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야엄마가 내 몸을 안고 풀밭으로 떨어져 나를 살려낸 그날도 나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여름의 작열하던 해가 힘을 잃고 가을이 슬며시 다가오던 그날, 문득 창밖으로 내다보니 온 하늘을 활활 태울 듯한 노을이 나를 밖으로 불러 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내 몸은 타지 않는 불꽃으로 가득했고 나는 차가운 불 속으로 한 발씩 이끌려 걸어갔다. 그때 너무나도 익숙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의 촉감과 습도와 온도는 내 몸 어딘가로 스며 들어와 저 아래 덮어두었던 무엇인가를 건드렸다. 누군가 내가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알렸다. 나는 바람의 부축을 받으며 점점 더 언덕을 향해 걸어 나갔다. 풀밭까지 이르자 신발을 벗었다. 그 보드랍고 푹신한 풀들이 내 발을 감싸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 따뜻하고 포근했던 그 순간들이 다시 나의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들고 있던 국자로 툭툭 두 번 쳐서 나를 부르고는 식탁에 앉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수저를 놓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향긋한 음식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머니는 두 번 세 번 나에게 빨리 와서 앉으라고 눈짓을 하고 나는 점점 더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가자 어머니의 눈은 또다시 슬프게 빛나기 시작했다. ‘돈을 다 쓸 때까지 돌아오지 마. 돌아오지 마.’ 어머니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내 속에서 크고 무거운 바위가 쿵 내려앉았다. 그들을 붙잡을 수 있었음에도 달콤한 것의 유혹에 빠져 돌아서 버린 용서받지 못한 소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주변은 갑자기 어둡고 습한 기운으로 뒤덮이고 풀밭에는 그날 어머니가 주셨던 지폐들이 바람 따라 제자리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어머니를 놓치지 않으려 한 발 한 발 그것들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인어공주가 목소리 대신 갖게 된 두 발처럼 발 끝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내 어머니께 가야 했다. 다시 저 눈빛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나는 언덕 끝 바위 위까지 올라섰다. 하늘은 여전히 뜨거운 불로 가득 찼고 바람은 나를 금방이라도 먼지처럼 날려 버릴 수 있을 것처럼 세게 불어왔다. 그렇게 나는 눈을 감고 바람에 몸을 날려 하늘을 향해 날았다.
희야엄마는 풀밭에 떨어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 위에 쓰러진 나에게 몇 번이고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희야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서는 슬픈 어머니의 눈빛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놀라움과 걱정, 그리고 나를 절대로 보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가득했다. 찰나에 따뜻하고 고요한 평화가 내 마음을 스쳐갔다. 붙들고 또 붙들고 싶었던 반석처럼 단단한 평화.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두 개의 허파가 깊고 큰 파도처럼 높이 오르내리며 진동을 일으켰다. 몇 번의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자 이번에는 눈 속에서 파도가 일었다. 그 옛날 하늘이 터져 세상이 물에 잠기듯 내 몸속에 고여 있던 물들이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나는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경련을 일으키며 소리 내 울었다. 나는 희야엄마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아니 내 부모가 나를 두고 떠난 이후 처음으로 울었다. 사람들이 울지 않는 나를 보며 이상한 아이라고 이야기하던 장면이 스쳐갔다. 감히 울지도 못하고 심장이 얼어버린 고통을 그들은 그렇게 쉽게 이해하려고 했다. 나는 심장이 찢어지고 내장이 다 말라버릴 것 같이 소리를 질렀다.
“아... 아.. 아”
내 거친 울음소리가 어느새 노을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산속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품에 안겨 밤새 울었다. 열두 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 찰 나이에 온 우주를 잃어버린 소녀의 울음을 산은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희야엄마는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으려는 듯 나를 꽉 안았다. 그녀는 내 울음이 숨통을 끊어놓을 것처럼 일렁일 때마다 주문처럼 계속 속삭였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아픈 게 당연한 거야. 울어. 울어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그날 내 귀에 들린 말이 나의 구원처럼 느껴졌고 영원히 내게서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큰 가방을 메고 온 마을을 나그네처럼 떠돌아다니는 그녀가 내 소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나의 실종 소식을 듣고 찾아다녔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희야엄마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 긴 울음을 쏟아 내고서 나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까무룩 자고 일어났을 때 나는 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죽을 끓이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희야’를 빼고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내 입에선 여전히 뜨거운 바람이 가는 쇳소리와 함께 새어 나올 뿐이었다. 그 소리에도 희야엄마가 뒤를 돌아보았다.
“희야! 일어났어?”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나를 불렀던 것처럼 희야라고 불렀다. 희야라고 부르는 그녀의 입꼬리가 미소 짓듯 위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렇게 나는 희야가 되었다. 미소를 짓지 않고서는 부를 수 없는 그 이름이 내 이름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해준 죽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따뜻한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내 몸의 허파와 심장들이 무사히 잘 버티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엄마는 내가 곧 말을 다시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자면서 내가 잠꼬대를 했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천천히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다시는 그곳까지 혼자 가지 않았다. 그것은 엄마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엄마는 언젠가 마을로 내려가 살자고 했고 그때까지는 풀밭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녀가 내게 금지한 유일한 일이었고 나는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알았다. 엄마는 그날 예전의 내가 죽고 희야로 다시 태어난 거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