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언덕 위의 노래 4

by 최여름

내가 그의 울음소리를 따라 언덕을 다시 찾은 것은 그로부터 삼 년쯤 지난 후였다. 엄마는 여전히 마을로 장사를 나섰고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만 오두막에 머물렀다. 그 사이 내 키는 한 뼘 반이나 더 자랐고 독학으로 고등과정까지 시험을 통과했다. 혼자서 산 아래 마을까지 내려가 필요한 것들을 사 오기도 하고 몇몇의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텃밭은 처음보다 두 배나 넓어졌고 토마토며 고추, 마늘과 양파까지 오와 열을 맞춰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신안시에 들러 야채를 팔고 옷과 생필품들을 사기도 하고 서점에 들렀다 우연히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날도 엄마는 장사를 나가 집에 없었고 혼자 있는 것이 이미 익숙해진 나는 유난히 밝게 빛나는 달을 보며 감상에 젖어 있었다. 별까지 하늘 가득 빛나는 맑은 밤이었다. 그 하늘 아래서 그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것처럼 감추지 않고 울었다. 우리의 오두막은 언덕 아래 등산로를 벗어난 외진 곳에 있었고 나무에 가려 불을 다 켜놔도 언덕 위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그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여기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고요한 어둠을 타고 울리는 그 울음소리가 빗물처럼 나를 타고 내려 내게도 슬픔이 전해졌다. 남자어른이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버지는 울음 대신 술을 택했다. 나는 뭔가 떠오르려는 기억의 잔상들을 억지로 떼어냈다. 나는 그가 슬픔에 못 이겨 바위 아래로 뛰어내리기라도 할까 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용히 나무 뒤에 숨어 그가 일어나 산을 다시 내려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는 그렇게 한 번씩 산을 찾았고 그가 울고 가는 날이면 나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에 대해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불필요한 걱정으로 엄마에게 불안함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그는 산을 찾아와서는 한참을 있다 갔다. 나는 그에게 슬픔이 사라져 다시 산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또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며칠 전부터는 매일 산을 찾았다. 그날은 조금씩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의지를 내려놓고 자신을 텅 비워버린 투명인간 같았다. 그가 가져온 작은 손전등이 아니었다면 빛이 없는 산속에서 그도 어둠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는 비에 점점 젖어 가는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또다시 깊고 저릿한 슬픔이 빗물처럼 내게도 스며들었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예전에 엄마가 나를 살렸듯 나도 그 바위에서 그를 끌어내려 주고 싶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당장 우산을 씌워 주고 집으로 데려와 따뜻한 차를 마시게 했을 테지만 나는 가만히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얼굴을 내민 달빛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달빛 아래서 그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그가 바위 아래로 떨어지는 줄 알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로 달려가 바위에서 그를 풀밭까지 끌어내렸다. 그는 잠시 눈을 떴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풀밭 아래 안전한 곳으로 온 힘을 다해 끌어내리긴 했지만 그다음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땅은 강하게 그의 몸을 아래로 붙들고 있었고 늘어진 그의 팔다리 하나도 나는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아직 여름이기는 하지만 비가 오고 난 후의 산은 급속도로 온도를 떨구었다. 나는 그를 그대로 눕혀 두고 집으로 달려가 수건 몇 장과 담요를 가져왔다. 수건으로 젖은 그의 얼굴과 팔다리를 닦고 담요를 덮었다. 비에 젖은 풀밭 위에 누운 그의 몸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나는 담요 위로 수건을 더 덮어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만히 곁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나는 늘 뒤에 숨어 있었기에 그날 그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는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고 약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하얀 피부와 짙은 눈썹, 가지런히 정리된 속눈썹과 날렵하게 솟은 콧날, 그리고 입술. 나는 내 심장이 갑자기 심하게 뛰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엄마를 따라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는 처음 보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한 죄책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내 시선은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못했고 두 발은 언제든 그가 눈을 뜨면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달은 점점 높게 떠올라 사위가 어느새 은은한 달빛으로 가득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고 나는 달아날 타이밍을 놓쳤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가 그 애구나. 뒤에서 지켜보던.”

그 순간 나는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달아오르는 듯한 부끄러움으로 일어서서 도망을 치려 했다. 그는 내 손목을 잡았다.

“나를… 나를 좀 도와… 줄 수 있겠니?”

나는 온몸의 피가 매우 잔잔하면서도 강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도와달라고 말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슬픔 속에 깊게 가라앉았고 나를 잡은 손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가 잡은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그의 뒷목덜미를 잡고 그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덮었던 담요를 들어 그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

그가 내 공간에 함께 있었다. 내가 주는 따뜻한 차를 마시고 내가 덮어 준 담요를 그대로 덮고 내가 준 수건으로 젖었던 얼굴과 머리를 말끔히 닦아냈다. 나는 그와 마주 앉지 못하고 괜히 이것저것 물건들을 만지며 그의 뒤에 서 있었다.

“고마워. 따뜻한 차도, 담요도. 그리고 항상 나를 지켜봐 준 것도.”

그가 쓴 ‘항상’이라는 단어에 한번 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화르륵 열이 얼굴 끝까지 차올랐다. 내가 그를 뒤에서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는 뜻이겠지? 어떻게 알았을까? 언제부터 알았을까?

“이곳에 올 때마다 저 바위 위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어. 바람처럼 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 나무 뒤에서 내가 뛰어내릴까 봐 숨죽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용기를 낼 수 없었어. 내가 사라지면 누군가 마음 아프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가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는 말에 내 몸에서 온기가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가 한 번이라도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고 그도 이후로는 말을 아꼈다. 나는 때로 슬픔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가 돌아가고 난 깊은 밤 그가 한 말들은 밤새 그가 있던 그 공간을 오랫동안 떠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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