긴 왜 우는지. 다들 사랑 앞에서는 바보가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사랑이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매일 붙어 다니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몰라 오해하고 다투고 돌아선다. 어쨌든 그 과정 덕분에 수많은 사랑과 이별 노래가 탄생하기는 했다.

“아빠, 루키는 어떻게 정해지는 거예요?”

인간세계에서 돌아온 나는 아빠의 작업실에서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물었다. 아빠는 지금 방구석에서 홀로 음악을 하고 있는 한 청년을 지켜보고 있다.

“결국은 절실함이지.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영감도 기회도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그게 다예요?”

“아니. 일단 재능도 필요하겠지? 끈기도 있어야 되고 용기도 있어야 되고.”

“영감을 얻었는데 왜 용기가 필요해요?”

“우리가 영감을 부어주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간절한 마음은 있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이야. 아무리 좋은 영감을 흘려보내도 그걸 들고 세상 밖으로 나가질 못해.”

“왜요? 아빠의 작품이 성공 못한 적은 거의 없잖아요?”

“영감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거지. 용기 없는 자에게 꿈은 신기루와 같은 거야. 꿈꿀 때는 행복하지만 결국 잡을 수는 없거든.”

“정말 바보 같아요. 가서 말해줄 수도 없고.”

“좋은 곡을 써 놓고도 다음 날 지워버리는 음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때로 어떤 이들에게 세상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힘든 일일 수도 있어.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것까지 도와줄 수는 없어.”

“루키를 포기하고 바꿀 때도 있어요?”

“아주 가끔. 루키를 고를 때 열 명 중 한두 명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랜덤으로 뽑아.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져야 하니까. 하지만 역시 그럴 경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 그들은 영감이 떠올라도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몰라 그냥 보내버리거든. 그럼 우리는 그 영감을 회수해 필요한 다른 이에게 다시 부어줘. 우리가 영감을 한꺼번에 붓지 않고 조금씩 흘려보내는 이유야. 아주 적은 양이라도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에게 다음 것도 흘러가는 법이지.”

아직 시간이 이른데도 아빠는 작업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 왜 바로 영감을 부어주지 않아요? 저 사람 주려고 만든 거 아니에요?”

“맞아. 근데 아직 때가 안 됐어.”

“무슨 때요? 이미 가수가 되기에는 좀 늦은 것 같은데요?”

“저 사람은 슬픈 발라드가 어울리는 사람이야. 그런데 아직은 감성이 살짝 부족해. 진짜 사랑을 해보지 못했거든. 아마 지금 있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조금 달라지겠지?”

“둘이 헤어져요? 아빠는 미래도 볼 수 있어요?”

“하하. 미래를 볼 수는 없지만 예상은 가능하지. 남자를 보는 여자의 눈빛이 슬픔으로 가득하잖아. 이미 여자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남자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

“왜요? 사랑하면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알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항상 그게 궁금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는데 이별할 때에야 서로 깨닫는다. 상대방의 마음도, 자신의 마음도.

“그걸 바로 사랑의 오만함이라고 하는 거야. 상대방이 나를 더 사랑하면 생기는 오만. 영원히 날 사랑할 거라고 생각하는 착각. 그래서 이별 후에 깨닫는 사랑이 많아.”

“후회와 슬픔의 이별요?”

“그렇지. 저 남자도 한동안 크게 앓고 나면 감정의 깊이가 달라질 거야. 진짜 노래는 그때 시작되는 거지.”

나는 이럴 때 아빠가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는 실력 있는 음악공작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이해한다. 급해도 서두르지 않고 한번 정한 루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준다. 나는 사실 아빠처럼 훌륭한 음악공작이 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일부러 공작이 되는 일 따위 관심이 없는 척한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봐도 설레지 않고 이별 장면에서도 슬프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감정들을 채집해 왔지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사랑 때문에 설레고, 기쁘고, 아프고, 슬프고…. 이런 감정들이 내게도 생겨날 것 같지가 않다. 감정이 없는 음악이라니 휴…. 이러다가 랩이나 헤비메탈 쪽으로 진로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헤이 요! 왓 썹! 거울 보고 흉내를 내고 있는 내가 어색해서 웃음이 절로 난다. 린이 옆에 있었다면 또 내 등을 마구 때리며 깔깔깔깔 웃어대겠지? 필이는 무조건 엄지 척을 할 테고. 뭘 해도 소중한 나의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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