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언덕 위의 노래 1

Romans 8:15

by 최여름

그는 울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가 울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조용한 눈물은 폭포수처럼 넘치기도 했고 가랑비처럼 잦아들기도 했다. 밤이 되자 조용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빗물에 그대로 흘러내리는 모래성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언제 이곳에 오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기도 하고 한 달을 훌쩍 넘어오기도 했지만 때로는 한동안 매일 오기도 했다. 그는 항상 그 바위 위에 앉아 한참을 울다 가곤 했는데 그가 때로 눈물 없이도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오면 나는 삐그덕 거리는 낡은 문을 두 손으로 꽉 잡고 소리 안 나게 천천히 열고서 언덕으로 올라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앉아 있는 바위는 나무 숲이 끝나고 보드라운 풀밭이 넓게 펼쳐진 언덕 끝에 놓여 있었다. 바위에 올라 서면 그곳엔 평화로운 풀밭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위 아래는 바로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그가 선 곳은 거대한 도끼로 찍어 내린 듯 거칠게 잘려나간 산의 끝이었고 산의 능선을 따라 오르던 바람조차 중심을 잃고 휘어질 만큼 아찔한 곳이었다. 산 아래 흐르는 강으로 쏟아질 듯 잔뜩 기울어진 산의 무게를 꼿꼿이 지탱하며 선 거대한 바위의 정수리에 그는 민들레 씨처럼 어디로든 날려가길 기다리는 듯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그 바위는 몇 해 전 내가 서 있던 곳이었다. 나는 내 발을 감싸는 푸른 풀들 위를 천천히 걷다 그 끝의 차갑고 단단한 바위 위에 올라 오랫동안 서있곤 했다.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햇살은 풀의 한 올까지 부드럽게 비추고 꽃들은 풀들 사이로 작은 머리를 내밀어 낮에 뜬 별처럼 빛났다. 그 작은 생명들은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색깔을 달리하며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평온하고 따뜻했으며 찬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시 허공으로 돌아서면 그곳은 보이지 않는 죽음의 문이 잠금장치가 해제된 채 내 앞에 있었다. 한 발만 앞으로 더 디디면 저 아래 깊은 골짜기가 아니라 저 먼 하늘까지 날아갈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면 강렬한 태양은 더 눈부신 불을 뿜으며 온 하늘을 덮었고 나는 매일 지는 해를 따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노을이 아름답게 물든 어느 가을 저녁, 나는 또다시 그 문으로 한 발씩 내딛고 있었다. 마지막 한 발을 들어 오래 기다린 문턱을 넘는 순간 내 몸은 하늘로 날지도 깊은 어둠으로 처박히지도 않고 어떤 강하고 급한 힘에 의해 풀밭 쪽으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희야엄마가 내 몸의 반을 안은채 내 아래 누워 끙끙 소리를 앓고 있었다.

희야엄마는 산아래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만나는 신안이라는 도시에서 물건을 떼다가 산 너머 골짜기 열 가구 혹은 스무 가구를 넘지 않는 동네를 다니며 물건을 파는 행상이었다. 몇 년 전 그녀는 신안시에서 인주 마을로 넘어가는 길에서 쓰러진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그때 내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희야엄마를 만나기 전에 나는 신안시에서 한참 떨어진 소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다. 내 아버지는 가난했고 내 어머니는 어릴 때 앓은 병으로 목소리를 잃었다. 아니, 내 아버지를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가난은 그의 일부일 뿐이다. 아버지는 기타를 연주할 줄 알았고 쉰 소리가 섞여 나긴 했어도 노래를 즐겨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 어머니에게만은 유쾌하고 정 많은 음악가였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어머니는 종이에 시를 적어 아버지에게 건넸고 아버지는 그 시에 곡조를 붙였다. 어느 날은 외출할 때 문을 꼭 잠그고 나가달라는 쪽지에도 아버지는 음을 붙였다. 어머니는 웃었고 나는 그 엉터리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게 나의 가장 따뜻했던 기억이지만 그처럼 좋은 기억들은 대체로 순간에 불과했다. 내게 긴 기억으로 남은 것은 질기게 이어지던 가난에 대한 것들이다. 가난은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오래 살아도 도저히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우릴 향해 혀를 넘실거리는 어둡고 질긴 생명 같은 것이었고 점점 더 크게 자라 아버지를 무너뜨리고 그들의 노래를 멈추게 했다. 가난이 데려온 사람들은 우리의 세계에 함부로 들어와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부수었고 그들에게서 문을 지켜내지 못한 아버지는 술로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마시는 술만큼 눈물을 쏟아냈다. 그 어느 것도 칼춤을 추는 가난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졌다. 아버지는 자신을 놓아버린 대가로 병을 얻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가끔 머리도 옷도 다 헝클어지고 입술이나 뺨에 피를 닦아낸 자국을 그대로 남긴 채 집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그렇게 돌아와 제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가난한 저녁을 차려 주었다. 집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그들의 노래는 바싹 마른 잎처럼 부서져 사라졌고 그 빈자리에는 원망이 들어찼다. 사실 나는 정확히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지 못했다. 나는 너무 어렸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햇살이 유난히 반짝이던 늦가을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한 번도 주지 않던 용돈을 주며 돈을 다 쓸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했다. 나는 처음 내 손에 쥐어진 지폐 몇 장에 마음이 뺏겨 엄마의 슬픈 눈빛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벌로 오랫동안 마음속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한껏 달아오른 노을이 서쪽하늘을 마지막 불꽃처럼 가득 태우던 그 가을저녁에 그들은 그렇게 바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달콤한 사탕과 쫀득한 캐러멜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 그들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나를 떠나 버렸다. 나는 내 입에 들어간 달콤한 것들을 저주했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스스로 막아버렸다. 그날부터 나의 아이시절은 끝이 났다. 나는 언젠가 내 어머니를 따라가야 한다고 자신에게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려 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냥 나를 내버려 둠으로써 어머니를 데려간 바람이 나도 데려가기라 막연히 바라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어린 나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말은 우리가 살던 집이 우리의 집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이라는 자가 와서 다시 세를 놓으면 집이 나갈 수나 있을지 걱정했다. 집이 없는 달팽이는 차가운 바람도 따스한 햇살도 아프고 무서운 것이었다. 시청에 속한 어느 기관에서 나를 데리러 오기로 한 날 새벽에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그곳을 떠났다. 부모님이 사라진 집, 우리 집이 아니었던 우리 집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차가운 어둠 속으로 한 소녀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찾거나 붙잡아 주지 않았다. 그대로 나는 어디론가 계속 걸었고 죽을 때까지 계속 걸어가리라고 생각했다. 영혼마저 텅 비어 버린 채 해가 뜨고 별이 뜨는 것을 몇 번 반복하며 걷다가 결국 나는 쓰러졌고 그 길에서 희야엄마에게 발견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감공작소 8 (최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