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야”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차가운 바닥이 아닌 보드라운 이불속에서 눈을 떴다. 집은 아닌데 어딘가 익숙한 곳이었다.
“희야, 엄마야. 사랑하는 내 딸 희야.”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여긴 엄마와 내가 자주 왔던 여관방이었다. 엄마를 보자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엄마’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엄마를 다시 부른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또다시 서글픔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죄송합니다.”
정신이 돌아오자 강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제 엄마가 나를 버린다 해도 나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괜찮아. 엄마니까 괜찮아. 네가 무사하면 나는 그걸로 감사해.”
엄마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것이 민망해 고개를 돌렸다.
“너를 너무 혼자 내버려 둬서 미안해. 안 그래도 외로운 너인데. 이제 마을에 내려와서 살 거야. 그러자, 희야. 산에서 이제 내려오자.”
“미안해요, 엄마. 못된 말 한 거. 진심이 아닌데 그냥 나도 모르게 막 쏟아져 나왔어요. 절대로 엄마가 싫은 거 아니에요. 집도 그렇고. 언덕에도 자주 갔어요. 그 사람이 걱정돼서. 숨기려던 건 아닌데 엄마가 싫어할까 봐. 아니 실망할까 봐.”
말들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채 두서없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이 크게 놀라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알아. 아까 길에서 널 발견했을 때 달려와서 너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사람이 있었어. 그래서 들었어. 네가 자기를 구했다고. 고맙다고 하더라.”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근데 이제 다 끝났어요. 엄마도 저를 버리셔도 돼요. 저 같은 게 무슨 딸이라고….”
나는 또다시 마음에 없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의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엄마는 내 앞머리를 부드럽게 뒤로 쓸어 넘겼다.
“세상이 다 너를 버려도 나는 널 버리지 않아. 네가 나를 떠난다 해도 나는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는 네 엄마니까. 그리고 너는 내 딸이고. 그거 잊어버리면 안 돼.”
“죄송해요.”
“희야, 나한테 너보다 더 소중한 건 없어. 언덕에 가지 못하게 한 건 너를 위한 거지, 약속이 너보다 더 중요하지 않아.”
“엄마, 사랑해요.”
목이 메어 끝까지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말이 바뀌어 나왔다. 이번에는 엄마의 눈에 눈물이 차 올랐다.
“알지, 그럼. 엄마는 다 알지.”
“근데, 엄마.”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나를 쳐다보았다.
“응? 왜?”
“저 배고파요.”
유치하고 어린 마음이 몽글몽글 새어 들어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어리광이 부리고 싶었다. 엄마는 깔깔 웃었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공용 주방으로 가서 빵과 수프를 가져왔다.
“엄마, 나 사실 양송이는 별로예요.”
엄마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의 투정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수프 속의 양송이를 하나씩 건져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동그랗고 빛난 아침 해가 늘 그랬듯 어둠을 가뿐히 밀어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