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편을 존중하는 방식
엄마 집에서 가까운 데로 이사를 와서인지 부쩍 엄마의 질문이 늘었다.
"반찬 좀 해다 줄까?"
언제나 거절하지만 가끔 엄마 밥이 먹고 싶을 때는 눈치 없는 척 좋다고 한다.
매일이 아니라 어쩌다 요리하는 거라 괜찮다고 하시지만
속 뜻은 '엄마가 그냥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라는 것 같다.
그래서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기쁘게 호응한다.
희한하다. 엄마 주변에는 농사를 짓는 분도 없는데 자꾸 반찬거리가 생겨나는 마법이 일어난다.
"요즘에 누가 양상추를 한 보따리 줘서 말이야~ 샐러드 좀 먹을래?"
"아니, 시금치가 요즘 맛있다고 친구 00이가 너무 많이 나눠줬네?"
잡채, 미역줄기, 시금치무침, 파래, 생굴, 배춧국까지 싣고 온 엄마.
남편과 잘 챙겨 먹으라며 둘이 오손도손 앉아서 저녁 먹는 그림을 상상했을 엄마.
엄마, 미안한데 거짓말했어.
그럼, 우리 둘이 너무 잘 먹었지
사실은 남편에게 반찬 사진을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다.
"아.. 자기야 나 진짜 다이어트해야 돼서..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는 저 한 마디에서 너무 감사하지만 죄송하다고 하는 게 느껴졌다.
본인은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곤란하다고 느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은 사랑대로 받고 남편은 남편대로 존중하려면 그냥 엄마한테 너무 잘 먹었다고 하는 게 좋았다.
나 혼자 와인 두 잔이랑 배 터지게 실컷 먹었으니까 반만 거짓말 아닐까?
중요한 건 화가 안 나는 게 신기했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남편은 1년 365일 다이어트를 한다.
다이어트 생각을 하거나
다이어트한다고 말을 한다.
진짜 다이어트를 하기도 하는데
그의 다이어트 방법은 '저녁을 굶는 방식'이다.
이 부분에서 가장 갈등이 컸던 우리 부부였다.
이맘때처럼 추운 12월이 되면 두 손 꼭 잡고 부부상담을 다녀왔던 게 생각난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밥 때문에 하도 싸워서 갔던 것이다.
남편이 직업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인생이 바뀐 경험을 해준 사건이 '다이어트'였기에 그에게는 그게 중요하다는 걸 인지한 것 같다.
가끔은 섭섭하지만 덕분에 나는 일에 집중하고 내 시간이 많아지기도 했다.
고비를 하나씩 넘기면서 배웠다.
엄마가 굳이 남편이 다이어트를 왜 하고, 왜 굶는 방식으로 하는지를 알아야 할까 싶은 거였다.
남편은 다이어트 중이라 안 먹을 거라고 이미 엄마에게 말했다.
"그렇게 굶으면서 다이어트하면 안 돼"라며 쿨하게 말하는 엄마.
"맞아, 그니까~"하고 넘기는 나였다.
엄마의 사랑 표현 방식은 대부분 맛있는 밥상이었다.
오늘도 산삼의 효능에 대해 말하며 너희 부부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엄마다.
그렇게 남편도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길 바랐다.
딱 1년 전, 쓸쓸하고 외로운 신혼생활로 참 많이도 힘들었는데
밉기만 했던 남편의 다이어트 방식도 존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은 희망이 보인다.
대부분 서운하고 가끔 덜 서운했다면, 지금은 대부분 괜찮고 가끔 서운하다.
엄마가 반찬통에 담아 온 건 묵직한 사랑임을 안다.
남편이 다이어트를 하는 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임을 안다.
그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알기에 나도 변해보려고 한다.
우리 부부, 조금만 더 인내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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