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은 발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걸음이 무거웠다. 나는 린을 대신해 내 머리를 몇 번이고 세게 때렸다. 린이 장난처럼 자꾸 때리는 게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차라리 몇 대 맞는 것이 백 배, 천 배는 나아 보였다. 그랬다면 내일은 다시 린을 전처럼 볼 수 있을 텐데 이건 뭐 맞는 것보다 더 어려운 벌이었다. 린과 다시 이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강하고 슬픈 예감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낯선 손님이 와 있었다. 아빠가 문학공작소에서 온 베이비공작이라며 인사를 시켰다. 그는 짙은 블랙의 세미정장을 입고 옷과 같은 색의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두껍고 오래되어 보이는 노트를 품에 안고 안경을 한번 쓸어 올리며 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살짝 긴장했다. 안경 너머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푸른빛에서 갈색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공작들은 사람들처럼 나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는 눈동자의 색깔로 공작과 베이비공작을 구분했다. 아주 어릴 때는 노란색이었다가 조금 자라면 푸른색으로 변한다. 베이비공작으로 일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다 진짜 공작이 되는 때가 되면 푸른빛이 갈색으로 바뀐다. 한 번에 갑자기 변하는 사람도 있고 저 문학베이비처럼 서서히 바뀌는 경우도 있다. 필이와 린, 그리고 나는 모두 푸른빛이다. 잘난 척하는 클래식 쌍둥이들도 아직 푸른색이고 랩베이비, 메탈베이비 모두 푸른색이다. 나는 가끔 공작일을 할 수 있는 갈색 눈동자를 갖고 싶기도 한데 어떻게 해야 갈색으로 바뀔 수 있는지는 모른다. 아빠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라며 방법을 알려 주지 않는다.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많은 소리를 수집하고 많은 감정들을 경험해 볼수록 빨리 공작이 될 수 있다는 거야. 많이 아플수록 더 빨리 자라기도 하고.”
“아파요? 공작들이 아플 수도 있어요?”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병에 걸리는 거지. 그 병을 앓고 나면 마음의 키가 한 뼘은 더 자라게 돼.”
“아빠도 그랬어요?”
“글쎄다. 아마도? 하하. 그러니까 게으름 부리지 말고 열심히 소리를 찾고 진심으로 감정을 수집해 와. 잔머리 쓰지 말고.”
문학베이비의 눈빛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진심으로 감정을 수집하라는 말이 떠오르자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녀석의 눈빛에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당분간 우리와 같이 일하게 될 거야. 친하게 지내.”
당분간이라고? 친하게 지내라고? 나는 절대로 저런 녀석이랑은 친하게 지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갑자기 필이가 보고 싶다. 내 친구는 린과 필, 그리고 나 이렇게 삼총사다. 더 이상은 필요 없다.
아빠는 요즘 가사와 곡을 함께 쓰는 음악가들이 많아서 우리도 그에 맞게 대비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아빠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그 방구석 음악인을 계속 돕고 있는데 이 노래가 그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사람은 지금 린과 나 사이를 이렇게 꼬이게 만든 인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걸로도 부족해 이 샌님같이 생긴 애까지 내 옆에 혹으로 붙이다니. 나는 괜히 부아가 났다.
“안녕? 난 루라고 해.”
루인지 뭔지 하는 그 녀석이 한번 더 뿔테 안경을 쓸어 올리고는 어른처럼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상대의 손을 잡고서 대충 흔들다 빨리 손을 뗐다. 필이도, 린도 우리는 절대 악수를 하지 않는다. 그게 친구라는 증거다. 루와 친구가 될 수 없음을 또다시 확신했다. 나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루를 계속 지켜보았다. 루의 뿔테 안경이 자꾸 흘러내려 신경이 쓰였다. 안경을 바짝 올리면 똑똑해 보이는 것 같다가도 콧잔등 아래까지 안경이 흘러내리면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얼굴은 뽀얗고 코는 오뚝했으며 말끝마다 눈웃음을 지었다. 기분 나쁘게 지적이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클래식베이비들도 저런 녀석한테는 태도가 달라지겠지? 나는 랩베이비를 향해 “꺼져”라고 외치던 장면이 떠올라 쿡 웃음을 터뜨렸다. 루는 그런 날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아빠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작업실로 들어갔다. 저 녀석에게 꼭 작업실까지 보여 줘야 하는 거야? 나는 잔뜩 경계하며 그들을 따라 함께 작업실로 들어갔다.
각 공작단마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다르고 작업실의 구조도 달랐다. 특히나 요즘은 공작단마다 경쟁도 심해져서 비슷한 장르끼리는 작업실을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각 공작소의 입구에는 금 테두리를 두른 칠판 모양의 명예의 전당이 있는데 그 공작소에서 배출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 공작소는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화부흥기에 처음 생겨나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름 이곳에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아빠는 시대에 따라 음악도 변한다며 전통보다는 변화를 선택했다. 그래서 클래식은 다른 클래식공작단에 맡기고 지금은 대중가수들을 주로 돕고 있다. 명예의 전당에는 오디션 우승자, 빌보드 11주 연속 1위 가수, 구독자 천만 이상 음악 유튜버뿐만 아니라 영화보다 유명해진 OST 작곡가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적히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아예 기획사를 차리고 신인 가수를 배출하는 가수 출신 CEO의 이름도 있었다.
아빠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항아리 다섯 개가 먼저 보이고 항아리와 연결된 형형색색의 투명한 관들이 뿜는 빛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관들 끝에는 건반과 드럼, 기타에서부터 바이올린, 플룻 등 각종 다양한 악기들이 연결되어 있다. 작업실 한쪽으로는 또 다른 창고가 있는데 그곳에는 아빠가 만든 음악들이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 크고 높은 선반 가득 채워져 있다. 내가 채집한 소리와 감정들은 일단 큰 항아리에 부어진다. 그 후 아빠는 직접 만든 몇 가지 향을 첨가해 항아리의 뚜껑을 닫고 3일에서 일주일 정도 숙성시킨다. 그런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 진행되는데 여기서 공작과 베이비공작이 구분된다. 아빠는 숙성된 항아리의 뚜껑을 열고 깊은 숨을 몇 번이고 그 안에 불어넣는다. 아빠의 숨은 뜨거워진 심장을 거쳐 항아리에 채워지는데 항아리가 가득 차면 아름다운 불빛을 내며 관을 따라 이동한다. 관 끝까지 이동한 숨은 그 끝에 연결된 악기들을 통해 새로운 리듬과 운율로 음악을 만들어 낸다. 모든 음악은 항아리에 채워진 원재료의 품질과 공작이 불어넣은 숨에 따라 분위기와 수준이 결정되었다. 아빠는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선율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유리병에 담았고 때가 되면 그것을 인간의 꿈속에 조금씩 부었다. 베테랑 공작인 아빠에 비해 내 심장은 항아리에 충분한 숨을 불어넣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몇 번 시도해 본 적은 있었지만 관의 중간지점까지도 도달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심장의 온도에 따라 관의 색도 더 선명해지는데 내 심장의 온도는 여전히 어떤 색도 내지 못했다. 아빠는 조금만 더 하면 동요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 영원히 갈색 눈동자를 가지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저 재미없고 이상한 루의 눈빛을 보니 나는 더 조바심이 났다. 사실 어떻게 해서 갈색 빛을 갖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예술 장르마다 공작이 되는 방법이 달라서 물어봤자 의미도 없을 터였다. 괜히 우쭐대는 꼴만 보게 되겠지. 그건 더 싫다.
“와, 정말 멋있네요.”
루는 항아리 하나하나를 다 만져 보더니 악기 쪽으로 가서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저희는 여기에 각종 펜과 종이들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아빠는 큰 항아리에 루가 만든 가사도 같이 넣을 계획이라고 했다. 루는 숙성 중인 항아리를 열어 거기서 흘러나오는 감성을 따라 가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크고 두꺼운 노트에 깃털처럼 생긴 펜으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아빠와 나는 서너 걸음쯤 뒤로 물러나 신기한 듯 루를 지켜보았다. 루는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 모습이 왠지 웃겼지만 그의 작업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