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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옥수수 Dec 10. 2023

제로음료와 맥주 같은 우리 부부

제로콜라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돼?

누군가가 결혼하기 전에 신혼 때는 알콩달콩 좋을 때가 아니라 미친 듯이 싸우는 때라고 알려줬으면 좋았으련만.

아마도 들었지만 와닿지 않아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신혼 때부터 먹는 걸로 미친 듯이 싸웠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싶은 아내와 다이어트를 위해 1일 1식을 자주 하는 남편.

지금은 한 차례 전쟁이 지나고 조용히 싸우는 편이다.

휴일 낮에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문득 우리 집 냉장고 모습이 우리 부부의 모습 같다고 느껴졌다.


냉장고에는 나의 갈증과 스트레스 해소용 맥주가 있다.

그 옆에는 남편의 최애 제로 음료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얼핏 보면 마시는 음료라는 건 비슷하고, 모양도 닮았지만 알코올 성분부터 맛과 색깔까지 전혀 다른 둘이었다. 마치 우리 부부 같아 보였다.





결혼하면 인성이 드러난다는데 정말 나의 인성에 놀라는 요즘이다.

남편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해도 서운한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으니 말이다.

최소한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기본 인사는 나누고 싶은데 남편은 그것도 어려운가 보다.


"밥 먹었어?"

"응"

"뭐 먹었어?"

그냥 먹었어


뭘 먹었는지 안 알려주는 건 뭔가 민망해서라고 한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놓고 마라탕을 먹어서 민망한 건가?

떡볶이에 튀김, 순대까지 먹었다는 스스로의 죄책감인가?


우리 집은 남편의 비밀스러운(?) 식사 때문에 서로 밥 먹었냐는 질문이 사라진 지 오래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물어봤지만 여전히 "그냥"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비슷하고 잘 맞아 보이는 우리지만 자세히 보면 제로 음료와 맥주처럼 아예 '다른 사람'이다.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을 실천하고 받아들이는 게 신혼 때 겪어야 하는 진통인 것 같다.


고등학생 때 100킬로그램이 훌쩍 넘었다는 남편.

키가 185여도 비만은 비만이었다.

그 당시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잘 보이려고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는데 그때 인생이 바뀐 걸 경험했다고 한다.


'인생이 바뀌었다'

이 말은 곱씹어볼수록 어마어마한 한 마디였다.

살을 빼기 전에 살았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충격적으로 행복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경험이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전 세계에 대한 발버둥이 지금의 남편 행동으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


같이 술 한잔 기울여주는 건 포기했어도 서로 밥 먹었냐는 안부 인사는 포기가 안된다.

그 한마디가 민망하다는 남편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원망스럽다.

결혼해서 행복한 만큼 완전한 타인과 하나가 되는 고통도 따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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