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엄마가 오두막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먼저 말해야 할지, 쓰러진 그를 오두막에 데려와 머물다 가게 했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내 마음에 무겁게 자리한 건 오히려 다른 것에 있었다. 내가 그동안 엄마가 가지 말라고 한 언덕 위 풀밭까지 여러 번 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 오두막으로 오게 된 이후 엄마는 내게 하지 말라고 금지한 것이 없었다. 그녀는 늘 부드러운 미소로 내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었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먼저 구해 주었다. 그런 그녀가 언덕 위 바위에서 죽을 뻔한 나를 구해준 이후로 다시는 그 언덕까지 가지 말라고 금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는 나를 두고 혼자 산을 내려가는 것을 불안해했고 그때마다 나에게 다짐을 받아냈다. 나는 엄마의 걱정으로 다시 마을로 내려가 장삿길에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므로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고 강하게 약속하며 집에 홀로 남았다. 하지만 그가 올 때마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것은 나의 비밀이 되었다. 한 번 두 번의 비밀이 점점 쌓이게 되자 그 무게감이 날로 커져 언제부터인가 나는 엄마를 똑바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엄마를 배신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실망한 엄마가 나를 떠날까 봐 무섭기도 했다. 엄마를 생각하며 이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그가 오면 나는 여지없이 그곳에서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밤에 와서 울지 않았다. 대신 그는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시간에 기타를 메고 이곳을 찾아왔다. 그가 오면 푸른 풀밭이 더욱 아름답게 빛났고 그가 노래를 하면 작은 꽃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는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내 이야기를 시로 지어 그에게 전했다. 그는 나의 시를 노랫말로 바꾸어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노래처럼 기타 선율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내가 지은 시들이 그의 입을 통해 불려질 때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사뿐 거리며 풀밭 위에서 춤을 추는 상상을 했다. 우리에게 어둠의 골짜기였던 그 언덕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희야, 혼자서 힘들지 않았어?”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항상 나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그러나 그가 다녀간 어느 저녁에 나는 엄마의 그 가벼운 질문조차 대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눈을 피해 주방 정리를 하고 어지럽게 놓인 책을 정리하며 일부러 못 들은 척을 했다. 엄마는 나를 향해 한 번 미소를 짓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엄마는 늘 그렇다. 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 보이면 어떤 질문이든 더 묻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나에게 맞췄다. 내 기분에 따라 음악을 고르고 저녁 메뉴를 준비하고 대화 주제를 바꿨다. 내가 이 오두막에 온 그날부터 엄마는 늘 한결같았다. 엄마만 있으면 나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도 더 이상 마음 아플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날 살린 사람이었고 평생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 그러나 그 밤 엄마는 내게 먼 타인처럼 느껴졌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어색했다. 그녀와 나 사이에 그가 있었고 언덕 위 풀밭이 가로놓여 있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모두 죄책감으로 무겁게 내려앉아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속에서 밑도 끝도 없이 강한 반발심이 일어났다. 눈만 뜨면 언덕 끝까지 훤히 보이는 곳에 살면서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덫을 놓고 내가 걸려 넘어지길 기다렸다가 보란 듯이 나를 떠날 핑계를 삼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물론 알고 있었다. 엄마가 가지 말라한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금지의 약속이 어느 순간 내 순종을 시험하고 행동을 속박하는 것처럼 느껴지자 그와의 모든 시간들까지 부정하게 여겨질 것 같은 두려움과 불신이 내 속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나도 한 번도 엄마를 거스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버려진 나를 구한 사람이고 죽을 뻔한 나를 살려낸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를 만난 후부터 당연했던 그 모든 것들이 엄청난 부채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모든 생각들이 거센 감정폭풍을 몰고 와 순식간에 나를 휘감아 흔들어 대는 것을 느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모든 정리되지 않은 서툰 감정들은 제대로 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짜증이라는 하나의 문으로 비집고 나오며 터져 버리고야 말았다.
“희야, 무슨 일 있어?”
평소와 같지 않은 나를 엄마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내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며 다가온 그녀를 향해 나는 소리쳤다.
“정말 지긋지긋해요! 여기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엄마, 여기 나를 왜 데리고 왔어요? 그냥 바위 밑에 떨어져 콱 죽어 버리게 놔 두지 왜 살려냈어요? 나는 이 집도 싫고 저 언덕을 보는 것도 괴로워요.”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담겨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것이 감당하기 무겁고 짜증 났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짜증을 내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더 마음이 괴로운 것뿐이었다.
“나는 희야가 아니에요. 나는 윤이라고요. 날 버린 여자가 지어준 이름, 서윤이! 그러니까 엄마도 내가 마음에 에 안 들면 그냥 날 버려요. ”
도대체 내 어느 세포에 이런 말들이 숨어 있다 지금 튀어나오는 걸까? 나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내가 마음에 걸렸을 뿐이고 하나도 갚지 못한 채 쌓여만 가는 엄마의 사랑이 부담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덮으려는 죄책감과 원망이 내 마음을 꽁꽁 둘러싸 높은 분노의 성 안에 진심을 가두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한테 나는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모든 딸들이 엄마에게 화를 내고 원망을 해도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나는 진짜 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데 왜 나는 그러면 안 되는가? 왜 나는 빚진 자로만 살아야 하나?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 날카로운 말과 그보다 더 거친 눈빛이 그녀를 향했고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아니에요 엄마, 나를 혼내야지요! 화를 내고 악담을 퍼붓고 은혜도 모르는 애라고 문 밖으로 쫓아내셔야죠. 그런 눈으로 나를 보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왜 끝까지 나만 엄마의 짐이고 나만 나쁜 사람이 되게 하냐구요?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고, 너를 데려 온 것을 후회한다고 말해요.
나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말들을 차마 다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어두운 산길을 무작정 내려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뒤따라 나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는 엄마의 목소리가 나를 따라올 수 없게 더 빨리 달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수록 더 괴로웠고 그래서 더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 한 곳에는 고통이, 또 다른 구석에서는 비웃는 소리가 가득했다. 누가 내 행동을 조종하고 내 마음을 폭풍 가운데로 몰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산길이었지만 달빛 하나 비추지 않는 밤은 곳곳이 장애물로 가득했다. 나는 나뭇가지에 쓸리고 돌부리에 몇 번이나 넘어져서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가 찾아간 곳은 마을 변두리에 있는 한 와인 바였다. 나는 그가 이곳에서 정해진 요일마다 노래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오늘이 그중 하루였다. 나는 건물 옆 골목으로 들어가서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직 나는 미성년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 몰골로 그곳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건물 밖으로 새어 나오자 눈물이 다시 쏟아져 내렸다. 미친 듯이 그가 보고 싶었다. 그에게 안겨 그가 바위에서 울었던 것처럼 울고 싶었다. 그의 위로만 있다면 오늘 나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 울다 지쳐 살짝 잠이 들었을 때 와인 바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와 기타를 멘 그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몇 마디를 나누더니 각기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를 보기만 하면 달려들어 와락 안길 것 같았는데 막상 그의 뒷모습을 보니 이름조차 부를 자신이 없었다. 잠시 후에 인기척을 느낀 그가 나를 발견했다. 그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 집을 나왔어요.”
“...”
“갈 곳이... 없어요.”
“이곳은 너 같은 여자애가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한 곳이야.”
나는 그가 나를 데려가 주길 바랐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거절임을 바로 알았지만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또다시 침묵이 흐른 후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알잖아. 나 그럴 수 없는 거.”
“그 여자는 이미 죽었잖아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요!”
그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다. 그의 절망과 슬픔의 이유를 그에게서 들었을 때 나는 위로를 넘어 그 크고 빈 공간 속에 내가 들어갈 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래. 그렇다 해도 너를 받아줄 수는 없어. 미안해.”
“사랑해요.”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를 사랑해서 잡고 싶은 건지 절박해서 잡고 싶은 건지 따져 볼 여유가 없었다.
“미안해. 어서 집으로 돌아가.”
“당신도 저를 좋아한 거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나를 찾아오고 노래도 불러 주고 또….”
나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와 나 사이에 생긴 깊은 골짜기 속으로 혼자 처박히고 있었다.
“미안해.”
“제발”
나는 그의 손을 잡았고 그는 손을 빼내어 다시 내 손을 잡았다가 떼어 놓았다.
“희야, 너는 정말 예쁘고 좋은 아이야. 너는 나를 살렸고 난 평생 고마워하면서 살 거야. 너는 널 정말 아끼고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해. 나 같은 사람 말고.”
그렇게 그는 내 손을 한 번 더 굳게 잡아주고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깊고 깊은 어둠이 나를 세상 끝까지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 옛날 부모를 잃고 혼자 걷다 쓰러졌던 어린 내가 겹쳐 보였다. 나는 어둠이 더 깊게 내려와 내 존재를 흔적 없이 가려 주길 바랐다. 영원히 그렇게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대로 내가 잠들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또다시 이렇게 버려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나 같은 것은 어쩌면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가슴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운데 숨이 쉬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살아야 할 이유가 모두 사라졌는데 찬바닥이 아닌 내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집은 너무 멀었고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