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녀를 모두 희야엄마라고 불렀으나 희야라는 아이는 이 세상에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는지 있었다가 사라진 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희야는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나 개의 이름일 수도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하지만 그 고양이도, 개도 그녀 주변에는 없었다. 그녀는 늘 커다란 가방을 등에 지고 혼자서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다. 그러다 나를 이 산속 오두막으로 데려온 날부터는 한 달을 넘게 장사를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지만 내 입에서는 여름바람 같이 뜨거운 입김만 겨우 나왔다. 그녀도 나도 당황했지만 나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돈 몇 푼에 어머니를 잡지 못한 죄를 받아야 했고 멈춰버린 목소리는 그 죗값으로 적합했다. 희야엄마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대신 내가 해야 할 모든 행동과 생각까지 그녀가 대신 말해 주었다. 일어나서 밥을 먹으라고 했고 더운물에 몸을 씻으라고 했고 아무 생각 하지 말라는 말도 했다. 내 모든 행동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되었다. 자다가 몇 번씩 소리 지르며 일어나는 나를 그녀는 ‘괜찮아, 괜찮아.’ 하며 토닥거려 주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그녀는 진짜 내가 괜찮은 것처럼 말했고 나는 그녀의 말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한 달쯤 지나자 그녀는 더 이상 집에만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데리고 다시 그녀의 일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그녀의 말을 거부하는 나를 억지로 끌고 산을 내려갔다. 희야엄마를 따라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나 그녀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나를 희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희야엄마가 신경 쓰였으나 그녀는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야.”
어느 밤 숙소에서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녀가 그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깜빡거렸다.
“...라는 이름은 말이야, 부를 때 무조건 입꼬리를 올리게 돼. 마치 웃는 것처럼 말이야. 웃지 않고서는 그 이름을 부를 수가 없어.”
희야엄마의 말에서 진한 슬픔이 배여 나왔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차라리 말을 못 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내게는 어머니가 직접 지었다는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서 내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수화로 이야기하거나 혹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들고 있는 아무 물건이라도 그걸로 바닥 혹은 기둥 같은 곳을 툭툭 두 번 치면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툭툭툭 세 번. 그것이 우리만의 호칭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 이름을 희야엄마에게 알려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희야가 아니라 윤이라고. 사실 말이 아니라도 나는 그녀에게 충분히 내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내가 살던 그 가난한 집, 내 부모가 사라진 그 공간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에 싸였다. 나중에 나는 희야엄마가 나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이 그것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내가 아직 과거를 다시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열다섯, 혹은 스무 살은 되어야 과거의 나를 만날 용기가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나를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후에도 희야엄마와 함께 나는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손가락마다 굵은 반지를 끼고 목에는 진주목걸이를 두 줄이나 걸고서도 또 다른 주얼리를 손에 쥔 채 지갑을 꺼내는 소여사는 희야엄마의 단골이었다. 그녀는 내가 희야든 아니든 별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새로운 것은 없는지 물건들을 뒤적이며 계속 물었다. 나는 소여사 같은 사람에게 가난, 불행 같은 구질구질한 단어들은 절대 따라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집도 그 여자의 집일 것이다. 남의 것이 아니라 내 집이라면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와서 물건을 부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여사와 어머니가 같은 하늘 아래 있었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다른 세상이 따로따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희야엄마는 타고난 장사꾼 같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녀는 물건을 풀어놓기 전에 사람들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그래서 개는 찾으셨어요?, 할아버님은 몸이 좀 나아지셨어요? 아들이 시험을 그렇게 잘 봤다면서요?” 희야엄마는 메모 하나 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말을 다 기억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녀에게 다음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들은 희야엄마에게 이야기한 것들이 메아리가 되어 바람 타고 떠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를 더욱 신뢰했고 점점 더 내밀한 이야기까지 전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저녁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 희야엄마는 그제야 무거운 가방을 한가득 풀어놓았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어준 고마움에 혹은 빨리 집으로 가야 하는 조급함에 이것저것 살피지 않고 서둘러 물건을 골라 자리를 떠났다.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희야엄마는 마을마다 정해놓은 숙소로 가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른 장소로 떠났다. 때로 희야엄마는 팔다 만 물건을 챙겨 몇몇 집에 들러 문 앞에 두고 오기도 했다. 그런 집들은 밖에서 보아도 가난이 접착제처럼 질기게 덕지덕지 눌어붙은 집들이었다. 때로 그녀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서 문 앞에 두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장난감을 걸어 놓기도 하고 기침소리가 들리는 곳에는 영양제가 놓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나를 거둔 것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떠벌리지 않았고 사람들이 나를 희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대로 두었다. 나는 염치없게도 점점 그녀가 좋아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만약 처음부터 희야였다면’ 하는 생각이 스칠 때면 나는 의도적으로 옛집과 내 부모를 떠올렸다. 그 기억들은 내게 채찍과 같은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그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희야엄마와 다닌 지 삼 년쯤 지나 나는 그녀를 따라다니는 것보다 집을 지키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혼자 두는 것을 걱정해 이틀에 한 번씩은 오두막을 들렀고 나는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녀가 없는 동안 나는 집안을 정리하고 그녀가 사다 준 책으로 공부를 했다. 그녀는 나를 위해 오두막 앞 땅을 일구어 텃밭을 만들어 주고는 상추며 고추 등을 키워보도록 했다. 꽃모종을 사 와 텃밭 테두리에 꽃울타리를 치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밭일에 고추는 새끼손가락 보다 작게 열매를 맺다가 떨어졌고 상추는 배춧잎처럼 크고 억셌지만 그녀는 “네가 있어 이런 것도 안 사고 먹어 보네.” 라며 고마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