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지점에서 만나다
열감기가 심해서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온 수요일이었다.
내 입맛대로라면 얼큰한 찌개에 밥 한술 먹고 싶었지만 이 날따라 이상하게 극강의 단 맛이 당겼다.
각종 인스턴트 음식 전문 남편에게 말했다.
"탕후루 그런 거 맛이 어때?"
나에게 말은 안 했지만 먹어봤을 것 같았던 남편도 안 먹어봤단다.
엄청 엄청 단 게 먹고 싶은데 도전할 용기가 안 생긴다고 망설이고 있는데 이미 배달시켰다는 남편이었다.
이럴 때는 참 행동력이 빠르다..
어찌어찌 그렇게 우리 부부는 탕후루를 영접하게 됐다.
한 입 베어 먹고 나온 첫마디.
"뭐야, 맛있는데?"
매일 밥상에서 싸우던 우리가 의외의 지점에서 하나가 됐다.
대학교 근처에 살아서 온갖 탕후루 체인점이 집 앞에 즐비했다.
지나치는 가게 중에 하나였을 뿐 내 입으로 저런(?) 음식이 들어올 줄 몰랐는데 이상하게 먹고 싶었고, 이상하게 망설일 시간도 없이 먹게 되었다.
그렇게 이상할 것만 같았던 탕후루의 경험은 센세이션이자 부부의 화합을 이끌어주었다.
남편의 입맛에도 내 입맛에도 맞는 음식이란 걸 찾았다는 기쁨.
찌개에 소주를 원하던 아내와 떡볶이와 탄산음료 조합이 최애인 남편의 교집합이 탕후루였다니.
약간은 어색한 한 상이었다.
매일 밥상 앞에서 투닥투닥하는 게 익숙해진 우리 부부는 달아도 너무 단 탕후루라는 음식으로 식탁에 앉아 행복을 나눴다.
찌개 국물이 없어도 떡볶이와 라면이 없어도 어느 한 사람도 불편하지 않은 밥상.
10대 애들이나 먹는 음식이라고 치부했던 음식이 나에게 맞고 밥으로 싸우던 우리 부부를 대동단결시킬 줄 미처 몰랐다.
또 한 번 나를 가로막고 있는 건 남편의 입맛도 아닌 나의 편견임을 직시하는 순간이었다.
달달한 디저트에 불과한 음식 앞에서 뭐 이리 진지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입맛이 안 맞는 건 부부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부부상담도 받아보고 다양한 시도의 노력도 해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탕후루를 깨물 때 설탕이 깨지면서 나는 소리가 맛있고,
차가운 제철과일 귤이 더욱 상큼하게 느껴졌다.
서비스로 준 거봉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어느새 우리 부부는 웃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소중했고 탕후루가 더욱 의미 있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선입관을 갖고 대하던 음식에서 의외의 해답을 찾은 것처럼 나도 여전히 남편에게 어떤 벽을 쌓아둔 건 아닐까 싶었다.
라면과 떡볶이,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남편의 입맛 뒤에 생각지 못한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이 과정이 탕후루 설탕의 입자처럼 미미하겠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탕후루처럼 달달한 신혼생활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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